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소연 "'펜트하우스3' 천서진 파멸, 만족합니다"

SBS '펜트하우스' 시리즈 천서진 역 배우 김소연

20년 만에 악역 연기, 시청자 시선 사로 잡아
"천서진, 빛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어둠"
김소연/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SBS '펜트하우스' 시리즈의 희대의 악녀 천서진은 완벽히 지웠다.

눈빛만으로 이미 사람을 여럿 해치운 천서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 화면에서 '착함'이 뚫고 나왔을 정도. 배우 김소연은 스스로를 낮추고, 주변 사람들을 하나하나 챙기는 세심함을 보이는 것은 물론, 어떤 질문에도 성심껏 답변했다. 다소 곤란한 질문에도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데뷔 28년 차의 노련함, 그리고 연기 경력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순수한 매력을 동시에 뽐내는 김소연이었다. 김소연은 지난해 10월 첫 방송을 시작해 지난 10일 대장정의 막을 내린 SBS '펜트하우스' 시리즈에서 희대의 악녀 천서진 역을 맡아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시즌1에서 자신을 차별하고, 정서적으로 학대했던 아버지를 살해한 후 피아노를 치며 광기를 드러냈던 천서진은 시즌3에서는 오랜 정적이던 오윤희(유진)는 물론 자신의 비밀을 알아냈다는 이유만으로 남편 하윤철(윤종훈)까지 살해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자신을 파멸시켰다. '일그러진 욕망'을 그린다는 '펜트하우스' 시리즈에서 천서진은 '욕망의 화신' 그 자체였다.

1994년 SBS 청소년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김소연은 2000년 MBC '이브의 모든 것' 이후 20년 만에 악녀 연기를 선보였다. '펜트하우스' 시작 전 제작발표회에서 "희대의 악역을 보여 드리겠다"고 말했던 김소연은 '펜트하우스'를 마친 후 "악역으로서 더 이상이 없을 정도로 최고치를 보여 드린 거 같다"면서 "무엇보다 모든 악행을 파멸로 돌려받아서 만족한다"고 평했다.

"김소연과 천서진, 분리 쉬워"


김소연 스스로 전하는 성격, 주변이 말하는 모습 모두 천서진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연기하기에 어렵지 않았냐"는 우려도 나왔지만, 김소연은 "완전히 달라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천서진이 내뿜는 폭발적인 폭력성을 연기하는 것 역시 "제가 MBC '진짜사나이'에 출연해 힘이 없는 모습을 보여 드려서 오해가 있는데, 제가 힘이 없을 뿐이지 체력이 좋다"며 "이번 촬영장은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돼 잠도 잘 자고 좋은 환경에서 촬영해서인지 '힘들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면서 웃음을 보였다.

그렇지만 천서진이 오윤희를 살해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라는 생각에 윤희에게 미안해서 유진에게 따로 문자까지 보냈다"며 "그러고 나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전 국민이 천서진을 욕해도 저만은 이해해주자는 각오로 작품에 임했어요. 천서진이 나쁜 건 맞는데, 저만은 천서진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려 했죠. 그럼에도 오윤희를 절벽에서 밀어내는 건 너무하더라고요. 아버지를 계단에서 밀쳤던 것도 힘들었는데, 그때보다 더 힘들었어요. 서진이가 미웠어요. 이제 드라마가 끝났으니 시청자의 마음으로 마음껏 미워하려고요.(웃음)"

천서진, 이보다 더 나쁠 수 있을까

김소연/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펜트하우스' 시리즈는 몇몇 회차를 '19세 미만 관람 불가' 등급으로 설정했을 만큼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장면들이 여과 없이 선보여졌다. 매 회 동 시간대 시청률 1위, 화제성을 이끌었지만, 그만큼 드라마의 잔혹함과 폭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펜트하우스'에서 악의 축으로 활약했던 김소연은 이런 반응에 대해 "제가 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 수 있지만, 천서진을 연기하면서 그의 파멸을 기다렸다"며 "저는 천서진의 존재가 빛을 돋보이게 하려 존재하는 어둠이라 생각하고 임했다"고 말했다. "극중 등장했던 왕따나 이런 것들을 보면서 저 역시 마음이 아팠어요. 하지만 저희 드라마는 가해자들이 어떤 벌을 받는지, 최후가 그려져요. 그런 면에서 마지막까지 아량을 갖고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은별(최예빈)이 덕분에 서진이가 욕을 덜 먹었다"면서 고마움을 전했다.

"어린 친구들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친구들을 캐스팅했을까 싶었어요. 은별이에게도 항상 '난 너처럼 못했을 거야'라고 말했어요. 어린 나이에 대단한 거 같더라고요. 시즌이 거듭될수록 연기가 느는 것도 보이고요. 엄마 역할을 하는 것도 처음이었는데, 최예빈 배우가 은별이 역을 잘 해줘서 더 애잔한 마음이 들고, '엄마가 되면 이런 마음이 들겠구나' 더 쉽게 몰입됐던 거 같아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현장"

김소연/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극 중엔 눈만 마주쳐도 얼굴을 붉히고, 대립했지만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리즈를 함께하며 출연 배우 모두와 돈독한 사이가 됐다. 뿐만 아니라 '펜트하우스'에는 김소연의 남편 배우 이상우, '절친'으로 알려진 S.E.S 바다도 카메오로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소연은 "(이)상우 오빠가 현장에 왔을 때 모습이 메이킹으로 담겼는데, 매일 만나는 사이인데 석 달 만에 보는 듯 어색하고 부끄러워 하더라"라며 "그런 모습이 다 남아있어서 저희에게 추억이 된 거 같다"면서 고마움을 전했다.

또 "상우 오빠가 다른 드라마에서 초등학생들과 연기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그 친구들이 '펜트하우스 안티기자'라고 한다더라"라며 "수년간의 연기 경력이 무시당했다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바다는 '펜트하우스'에서 천서진을 대신해 노래를 부르는 무명의 성악가로 등장했다. 김소연은 "바다가 긴장이 된다고 전화를 해서 2시간 동안 통화를 하며 맞췄다"며 "대사는 2마디였다"고 말해 폭소케 했다.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열정을 쏟아줘서 고마웠다"면서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이와 더불어 김소연은 '펜트하우스' 현장에 대해 "두려움을 내려놓고 조금은 편하게 할 수 있었던 촬영장"이라고 남다른 의미를 전했다. 연출자인 주동민 감독, 김순옥 작가와 소통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천서진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

"일찍 데뷔한 제게 감독님이란 존재는 늘 다가서기 어렵고, 인사를 제외한 소통을 나눠도 되는지 고민할 정도로 어려운 존재였어요. 그런데 이번엔 제가 아이디어를 내면 '좋다'고 말해주시니까 용기를 낼 수 있었고, 1년 반 동안 그런 작업을 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커질 수 있었어요. 마지막회에 서진이가 머리가 짧아진다는 설정을 보고 '가발이 아닌 제 머리카락을 자르겠다'고 말씀드리니 아예 제가 직접 자르는 장면을 넣어 주기도 하셨죠."

'펜트하우스' 그 후의 김소연

김소연/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이전에도 믿고 보는 배우 김소연이었지만, '펜트하우스'를 통해 그 흡입력과 강렬한 존재감까지 인정받았다. 김소연은 "'어릴 때부터 김소연을 봐 왔는데, 예쁘려고만 했던 김소연이 배우가 됐다'는 말을 듣고 너무 감사했다"면서 "짧지 않은 시간 늘 활동을 했는데, 열심히 살고 부지런 떤 노력을 조금이나마 알아주신거 같아서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일각에서는 천서진이 워낙 강한 인상을 남긴 탓에 "김소연이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냐"는 반응도 나오지만, "큰 도전이 될 수 있을 거 같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다. "저는 코미디를 사랑해서 시트콤 같은 장르도 하고 싶어요. 나이가 있긴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도 경험해봤으면 하고요. 그런 작품을 만나면 신나서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악역이 온다고 하더라도 기쁜 마음이 들 거 같아요. '펜트하우스'를 하면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고, 이걸 통해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그걸 토대로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싶어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