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 신작 '완벽한 생애', 낯선 공간에서 마주하는 진심
입력
수정
지면A31
2019년 대산문학상 수상 작가대산문학상 수상 작가 조해진(사진)이 경장편 《완벽한 생애》(창비)로 돌아왔다. 지난해 5월 출간한 《여름을 지나다》(민음사) 이후 1년여 만의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각자 삶의 터전에서 도망치듯 떠난 세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다. 직장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친 윤주는 하루하루를 표류하는 배처럼 보낸다. “이참에 제주에 놀러 오라”는 친구 미정의 제안에 윤주는 제주로 가면서 자신의 서울 방을 숙박 공유 사이트에 등록한다. 현실적인 문제로 제주에 계속 머물 수 없지만 ‘다시는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윤주의 영등포 방을 빌린 이는 홍콩에서 온 시징. 홀연히 곁을 떠난 옛 연인 은철을 우연히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그의 고향인 영등포로 왔다. 한편 미정은 사회를 위해 옳은 일을 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지만, 신념에 금이 가고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제주로 내려가 ‘신념을 작게 나누는 절차’를 밟게 된다. 윤주와 시징은 방을 빌려주고 빌리는 사이에서 나누기 어려운 친밀한 말들을 담은 편지를 주고받고, 각자 ‘타인의 방’에 머물며 숨겨왔던 진심을 털어놓는다. 옳고 그름에 대한 확신 아래 판결을 내리는 법조인이 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던 미정도 제주에 머물며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된다.
소설가 최진영은 책의 발문에서 “《완벽한 생애》는 섬처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익숙한 일상에서는 기만이나 거짓으로 모른 척했던 진심을 낯선 공간에서 비로소 제대로 마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이 작품은 2019년 계간지 《자음과 모음》에 발표한 동명의 단편에서 시작됐다. 비정규직 문제, 제주 난개발 문제, 홍콩 시위, 베트남전 등 시대의 아픔을 담담히 그려내며, 그럼에도 훼손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2004년 등단한 조 작가는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김용익소설문학상, 백신애문학상 등을 받았고 2019년 장편 《단순한 진심》(민음사)으로 제27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