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도 온라인서 파는데…국산 인증 중고차는 '제자리걸음'

테슬라도 이달 국내 인증 중고차 시장 참전
중기부 "한번 더 중재…심의위 일정은 미정"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메르세데스 온라인 샵' 인증 중고차. 사진=벤츠코리아
수입차들의 인증 중고차 사업이 나날이 성장하는 반면 국내 완성차 업계의 인증 중고차 진출은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가 이달 말 국내에서 인증 중고차 사업을 시작한다. 매입한 중고차를 자동차 전문 유통·관리기업 오토플러스와 협력해 상품화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판매할 것으로 알려졌다.테슬라는 판매한 모든 승용차 가운데 차체 구조에 문제가 없는 차량만 취급하고 정품 부품으로 수리할 예정이다. 해외의 경우를 참고하면 주행거리 7만km 이하 차량을 매입해 상품화하고 1년 이상의 보증기간을 제공하며 판매할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 북미 본사의 인증 중고차 판매 사이트. 사진=테슬라 갈무리
수입차 업계 1위인 메르세데스-벤츠도 온라인으로 인증 중고차 시장을 넓히고 나섰다. '메르세데스 온라인 샵'을 통해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보유한 인증 중고차를 한 눈에 보고, 견적서를 요청하거나 상담을 받아 구매를 결정할 수 있다. 예약금 100만원을 온라인으로 결제하면 원하는 인증 중고차를 선점하는 것도 가능하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수입차 브랜드 가운데 인증 중고차 사업을 가장 활발하게 전개하는 곳이다. 전국에 23개 전시장을 운영하며, 공식 수입된 차량 중 6년 또는 15만km 이내 무사고 차량을 매입해 198가지 항목의 품질 및 안전성 검증과 상품화 과정을 거친 뒤 판매한다. 1년/2만km의 무상보증도 제공한다.이 외에도 BMW 20곳, 미니 14곳, 아우디 11곳, 재규어 8곳, 랜드로버 8곳, 폭스바겐 7곳, 포르쉐 3곳, 람보르기니 1곳 등 다양한 수입차 브랜드가 인증 중고차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벤츠, BMW(미니 포함), 아우디, 폭스바겐 등 업계 1~4위 브랜드의 인증 중고차 판매량은 지난해 2만5680대에 달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1만5464대를 팔아 연 3만대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장안평 중고차 매매시장 모습. 사진=뉴스1
수입차 브랜드는 인증 중고차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국산 인증 중고차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2019년 2월 생계형 적합업종 신청이 접수된 이후 중고차 시장 개방을 두고 중소벤처기업부가 2년 반 넘게 결론을 내지 못한 탓이다. 법정 심의기한도 1년 3개월을 넘겼다.

보다못한 정치권이 상생안 도출에 팔을 걷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지난 6월 중고차매매산업 발전협의회를 만들어 상생협약 마련을 추진했던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이달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협의 최종 결렬을 선언했다.발전협의회에선 완성차 업계의 인증 중고차 범위를 5년 이하/10만km 이하, 시장점유율은 10%로 제한한다는 골자의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중고차 매매업계가 전체 시장 규모를 두고 이견을 빚는가 하면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매입에 반대하고 신차 판매권을 요구하면서 끝내 협상이 결렬됐다.

협의회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중고차 매매업계는 합의안 수정 과정에서 무리한 요구안을 추가 제시하며 어깃장을 놨다. 막판에 나온 신차 판매권 요구는 처음부터 합의할 의향이 없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5일 서울 구로구 글로벌창업사관학교에서 열린 '도전! 케이(K)-스타트업 청년리그'에 참가해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중소벤처기업부는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에 해당 안건을 넘길 방침이다. 다만 양측의 중재를 다시 시도할 예정이며, 심의위에 안건을 넘기는 시점 등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는 유보적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권칠승 중기부 장관은 전날 '도전! 케이(K)-스타트업 청년리그' 행사 직후 기자들과 만나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에 관련 사안이 넘어간 건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상당 부분 (상생협약에) 근접했다가 깨졌기 때문에, 협상을 조금 더 진행할 것인지 양측 의견을 물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재 시도를 마치고 심의위에 안건을 넘기는 시기에 대해서는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문제는 국내 자동차 산업 전체 측면을 고려하는 종합적 판단이 필요하다"며 "시기적으로는 언제로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중고차 시장 개방을 촉구하는 시민단체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완성차 업계와 중고차 매매업계가 인증 중고차의 시장점유율을 10%로 임의 제한하는 등 소비자 권익을 외면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대표는 "소비자 의견을 묻지도 않고 협의해서는 안 된다. 중기부가 절차대로 (심의위를) 진행해야 한다"면서 "조속히 결론을 못 내면 전 국민 온라인 서명 운동을 다시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앞서 동반성장위원회는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대해 '일부 부적합'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