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71주년...시끌시끌한 인천 왜?

인천시 옥련동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 있는 유엔군의 월미도 해안 진격 모습의 조형물. 강준완 기자
올해 9월 15일은 인천상륙작전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1950년 9월15일 새벽 월미도 해변에 상륙한 국군과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해 같은 달 28일 서울을 수복했다. 서울탈환, 38도선 돌파, 압록강 진입 등 거침없는 북진의 신호탄이었던 인천상륙작전. 71년이 지난 인천에선 국군과 유엔군의 폭격으로 희생자가 발생한 월미도 주민들의 위령비 설치,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기념 현판 철거, 자유공원 인천상륙작전 조각판화의 진위 논란, 일부 시민단체의 맥아더장군 동상의 이전 주장 등이 쏟아졌다.

▶월미도 원주민 위령비 문구 논란
지난달 23일 인천지역 3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인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달 안에 월미공원 전통마당에 건립되는 주민 위령비에 ‘미군 폭격’의 명시를 주장했다. 인천상륙작전은 당시 국군과 유엔군(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네덜란드, 프랑스)의 합동작전이었지만, 항공기 폭격은 미군에 의해서 주도된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위령비는 월미도 해안가에 가한 폭격으로 희생된 마을주민들의 넋을 기리는 비(碑)다.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기 몇일전부터 북한군의 방어망을 붕괴시키고 전투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미군 등 유엔군의 폭격이 있었다. 당시 월미도에 거주하는 주민 100여 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시는 월미도 주민 위령비를 세우면서 국방부 등 관련기관의 자문을 받아 미군 폭격 표현의 적합성을 검토해 왔다. 당시 폭격은 유엔군의 작전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미군 폭격’이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16일 인천시에 따르면 위령비에는 '유엔군 소속의 미국 폭격에 의해 월미도 주민들이 피해를 봤다'는 문구를 넣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지난 2008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서에 따라 미군 폭격 사건으로 명시해 곧 위령비를 건립하고 다음달 5일 기념행사를 갖겠다”고 말했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집단 희생됐다고 결정서에 기록했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월미도 폭격은 사라져가는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한 부득이한 작전이었다"며 "폭격으로 희생된 주민들의 위로와 지원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특정 국가 군대를 가해자로 지목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반대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의 전두환 흔적 지우기
16일 인천시에 따르면 옥련동에 있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의 전두환 전 대통령 이름이 새겨진 현판이 다음달에 교체된다. 시는 전두환 대통령의 휘장과 이름을 삭제해 다시 설치하기로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기념현판 철거 여론이 높아지자 지난해부터 역사·보훈·시민단체 등 각계 전문가의 자문을 듣고 교체 여부를 검토해 왔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인천시 옥련동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명의의 현판. 강준완 기자
기념관 야외에 있는 자유수호의 탑 전면에 부착된 헌시 비도 없애고 그 자리에 6·25전쟁 참전국가 이름을 새길 예정이다. 인천상륙작전 기념 헌시 비에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뜻을 받들고 시민의 정성을 모아 기념관을 짓고 이 비를 세우니...”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인천시 옥련동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 있는 자유수호의 탑과 헌시 비(碑). 강준완 기자
인천에서는 그 동안 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등 시민단체들의 '전두환 미화 흔적 지우기' 요구가 잇따랐다. 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관계자는 “인천에 전두환을 찬양하고 기념한 흔적이 있는지 찾아내 제거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구국의 계기가 되었던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고 보존하기 위해 1984년 9월 인천시와 시민의 성금 등 총 43억원을 투입해 건립됐다.

▶수난 겪는 자유공원의 맥아더장군 동상
지난 10일 시민사회단체인 인천자주평화연대는 자유공원을 만국평화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맥아더장군 동상도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이나 전쟁기념관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15일 오후 자유공원 명칭 변경과 맥아더동상 이전을 주제로 토론회도 열었다.
인천 송학동에 있는 자유공원의 맥아더장군 동상. 강준완 기자
자유공원은 지난 1888년(고종 25년) 최초의 서양식 공원으로 조성돼 각국공원, 만국공원으로 불렸다. 일제강점기에는 서공원(西公園)으로 명칭 변경돼 해방을 맞았으며 1957년 맥아더장군의 동상이 세워지면서 60여년 동안 자유공원으로 자리잡았다. 인천자주평화연대 관계자는 “만국평화공원에 맥아더 동상이 있을 필요가 없다”며 “자유공원의 명칭 변경과 맥아더 동상의 이전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반미 성향 단체 등의 맥아더장군 동상 철거 주장도 매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8년 10월에는 평화협정운동본부라는 단체의 회원 2명이 동상에 불을 질러 맥아더 장군 왼쪽 다리가 검게 그을리는 사건도 있었다.

반면 시민단체 활빈단은 15일 자유공원 인천상륙작전 71주년 기념집회에서 "대한민국을 구해준 맥아더 장군에 대해 동상철거 음모를 벌이는 불순세력들은 어느 나라 국민이냐?”며 동상 철거 주장 움직임에 반발했다.

지난 2019년 맥아더장군동상 보존운동 행사를 주관한 인천지구황해도민회 관계자는 “대한민국에 자유를 선물한 맥아더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자유공원을 ’맥아더공원’으로 변경하려는데 100년 전 만국공원 명칭으로 회귀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맥아더장군 동상 이전도 절대 반대”라고 말했다.

▶맥아더장군의 필리핀상륙작전 조각판화 철거냐 존치냐
맥아더장군 동상 옆에는 인천 월미도에 상륙하는 맥아더장군과 군인들이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벽화(부조)가 있다. 조각벽화에는 맥아더 장군이 전우들과 파도를 헤치며 해안가로 상륙하고 모습이 형상화돼 있다.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장군 동상 옆에 설치된 조각판화. 인천상륙작전 상황이 아닌 1944년 세계 2차세계대전 당시 필리핀 레이테만에 상륙하는 맥아더장군과 군인들로 밝혀졌다. 강준완 기자
그러나 이 조각벽화는 인천상륙작전이 아닌 1944년 10월20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필리핀 레이테섬 해변에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과 군인들로 밝혀졌다. 1957년 맥아더장군 동상이 세워지면서 인천상륙작전 상황을 알 수 있는 조각판화 제작·설치과정에서 관련 사진을 구하지 못해 필리핀 레이테만 상륙사진을 참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필리핀 정부는 2015년 필리핀상륙작전 70주년을 기념해 이 사진을 주화로 제작하기도 했다.
필리핀 정부가 2015년 발행한 레이테만 상륙기념 주화. 독자 제공
인천 자유공원을 다녀간 많은 관광객들은 엉뚱한 벽화를 인천상륙작전 상황도로 알고 있었던 셈이다.시는 국방부 등 정부관련 부처에 확인 결과 필리핀 레이테만 상륙작전 상황으로 결론 내렸지만 당장 교체는 하지 않기로 했다. 필리핀 레이테만 상륙작전을 참고했지만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반전시켜 조각하는 등 나름대로 창의적인 부분도 있고, 60년 이상 맥아더장군 동상과 함께 해온 가치성등을 검토해 결정하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조각판화의 교체에 대해 자유공원과 관련된 시민들, 보수·진보단체 등의 의견을 종합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인천=강준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