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진의 바이오 뷰] 바이오의 미래

글 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
신약 개발 기업의 뚝심과 집념, 열린 사고방식, 기다릴 줄 아는 투자자의 이해가 합해져야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바이오의 미래는 어떨까. 유기생물을 다루는 바이오 분야는 다양함과 유전적 불안정성에 기반한 아주 불규칙적이고 예측불가한 복합적인 생명 현상의 네트워크를 다루고 제어하는 기법의 개발에 도전하는 영역이다. 그만큼 극복해야 할 많은 어려움과 장애가 도처에 널려 있는 지뢰밭이다. 전장(戰場)을 누비는 전사(戰士), 즉 과학자들의 치열하고 즐거운 놀이터다.

‘임상 현장에서의 미충족 수요가 있고, 인류 건강을 위한 사명감에 불타는 의생명과학자들이 있고, 이들을 격려하고 성공적인 결과를 기다리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있는 한 바이오의 미래는 밝다’라는 상투적인 문구로 마무리하기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양날의 검인 기술특례상장, 자칫하면 파이프라인 망가질 수도

그 이유는 “바이오의 미래는 밝을 수도, 암울할 수도 있다”가 필자의 솔직하고 정직한 답변이기 때문이다. 바이오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큰 역할은 의생명과학자들의 몫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의생명과학자들만으로 신약을 개발하고 검사, 진단법을 개발할 수만은 없다. 각종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인프라 확보와 연구비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이 재원 마련을 위한 투자나 상장 등 직·간접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바이오 분야에서의 성공은 다른 어떤 분야와 비교해도 월등한 명예와 부의 성취를 보장해준다. 당연히 부를 거머쥐기 위한 투자금이 유입되는데 이것이 양날의 검이 되어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동시에 바이오 분야에 미치고 있다.

밝은 면을 살펴보자. 기술이나 물질의 완성도가 낮은 초기에 들어오는 투자금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생명수 역할을 한다. 기술의 유효성과 실용화 가능성을 확인하고 물질의 개념이나 기전을 증명하고 검증한다. 씨에서 싹을 트이게 하고 줄기와 잎을 나게 하는 수분과 비료인 셈이다.

이후에 실용화와 상용화 개발 가능성과 가치가 관찰되면 장기간에 걸쳐 더 큰 규모의 투자비가 필요하게 된다.이를 위해 기술특례상장이라는 제도가 있다. 실용화나 상용화에 성공한 가시적인 성과가 없지만 잠재적 미래의 가치를 인정해 상장을 허용하는 제도다.

회사는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고 자본가들에게는 투자의 기회를 주어 양쪽 모두에게 승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매우 바람직하고 생산적인 제도다. 특히 올바르고 빈틈없는 방법으로 실용화와 상용화된 물질을 보유하고 있는 상장 바이오 회사는 주주를 포함한 회사 관계자에게도 다양한 혜택을 주고 사회에도 보탬이 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론같이 녹록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바이오업계에는 초기 발굴부터 최종 승인까지의 완성된 성공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퍼지고 있는 것 같다. 물질 개발의 완성도보다는 흥미롭고 매력 있게 포장할 수 있는 데이터 도출에 집중하며 될 수 있으면 초기 개발 단계에서 기술수출을 시도하는 것이 대세가 된 것이다.개발의 시간표에서 상장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내용이 주가 되는 느낌이다. 초기 투자자도 실용화와 상용화의 성공을 바라기보다는 상장을 통한 투자금과 이익 회수가 불문율의 법칙이 된 것 같다.

물론 우리의 연구환경이나 투자 현실에 맞는 판단일 수 있다. 하지만 불완전한 개발 단계에서 상장한 회사들의 주가는 실적보다는 이벤트성이거나 미래의 실적에 대한 홍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 기간 후에 내야 하는 매출 등의 실적을 내려고 외도(!)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기대와 다를 수 있는 개발 진도나 성과와 불안정한 주가에 대한 주주들의 분노와 원성이 주식 토론방을 가득 메우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투자자의 간섭 심해지면 개발 로드맵 무너질 수 있어, 적당한 협력이 필요

이런 개발과 투자의 악순환의 고리는 심각하고 치명적인 문제를 만들 수 있는데, 바로 개발 로드맵의 왜곡이다.

물질의 개발 일정이 물질의 특성에 맞춰 최적화되는 대신에 상장 요건을 충족시키는 데 맞춰진다. 심지어는 개발의 마일스톤을 투자자가 정하고 개발자의 연구 활동이나 내용, 결과에 대한 평가나 판단을 투자자가 하고 간섭하는 예를 드물지 않게 경험한다.

의뢰받은 투자금을 정해진 시간 내에 이익을 붙여 환급해야 하는 처지는 이해가 되나, 마치 국어 시간에 수학 전공자가 들어와 문법을 가르치고 수학시간에 국어 전공자가 피타고라스 법칙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당연히 회사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위축시키고 이는 회사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회사의 미래보다는 내 투자금에 목표한 이익금을 붙여서 나가면 그만이라는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다. 그런 환경에서 배출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경쟁에서 이기고 일류 상급 교육기관으로 진학하는 것은 손바닥에 털이 나는 것을 기다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럴듯하지만 엉성하고 불완전하게 개발된 물질은 언제든지 반환되거나 임상에서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학습됐을 것으로 믿는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 바이오 분야는 내가 아는 것이 모든 진리인 것 같은 착각을 하기 쉬운 분야다.

이는 바이오 분야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인성이 그렇다기보다는 워낙 복잡하고 수많은 기전을 연구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내가 평생을 공부하고 연구해온 ‘내 것’ 외의 다른 기전의 중요성이 망각되거나 수많은 직선 화살표로 표시되는 도식표에 물들기 때문이다.

생물학의 특성은 이형성(heterogeneity)과 유전적 불안전성(genetic instability)으로부터 유래한 다양성임을 잊지 말자.

생명현상은 한 가지 기울기를 가진 직선이 아니라 다양한 기울기와 상수를 가진 함수로 표시되는 곡선 그래프다. 투자자도 과학은 과학자에게 맡기고 긴 호흡으로 기다려주는 성숙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투자의 달인으로 불리는 현자가 강연 중에 한 말을 옮겨 적는다. “똑똑하고 잘난(척하는) 투자자는 씨 하나에서 나온 두개의 잎을 보며 자신의 업적을 뽐내고 만족하며 배불러 하지만 현명한 투자자는 자기가 키운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열매를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더 크고, 더 많고 더 맛있는 열매를 열리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반성하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존경의 향기를 즐긴다.”

마침 근간에 최종 승인된 물질을 갖고 상장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 회사가 있다. 자랑스럽고 부럽다. 그리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고맙다는 것이 필자의 마음이다.
<저자 소개>

김선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비뇨기과 전문의다. 일본국립암연구소의 초빙연구원을 거쳐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교수로 근무했다. 한미약품 부사장을 역임하고 플랫바이오를 설립했다. 중개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미국암연구학회(AACR) 학술상을 수상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