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다, 20년前 그날"…오전 8시46분 미국이 고개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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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20주기 추모식…전·현직 대통령 '단결' 강조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46분. 미국 최대 항공사인 아메리칸항공 11편이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 중 북측 타워 상층부에 추락했다. 17분 뒤인 9시3분 유나이티드항공 175편이 남측 타워를 강타하자 세계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검은 옷 입은 유족·경찰·시민들
비극 현장 '그라운드 제로'로 몰려
희생자 이름 호명 때마다 눈물
바이든, 연설 없이 침묵으로 애도
알카에다의 테러리스트 19명은 미 국내선 4대를 납치해 뉴욕 WTC 빌딩과 버지니아주 펜타곤(국방부) 등 미국 심장부를 노렸다. 세계 금융·상업 중심지를 상징했던 110층짜리 WTC는 첫 번째 비행기가 떨어진 지 1시간42분 만에 완전히 붕괴했다. 사망자만 총 2996명으로 집계됐다.정확히 20년 뒤인 11일(현지시간) 오전 8시46분. WTC 빌딩이 있던 ‘그라운드 제로’ 주변에 종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거리에 있던 수백 명의 인파가 거의 동시에 묵념하거나 WTC 터에 새로 지은 원월드 빌딩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날 이른 아침부터 WTC 지하철역 근처엔 ‘9·11 테러 20주년 추모식’에 참석하려는 유족과 경찰관, 소방관이 많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 검은색 옷과 제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경찰·소방관이 많은 것은 당시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긴급 대응 인력이 411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추모식 행사에서 유족들은 한 명씩 연단에 서 희생자의 이름을 불렀다. 승무원 딸을 잃은 뒤 유족 대표로 나선 마이크 로는 “20년 전 수많은 사람이 평범함을 뛰어넘는 행동을 보여줬다”며 시민들의 용기에 감사를 표했다.조 바이든 대통령은 행사에 참석했으나 연단에 서진 않았다. 다만 전날 밤 영상에서 통합과 단결을 강조하며 “국민을 보호하는 일을 절대로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CNN은 백악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대통령이 수치스러운 역사의 날에 연설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전했다.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도 뉴욕 추모식에 참석했다. 테러 당시 재임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납치된 항공기가 추락한 펜실베이니아주 생크스빌 추모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주에서도 추모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셰인 킴브로 우주비행사는 “희생자와 가족, 생존자, 응급 현장요원들에게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는 내용의 영상을 띄웠다. 그는 “결코 9·11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뒤 무중력 상태에서 위로 솟아올라 카메라 밖으로 사라졌다.
기업들도 9·11 테러를 기억하고 유족을 지원하기 위해 곳곳에서 기념 행사를 치렀다. 대표적인 곳이 대형 채권거래 업체 캔터피츠제럴드다. 1945년 설립된 이 회사는 테러 때 WTC 북쪽 타워의 101~105층을 임차하고 있었다. 뉴욕본부 소속 직원 960명 중 당일 출근해 있던 658명이 살아남지 못했다. 약 70%의 직원이 일시에 사망한 것이다. 하지만 뉴욕본부는 테러 발생 1주일 만에 영업을 개시했고 여전히 건재하다. 하워드 루트닉 캔터피츠제럴드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끝없이 이어진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반드시 다시 일어나 유족을 지원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회고했다. 캔터피츠제럴드는 매년 후원 행사를 열었으며, 지금까지 총 2억달러를 모금해 유족에 전달했다.월가의 대표적 투자은행 중 한 곳인 KBW(키프·브루옛&우즈)도 자체 추모식을 열었다. 이 회사는 당시 직원 67명을 잃었다. 톰 미슈 CEO는 “며칠 동안 수많은 위로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9·11 테러는 지난 20년간 수많은 기록도 남겼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과 전쟁을 치르며 총 6조달러를 투입했다. 폐허로 변해 4거래일간 폐장했던 뉴욕증시의 대표 지수인 S&P500은 그동안 네 배 넘게 올랐다. 금융위기를 극복했고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파고도 넘고 있다.
다만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이날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대통령궁에 자신들의 깃발을 올리고 정부 출범을 공식화하면서 추모식 의미가 다소 퇴색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