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신세계를 연 최강의 집념, 드보르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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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문화스포츠부 기자웅장하고 힘찬 선율에 몸과 마음이 들썩인다. 어디선가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리고, 그 문을 향해 성큼성큼 행진을 시작한 기분이 든다. 작품 제목부터 ‘프롬 더 뉴 월드(From the New World)’, 즉 ‘신세계로부터’다. 영화 ‘죠스’ ‘암살’ 등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진 이 곡은 체코 출신 음악가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의 교향곡 9번이다. 동유럽 음악에 흑인 음악과 인디언 음악이 더해져 독특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
드보르자크는 이 작품으로 음악의 신세계를 열었다. 그의 삶 자체도 그랬다. 최강의 집념과 끈기로 자신의 음악 인생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냈다.
지난한 여정, 지치지 않는 열정
드보르자크는 프라하 인근 넬라오제베스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여인숙과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도 당시 다른 집 장남처럼 가업을 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드보르자크는 음악을 좋아했다. 아버지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고심했지만, 결국 아들을 응원하기로 했다. 그렇게 그는 16세에 프라하 오르간학교에 다니게 됐다.이때부터 고난이 시작됐다. 돈이 부족해 항상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렸다. 이후 체코 국립극장 오케스트라에 비올라 연주자로 가까스로 입단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기서 10년 가까이 일했으나 부업을 찾아 헤매야 했고, 이름도 특별히 알리지 못했다.그러나 드보르자크는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오랜 시간 연주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지만, 연주보다 작곡에 더 큰 열망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기나긴 고난에도 조급해하지 않고 차근차근 작곡을 공부했다.
마침내 이 지난한 여정에도 끝이 찾아왔다. 1871년 오케스트라에 과감히 사표를 냄으로써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것이다. 그는 이후 작은 교회에서 돈을 적게 받고 연주하는 대신 남는 시간은 작곡에 몰두했다.
오랜 시간 탄탄하게 쌓아 올린 실력은 결국 세상이 알아보는 법. 그는 오스트리아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오스트리아 콩쿠르 당시 심사를 맡았던 브람스는 드보르자크의 음악에 흠뻑 빠졌다. 브람스는 그에게 대형 출판사를 소개했고, 이 출판사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과 같은 춤곡을 드보르자크에게 의뢰했다.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슬라브 무곡’이다. 드보르자크는 슬라브 무곡으로 단숨에 유럽 전 지역에서 명성을 얻었다.
최고의 재능은 집념과 끈기
그의 도전은 성공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1892년 드보르자크는 안락한 프라하 생활을 뒤로하고 과감히 미국으로 떠나 미국 내셔널음악원 원장을 맡았다.이 음악원엔 다양한 인종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이 덕분에 그는 이곳에서 흑인 음악과 인디언 음악을 접하게 됐다. 드보르자크는 다른 장르의 음악을 유연하게 받아들여 접목했고, 그 결과 대작 ‘신세계로부터’가 탄생했다. 미국 카네기홀에서 열렸던 이 곡의 초연은 대성공을 거뒀다. 이후에도 그는 ‘유모레스크’, 오페라 ‘루살카’ 등 다양한 색채의 음악을 만들며 체코 대표 음악가로 길이 남았다.드보르자크의 삶을 살펴보니 왠지 힘이 나 는 것만 같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항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좌절감을 때로 느낀다. 드보르자크는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과 울림을 선사한다. 최고의 재능은 집념과 끈기라고, 이 재능을 가꾼다면 언젠가 문이 열리고 신세계가 펼쳐질 것이라고.
◆‘7과 3의 예술’에서 7과 3은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의 3원색’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큰 감동을 선사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철학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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