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젤 '연타석 홈런' 앞둔 베인캐피탈, PEF 투자 '행운'과 '실력' 사이[차준호의 썬데이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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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FO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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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심을 담아보자면 이 중 베인의 카버코리아 거래가 선두에 꼽힐 것으로 생각합니다. OB맥주 거래가 아직 국내에 PEF거래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2010년 초반이었던 점, 멜론 거래에선 매각 측인 SK텔레콤의 조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점 등을 반영했습니다. 인수 이후 '기업가치를 키워 재매각한다'는 바이아웃(경영권거래) 특성을 고려할 때 화장품 브랜드 'AHC'를 보유한 카버코리아의 '대박'이 업계에 준 충격은 상당합니다. 실제 투자은행(IB)·PEF 진입을 꿈꾸거나 막 입사한 주니어 사이에선 베인의 한국 팀이 이 분야 '락스타'로 떠오른 계기이기도 합니다.◆'AHC' 신화 쓴 베인…휴젤로 中에 다시 '베팅'
이렇다보니 베인이 카버코리아 인수 후 다음 타깃으로 보톨리눔톡신업체인 '휴젤'을 인수했을 때 업계 관심이 쏠렸던 건 당연했습니다. 베인은 휴젤의 두 공동창업자간 감정의 골이 깊어 티격태격 하던 사이 인수 기회를 포착했고 발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당시 세계 최대 PE인 블랙스톤과 막바지까지 경합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PEF 업계에선 "투자 성공은 인수할 때 고생하면서 흘렸던 눈물 양과 비례한다"는 말이 있는 데, 정말 눈물 쏙 뺄 정도로 인수 시점부터 고생했던 거래로 꼽힙니다.
사실 베인 내부에선 휴젤 투자를 앞두고 기로에 섰습니다. 카버코리아때 효과를 봤던 자신들의 '공식'을 따를지, 아니면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매물을 찾아야 할 지를 선택해야했습니다. 글로벌 5위권 PEF의 한 한국사무소 대표는 사석에서 "투자 회수에 성공한 직후에 떠오르거나 손에 잡힌 투자건은 무조건 백지화한다"고 합니다. 과거의 관성 탓에 객관적 판단이 불가능할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이죠.

카버코리아 성공 배경을 살펴보면 두 키워드가 중심에 있습니다. 베인의 인수 시점인 2016년까지도 카버코리아의 주요 브랜드인 'AHC'는 중국 내 브로커 회사·뷰티숍에 대량 공급하는 B2B(기업간 거래)방식에 의존해왔습니다. 다른 주요 화장품사들이 중국시장 진출을 이미 마무리한 시점이어서 업계에선 대응이 늦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했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 베인 인수 이후 시작된 중국의 '사드 보복' 사태로 공식 유통채널을 갖춘 국내 화장품사들이 잇따라 타격을 입으며 상황이 반전했습니다. 알음알음 소비자 사이 인지도를 쌓던 AHC는 중국 정부의 규제에서 빗겨나있었습니다. 사드사태가 잠잠해지던 2016년부터 AHC가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인 광군제를 기점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없어서 못 구하는 '역주행'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따이궁들이 AHC제품을 입도선매하며 전체 매출의 40% 수준이던 중국향(向) 매출이 70%까지 크게 늘기 시작했습니다.매각 시점인 2017년엔 행운이 잇따르기도 했습니다. 인수자인 유니레버는 성장둔화를 질타하는 주주들의 목소리에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해 워렌 버핏이 보유한 크래프트 하인츠(Kraft Heinz)와 합병이 무산되면서, 분위기를 반전할 '한 수'를 찾아야 했습니다. 특히 최대 시장인 중국 내 점유율을 높일 랜드마크 거래가 필요했던 상황에서 카버코리아가 레이더에 잡혔습니다. 매각 직전 카버코리아가 '앤 해서웨이'를 광고 모델로 쓰며 '글로벌' 브랜드로 탈바꿈한 전략도 적중했습니다. 원금 3000억원으로 1조9000억원의 '잭팟'을 터뜨린 배경입니다. 이정우 베인 한국 대표는 사석에서 "PEF 투자가 성공할 확률은 태양계 수금지화목토천해 8개 행성이 일렬로 서는 것보다 더 적을 것"이라고 후일담을 토로했다고 합니다.(이정우 대표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이공계 출신입니다)
◆의료사고·中 단속에 위기도…극적인 허가로 기사회생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화장품에서 부작용이 생길 경우 피부트러블 정도에 그칠 수 있지만 보툴리눔톡신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독소는 '살상무기'로 쓰일 정도로 다루기 위험하다는 점이었죠. 실제 2017년 말부터 중국 내에서 이로인한 의료 사고가 사회문제화 되면서 휴젤에도 불길이 옮겨붙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따이공에 대한 규제까지 겹치면서 중국 시장 매출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의 주가도 인수시기 지분 100% 기준 1조9000억원 수준에서 2018년 6월엔 1조원까지 '반토막'나기도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업계에선 "베인이 이번엔 베트를 너무 길게 잡았다"라는 수근거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부터 회사는 순탄대로를 걸었습니다. 현재 중국 시장 내 공식 판매 허가를 얻은 보툴리눔 톡신 제품은 레티보를 포함 앨러간의 '보톡스', 란주연구소 'BTX-A', 입센 '디스포트' 등 4개 제품 뿐입니다. 이 중 앨러간의 제품은 중국 현지사 제품 대비 5배 가까이 비싸게 책정되는 등 가격 격차도 뚜렷합니다. 휴젤 입장에선 중국 시장에서 앨러간 제품 대비 70~80% 가격대를 유지하고 중국 현지 제품 대비 고급화 전략을 펴 중간지대에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최종 인수자인 GS컨소시엄 외에도 LG생활건강, 삼성, 신세계 등 중국 시장 내에서 브랜드가 어느정도 알려진 국내 기업들은 자사의 브랜드만 얹으면 휴젤이 중국 시장을 빠르게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인수를 검토했습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