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곳간, 시민단체 ATM 전락"…오세훈, 민간위탁사업 정조준

민간 보조·위탁 사업 대수술 예고

"시민단체에 10년간 1兆 지원
다단계 형태로 예산 받아가"
市 감사위, 노들섬 등 27건 조사

일각 "전임 시장 흔적 지우기"
시민단체·여당과 갈등 커질 듯
오세훈 서울시장(사진)이 박원순 시장 시절 총 1조원까지 확대된 민간 보조금과 민간 위탁금 사업에 대한 대수술에 나섰다. “시민단체들이 다단계 형태로 서울시 예산을 받아내면서 혈세가 누수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시 안팎에선 “시가 민간 보조·위탁 사업을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여러 기관뿐 아니라 정치권과도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시민단체형 다단계로 혈세 낭비”

사진=뉴스1
오 시장은 13일 브리핑을 열고 “지난 10여 년간 시민사회 분야 민간 보조와 민간 위탁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뿌리박힌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오 시장의 ‘표적’은 비정상적으로 혈세가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시민단체 관련 사업이다.

서울시가 공모사업을 통해 예산을 투입한 시민단체는 2016년 1433곳에서 지난해 3339곳으로 2.3배 늘었다. 해당 공모사업 예산 규모도 같은 기간 641억원에서 2353억원으로 급증했다. 서울시가 지난 10년간 민간 보조금과 민간 위탁금 사업에 투입한 예산은 1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오 시장은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 전용 현금지급기(ATM)로 전락했다”고 표현했다. 특히 △특정 단체에 기금 운용을 맡기면서 위탁금 명목으로 약 40억원을 지급한 사회투자기금 △유관 시민단체에 용역을 발주하는 등의 지원을 한 민간비영리단체(NPO)지원센터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할 수 있는데도 관련 협회에 토지·이자·대출까지 지원한 사회주택 등을 비효율적인 사업 사례로 꼽았다.오 시장은 “이른바 ‘시민단체의 피라미드’ ‘시민단체형 다단계’로 시민 혈세가 낭비됐다”고 주장했다. 오 시장은 “민간 위탁 사업은 일부 시민단체를 위한 중간 지원 조직인 ‘중개소’를 만들었다”며 “특정 시민단체가 중간 지원 조직이 돼 다른 단체들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시민단체 출신 인사가 임기제 공무원으로 포진해 관련 시민단체에 재정을 지원하는 그야말로 시민단체형 다단계가 형성됐다”고 했다.

플랫폼창동61 등 위탁사업 감사

서울시는 혈세 누수 점검을 위해 민간 보조·위탁 사업을 포함, 사업별 성과 평가와 감사를 벌이고 있다. 시 감사위원회에서 감사와 조사를 진행 중인 것만 총 27건이다. 이해우 서울시 감사위원장은 “이 중 사회적 쟁점이 됐던 시민단체 관련 민간 보조·위탁 사업은 다섯 건”이라고 밝혔다.
서울시가 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사업 중에는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이 있다. 박 전 시장은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벤치마킹한 공연시설을 조성하겠다”는 오 시장의 계획을 뒤집고 노들섬에 주말농장용 텃밭을 만들었다.이후 “아까운 부지”를 놀린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2015년 개발 사업을 다시 추진해 문화시설을 지었지만, 현재 노들섬은 활성화가 부진하다.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은 어반트랜스포머라는 업체가 위탁운영하고 있는데 이 회사는 관련 사업을 추진한 경력이 없어 운영업체로 선정될 당시부터 논란이 제기돼 왔다. 서울시는 매년 위탁업체에 20억~30억원의 예산을 지급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6년 도봉구 창동에 개관한 플랫폼창동61에 대해서도 감사를 벌이고 있다. 플랫폼창동61은 컨테이너를 활용해 청년 문화공간을 조성한 것으로,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SH공사 예산 82억원가량이 투입됐다. 서울시는 플랫폼창동61 위탁운영사 선정 과정에서 이해충돌 소지와 특혜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청년 커뮤니티 공간인 청년활력공간 무중력지대 사업과 태양광 보급사업 등도 감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감사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밝힌 다섯 건의 사업 외에 박 전 시장의 대표적 사업인 고가형 공원 서울로7017과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있었던 서울숲 위탁운영사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정치권과 갈등 불가피

오 시장이 시민단체와 관련된 사업에 대해 칼을 빼 들면서 곳곳에서 반발이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10년간 관련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시민단체와의 갈등이 예상될 뿐 아니라 서울시 공무원들도 보복인사가 있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라며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야 할 사업 전체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오 시장에게 ‘정치적 역풍’이 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오 시장이 태양광과 사회주택에 대한 법적 대응을 예고하자, 공교롭게도 경찰은 오 시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 수사에 나섰다. 오 시장은 “이번 감사는 박 시장 흔적 지우기가 아니다”며 “시민 혈세를 내 주머니 쌈짓돈처럼 생각하고 ‘시민’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사익을 좇는 행태를 청산하는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