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회장에 공 넘긴 FI "풋옵션 가격 평가기관 선임…법률비용 부담하라" [마켓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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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 "ICC 풋옵션 효력 인정"…신창재 회장에 가격 산정 재차 요구≪이 기사는 09월10일(08:14)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신 회장 가격산정 강제할 방법은 없어…"이행 가능성 낮다" 평가도
추가 소송전 이어질 가능성도

중재 판결문은 FI측이 제시한 주식 풋옵션 가격(40만9000원)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풋옵션 자체의 효력은 인정됐다는 게 골자다. 재판 비용에 대해 신 회장 측이 자신의 비용과 FI측의 비용 전액 및 변호사 비용 절반을 부담하도록 했다. FI측 비용은 약 1600만달러(약 19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 측이 이 비용을 일정 기간 내 내지 않으면 일별 이자가 추가로 붙는다.
FI(어피너티, IMM PE, 베어링PEA, GIC) 측이 교보생명 주식에 투자한 것은 8년 전인 2012년이다. FI는 교보생명 주식을 주당 24만5000원, 총 1조2000억원을 들여 샀다. 이와 동시에 3년 내인 2015년까지 교보생명가 상장하지 않으면 신 회장 측에 주식을 다시 사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권리(풋옵션)를 걸었다. 그러나 보험업 악화 등으로 교보생명 상장이 무산되자, FI는 2018년 풋옵션을 행사하면서 주당 가격 40만9000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신 회장이 풋옵션 가격을 제출하지 않았고, 결국 FI는 2019년3월 ICC에 중재를 신청했다.FI 측이 즉각 행동에 나선 것은 풋옵션 자체의 유효성을 인정받은 만큼 주주간 계약에 따른 공식 프로세스의 후속절차를 밟을 수 있게 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FI 측이 풋옵션 가격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신 회장이 가격 산정 평가기관을 선임하도록 하는게 최우선적 일이라는 판단이다.일각에선 FI 측이 중재 과정에서 40만9000원을 고집했다고 알려졌으나, FI 측은 중재재판부가 제시하는 제3의 가격도 수용할 의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이 FI 측의 요구대로 순순히 본인의 평가기관을 선임할 지는 미지수다. 신 회장은 중재 재판부가 양측 주주간 계약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어느 한 쪽이 평가기관을 선임하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는 만큼 FI 측 가격을 수용할 수 없다는 논리를 인정한 것을 토대로 일부는 승소했다고 보고 있다. 신 회장 이 FI 측 요구를 이행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는 이유다. 다만 신 회장이 2018년11월 FI 측에 “중재를 통해 풋옵션이 무효가 아니라고 최종 판정된다면 풋옵션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져 이번 요구도 대응하지 않는다면 이에 따른 부담은 지게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IB업계 관계자는 “FI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절반의 승리 정도로 봐야 된다”며 “궁극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게 목적인데, 그러기 위해선 또 다시 분쟁 절차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기관 투자가들에 투자금을 다시 돌려줘야하는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회수 절차를 밟으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양측이 한발짝 물러서서 합의로 풀어야하지 않겠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양측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데다 분쟁이 더 길어질수록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 없어 이제는 실리적으로 적정 가격 수준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신 회장은 FI측 과의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교보생명의 이미지도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채연/차준호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