비트코인 '진짜 돈' 된 첫날 엘살바도르 대혼란

디지털 지갑·ATM 한때 먹통
암호화폐는 10% 넘게 떨어져

"투기세력 위한 돈…신뢰 못해"
거리에선 법정통화 반대 시위
비트코인을 ‘진짜 돈’으로 만드는 국가적 실험의 막이 올랐다. 중앙아메리카 빈국인 엘살바도르가 7일(현지시간)부터 비트코인을 법정 통화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반대 시위가 잇따랐고 거래에 필요한 디지털 지갑은 한때 먹통이 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날 비트코인 등 주요 암호화폐 가격은 일제히 폭락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지난 6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 통화로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엘살바도르에서는 2001년 법정 통화로 채택한 미국 달러와 함께 비트코인이 공식 화폐가 됐다. 상점에서 물건을 거래할 때는 물론 세금을 낼 때도 비트코인을 사용할 수 있다.시행 첫날부터 순탄치 않았다. 1000여 명의 시민들은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을 법정 통화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가격 변동성이 커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 등에서다. 시위대는 “비트코인은 부자들을 위한 통화”라며 “투기 세력에게나 이상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타이어를 불태우고 폭죽을 터트리며 대법원까지 행진했다. 고속도로 등도 점거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기술적 결함이 발생한 것도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도입 첫날 오전께 애플 화웨이 등의 주요 앱 마켓에선 엘살바도르 정부의 공식 디지털 지갑인 ‘치보’가 다운로드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정부가 비트코인 사용을 독려하기 위해 전국에 설치한 200개의 자동입출금기(ATM)도 문제를 일으켰다. ATM을 사용해 치보에 입금해도 확인되지 않는 사례가 나타난 것이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치보를 내려받으려 하면서 기술적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실험은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이 이끌고 있다. 그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에 달하는 송금 수수료를 줄이는 데 비트코인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비트코인이 결제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기대한다. 엘살바도르 국민의 약 70%는 은행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은 지난 6월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법정 통화 도입과 관련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제리 라이스 IMF 대변인은 “수많은 거시경제·금융·법률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신중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은행도 “통화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 피치 등도 돈세탁이 더 쉬워질 것이란 우려를 나타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는 이날 폭락세를 보였다. 비트코인은 전날보다 10% 이상 떨어진 4만5000달러대에 거래됐다. 이더리움, 리플 등 주요 암호화폐 가격도 전일 대비 12% 이상 급락했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9.02%), 코인베이스(-4.18%) 등 암호화폐 관련주도 크게 하락했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