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의 면역학 강의] 면역세포는 어떻게 감염균을 알아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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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승우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지난 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SARS-CoV-2)가 세계적인 문제가 돼 집 밖 출입이 어려워지니 모친께서 “무슨 코로나 같은 이상한 것들이 생겨서 사람들을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푸념하셨다. 생명과학과 바이러스 면역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어떻게 쉽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러게 말이에요” 하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모든 세대가 처음 겪어보는 바이러스 팬데믹을 통해 어느새 면역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단어가 됐다. 하지만 면역이 어떻게 작동하는 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면역학이 생리학에 기반한 학문으로,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기엔 만만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면역이란 무엇일까
면역이란 우리 몸에 침입하는 미생물에 대항하기 위해 진화한 시스템이라는 것은 대부분 상식으로 알고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말했다. “인간이 자연적으로 갖고 있는 근원적인 힘이 곧 질병의 진정한 치유력이다.” 그 치유력 중 하나가 면역력일 터이다.
면역의 어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동양의 면역(免疫)은 염병(染病)을 면(피)하다는 뜻이고, 서양에서 면역(immunity)의 어원도 exemption, 즉 ‘면제’다.위키피디아는 면역에 대해 ‘다세포 생물이 해로운 미생물을 대항하는 능력’이라고 얘기한다. 여기까진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귀 기울여보면, ‘면역 이란 자기의 것에는 관용적(tolerant)이고 비자기의 것에는 저항하는 능력을 가진 복잡한 생물학적 시스템’이라고 답한다. 관용이라는 생소한 어휘가 나왔지만 그래도 납득할 만하다.
면역에 대해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 or foreign)를 구분해서 작동하는 면역에 대해 배웠을 것이다. 면역 시스템이 바이러스나 세균과 같은 명백한 비자기에게 격렬히 반응해 야 하므로 이는 누구에게나 명료한 정의라 할 수 있다.생명은 곧 기생과 공생의 역사
하지만 면역 시스템이 자기와 비자기를 구분함을 전제로 작용한다는 것은, 생명과학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모든 생명체를 구성하는 요소는 복잡성엔 차이가 있어도 거의 유사하다.
유기물질이라고 부르는 생명을 구성하는 원소, 분자들은 세균이나 바이러스나 인간이나 다를 바 없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 등 원소가 단백질, 지질(lipid), 탄수화물과 같은 고분자 물질의 형로 결합된 것이고, 바이러스나 세균도 비슷한 고분자 물질로 구성된 복합체임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일반생명과학을 공부한 지 오래된 분들을 위해 생명체의 진화에 대해 교과서 수준으로만 얘기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많은 학자가 지구에서의 생명은 기체들이 물과 함께 반응하면서 어느 날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원시 지구 바다에서 핵산(DNA 혹은 RNA)과 아미노산 같은 탄소 중심의 물질들이 물리·화학 법칙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즉 생명의 시원(始原)이라고 생각하는 원시 세포는 지질막(lipid membrane)으로 물과 분리된 공간 안에서 핵산이나 아미노산들이 서로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통해 안정된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이들이 점차 구조를 갖추고, 대사(먹고사는 일)를 익혀 마침내 자손을 생산할 수 있는 생명의 근본적인 속성인 유전을 만들었다.
이렇게 원시 세포의 형태에서 점점 복잡화돼 세균과 같은 미생물 생명체로 만들어진 게 약 30억 년 전이다. 그 후로 미생물은 지구의 역 사에서 어느 시기나 가장 번성했다. 세균에 비해 인간 세포는 말도 못하게 복잡하게 진화했다.
하지만 생명 활동의 근본적인 속성은 세균부터 인간 세포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바이러스도 같다. 즉 생명이란 유기물질로 구성된 고분자를 활용해 구조와 대사와 유전이라는 핵심 요소들을 갖고 일종의 연속체 안에서 계 속해서 진화해온 과정이다.
수십억 년 유기 생명체의 역사에서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기생 생물의 숙주였거나 기생 생물이었거나 아니면 동시에 그 두 가지를 담당해왔다. 이러한 기생과 공생의 역사는 생명체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고 감염성 질병이라는 것은 생명의 역사에서 너무나 보편적인 것이다.
물질 수준에서의 자기란 무엇인가
인간의 면역이 외부 감염균(즉 명백한 비자기)을 구분하는 것은 우리의 인식 체계가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 내에서 면역 세포들이 물질의 수준에서 구분하는 것이다. 면역세포들에게 의식이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유기물질의 단위로 내려갔을 때 감염균이나 우리 몸이 비슷한 유기물질의 복합체라면 무엇이 자기이고 무엇이 비자기인가를 구분하는 것은 생각보다 꽤 어려운 일이다.
생명의 속성을 가진 모든 것은 자기 방어라는 수단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모든 유기 생명체들은 같은, 하지만 제한된 유기물을 놓고 어쩔 수 없이 경쟁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면역은 단순하게 얘기한다면 이러한 원초적인 경쟁 속에서 한 유기 생명체가 타 유기 생명체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수단이 진화한 결과라고 얘기할 수 있다.
생명은 세균과 같은 단세포 생물에서 인간을 포함한 다세포 생물로 발전하면서 매우 복잡해졌다. 더불어 인간과 같은 다세포 척추동물은 미생물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게 됐다.
결국 굉장히 복잡한 면역 시스템을 우리 몸에 갖추는 것이 생존의 필수조건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면역을 바라보는 중심에는 아주 단순한 명제가 있다. 면역은 어떻게 물질의 수준에서 같은 유기물을 공유하고 있는 자기와 비슷하지만 다른 유기 생명체를 비자기로 구분해서 작동할 것인가다.자기와 비자기 모두에게 작용해서 어려운 면역
면역이 작동하는 방식을 인간의 질병들과 연결해서 바라보면 보다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다. 면역은 우리 몸의 생리활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혈액세포를 구성하는 백혈구가 우리가 상상하는 면역세포들로 우리 몸에서 유일하게 전신을 순환하면서 모든 조직의 일부분으로 기능하는 시스템이 면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질병에서 관찰되는 장기의 염증 반응에서 면역세포들의 작용이 큰 역할을 한다.
그럼 우리가 앞서 얘기한 자기와 비자기의 구분이라는 명제를 질병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보기로 하자. 면역은 분명히 비자기에게 반응한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감염균을 예로 들면 쉽게 이해된다.
면역이 비자기에게 반응한다 하더라도 꼭 해로운 비자기에게만 선택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많은 인자들인 땅콩, 꽃가루 등은 우리에게 해롭지 않은 비자기다. 따라서 면역은 무해한 비자기에게도 때로는 과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
면역은 대부분 자기에게는 반응하지 않고 이를 학문적으로 ‘관용한다(tolerate)’고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부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면역이 자기에게 격렬히 반응할 때가 있는데 이로 인해 1형 당뇨병이나 루푸스(lupus)와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생긴다.
때론 면역이 자기에게 반응해야 긍정적일 때도 있다. 바로 최근 많이 회자되는 항암면역 반응의 경우다. 우리가 부인하려고 해도 암세포는 우리 몸의 세포가 변형된 것이다. 즉 면역의 관점에서 반응하지 않아야 할 자기에 해 당한다. 이때 면역세포가 자기의 미세한 변형(세포의 생명활동을 구성하는 유전자와 단백 질의 변형)을 인지하고 변형된 자기를 제거해야 한다.
면역은 자기와 비자기를 구분해서 반응한다는 단순한 프레임은 감염병에서는 잘 들어맞는다. 하지만 면역을 암세포와 같은 인간의 복잡한 생리·질환의 넓은 범위로 확장했을 때는 자기·비자기의 구분으로 단순하게 면역 반응을 설명할 수는 없다.
어쩌면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되지만 이것이 진실이다. 그리고 이 지면을 통해 앞으로 얘기할 후천성 면역이 바로 이처럼 복잡한 반응을 조절하기 위해 존재한다.
감염균의 형태를 인지하는 선천성 면역
후천성 면역반응을 다루기 전에 선천성 면역 반응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면역반응은 크게 선천성 반응과 후천성 반응으로 구분할 수 있다.
최근 면역학은 1조5000개 면역세포들의 복잡함을 이렇게 단순하게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을 발견하는 중이나, 그럼에도 개념적으로 이 구분은 유효하다. 이 지면에서는 자기-비자기를 구분해 작동하는 면역에 집중해서 얘기하고 있으므로 선천성 면역도 이 관점으로 얘기할까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손자병법>의 유명한 어구로 전쟁에서 나를 잘 알고 또 적을 잘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는 뜻이다.
면역반응을 숙주와 감염균 간 전쟁으로 비유한다면 결국은 숙주와 감염균, 나를 잘 알고 적을 잘 알 때 그 전쟁에서 패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상기하자면 우리는 같은 유기 물질로 구성된 생명체들 간에서 물질 수준의 구분을 얘기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타고난 형태로 감염균과 같은 비자기를 물질의 수준에서 신속히 구분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온 국민의 상식이 돼버린 코로나바이러스 진단처럼 모든 생명체의 청사진인 유전자를 중합효소연쇄반응(PCR) 방법으로 증폭할 수 있다면 감염균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선천성 면역에 관여하는 세포들은 이러한 신속 진단을 타고난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진 센서 단백질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센서 단백질들은 무엇을 인식해서 감염균인 명백한 비자기를 알아챌 것인가. 바로 대부분의 감염균이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독특한 분자 형태(혹은 패턴)를 인지한다.
이를 감염균유래분자형태(PAMP)라고 한다. 즉 적을 즉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신호물질인 것이다. 선천성 면역에 관여하는 세포들은 이런 PAMP 물질들을 알아챌 수 있는 센서 단백질, 즉 형태인식수용체(PRR)를 세포 안팎에 무장하고 있다. 따라서 물질의 수준에서 면역세포의 PRR이 감염균의 PAMP와 반응해서 강한 선천성 면역반응을 유도함으로 서적을 인지하고 바야흐로 전투(염증 반응)를 시작하는 것이다.
감염균의 신호물질은 어떠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그럼 감염균들의 PAMP는 어떤 점들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어야 선천성 면역의 PRR이 명백한 비자기를 쉽게 인식할 것인가.
첫째, 숙주 세포에서는 절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물질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아군을 적으로 오인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둘째, 감염균의 바깥에 노출된 물질이라면 선천성 면역세포가 반응하기 쉬울 것이다.
셋째, 특정 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균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그렇지만 그것이 균의 생활에서 매우 필수적이라 잘 변화할 수 없는 물질이라면 금상첨화다.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할 때 선천성 면역이 반응할 수 있는 명백한 비자기의 형태가 될 수 있다.
쉬운 예를 들어보려 한다. 세균들은 그람 양성 혹은 음성 균으로 세포벽을 특정 안료로 염색하는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세균들은 다세포 생물인 인간과 달리 혈혈단신으로 거친 세상을 살아야 하므로 자기 방어를 위해서 두꺼운 벽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세포가 갖고 있는 지질막이 속옷이라면 그 위에 두꺼운 외투와 갑옷을 입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포벽은 세균의 생활에 독특한 당(carbohydrate)이나 아미노산 같은 물질들이 복합적으로 쌓인 것으로 인간의 세포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세균은 편모(flagellin)라는 꼬리처럼 생긴 단백질 복합체를 프로펠러처럼 돌려서 이동한다. 역시 이러한 꼬리는 우리 인간의 세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세균만 갖고 있는 세포벽의 구성 물질과 세균을 움직이게 하는 편모 단백질은 균들만 갖고 있고, 균의 바깥에 노출돼 있으며, 균의 생활에 필수적인 물질로 균의 명백한 형태인 PAMP로 작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면역세포들의 관점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후천성 면역의 등장
따라서 선천성 면역반응은 조직의 최전방을 구성하는 세포들이 잘 갖추고 있어야 한다. 언제 어디로 침투할지 모르는 감염균들을 항상 감시해야 하므로. 지면 관계로 다 설명하지 못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선천성 면역세포 로는 모든 조직에서 보안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대식세포가 있다.
어원처럼 균을 먹어치우는 대식가다. 이들은 균의 다양한 PAMP를 인식해서 세포 내 생화학 신호 반응을 시작하고 곧 염증 물질들을 쏟아낸다. 염증 물질은 근처 혈관으로부터 다양한 백혈구들을 조직으로 불러들이는 미끼가 된다. 드디어 조직 내에서 한바탕 감염균과의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선천성 면역은 원시적이고 즉각적인 방식으로 강한 면역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하지만 정교하지 못하고, 그 반응이 오랜 기간 지속될 수도 없다. 게다가 감염균이 세포 내부로 들어가 물질 단위로 잘게 쪼개지고 균 고유의 형태가 사라진다면 선천성 면역은 감염균을 인식하는 데 한계에 다다른다.
이처럼 자기·비자기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순간이 바로 정교한 후천성 면역체계가 바통을 이어받을 차례다.
<저자 소개>
이승우바이러스면역학을 전공하고 포스텍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샌디에고 라호야면역학 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 2012년부터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포면역학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기초연구로는 점막기관 염증 및 감염 면역을, 응용연구로는 항암면역치료를 연구 중이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