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코로나 이후 빠르게 신용등급을 올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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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FO insight]대기업그룹에 속한 최고재무책임자(CFO)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게 있죠. '어떻게 하면 신용등급을 올릴 수 있을까.'
기업에 신용등급은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년간 계속해온 사업에 대해 시장의 공식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신용등급에 따라 기업 나래비가 세워지니까요. 혹은 시대 흐름에 맞춰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거나 재무 전략을 수정했을 때, 그 결과에 대한 일종의 '성적표'를 받는 것이기도 하고요.과거에 비해 신용등급이 떨어졌다는 건 사업이든, 재무 전략이든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신용등급이 올랐다는 건 사업과 재무 전략의 방향성이 긍정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죠. 단순히 신용등급이 올라서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지는 것보다 어찌 보면 더 큰 의미가 있는 셈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공식, 비공식적으로 시장에 내보이고 있는 새로운 평가 기준은 상당수 대기업 CFO들이 관심을 둘 만합니다. 사실 코로나19 확산 전후로 대다수 산업의 영업 환경과 트렌드가 빠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영향 뿐만은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달라지고 있는 각종 규제와 정책 환경도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책정해야 하는 신용평가사들의 고민을 깊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소비 트렌드나 글로벌 규제가 달라져 기업들의 사업 환경이 바뀌게 되면 언젠가는 사업·재무 상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니까요. 한국신용평가의 그룹별 진단 결과가 눈길을 끄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지난해 이후 올 상반기까지 주요 그룹의 신용 상태를 점검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 속 그룹별 경영 성과를 진단하고 앞으로 신용도 방향성을 잡기 위해서랍니다.점검 결과는 한 줄로 요약됩니다. '코로나19 적응은 끝났다. 이제는 탄소 중립이다.'
한국신용평가는 현대중공업, GS, 두산, 롯데, 신세계, 현대자동차, 포스코, 효성, 한화, SK, 삼성, LG, CJ, LS 등 총 14개 그룹을 분석했습니다. 14개 그룹 중 12개 그룹의 지난해 합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감소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코로나19에 따른 소비 위축과 국제유가 변동성 확대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정유, 석유화학, 유통, 자동차, 자동차 부품, 호텔, 면세 업종의 사업 포트폴리오 비중이 큰 그룹의 실적 변동성이 크게 나타났습니다. 정유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현대중공업, GS와 대규모 일회성 비용이 발생한 롯데, 두산의 지난해 영업실적이 크게 하락했죠.이에 비해 코로나19의 취약 업종을 일부만 하고 있거나 업황이 우호적인 사업으로 위험을 분산한 삼성, LG, CJ, LS는 영업실적 저하 폭이 제한적이거나 오히려 개선됐답니다. 올 들어선 전 그룹이 뚜렷한 실적 회복세를 띠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코로나19 극복 이후의 과제로 한국신용평가는 탄소 중립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차원의 탄소 중립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탄소 중립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요. 산업 전반의 탈탄소화는 가속화할 전망입니다. 탄소 중립 경제로 전환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들의 투자 부담과 비용 상승은 불가피하다는 의미입니다.
채선영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향후 친환경 공정과 제품에 대한 기술력 확보에 글로벌 우위를 점할 경우, 사업적 측면의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거의 모든 분석 대상 그룹이 탄소 중립의 영향권에 있다"고 말했습니다.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인지, 각 그룹은 펀더멘털(기초체력)에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습니다. 법적 규제 충족을 위한 지배구조 개편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고요. 결국 시장 전문가들은 그룹별 업황 변동에 따른 실적 변화 뿐만 아니라 미래 성장 동력 확보,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투자 부담과 성과가 각 그룹의 신용도 방향성을 결정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나이스신용평가는 앞으로 탄소 저감 기술 개발, 공정 개선 진행 상황 등 국내 기업들의 탄소 배출 규제에 대한 대응 방안과 대응 능력을 분석해 신용평가 요소로 반영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빨라진 산업 환경 변화와 함께 기업 신용등급을 높이기 위한 CFO들의 고민도 복잡해질 듯 합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