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조용필 노래가 뮤지컬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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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 국립정동극장 대표 hckaa@jeongdong.or.kr >누군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느냐고 물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라고 대답한다. 그의 노래에 묻어있는 절절한 감성을 좋아한다. 가사는 물론 한음 한음에 새겨진 애절함,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특유의 음색은 한국적 정서를 대표한다. 그는 1969년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1979년 ‘창밖의 여자’로 정식 데뷔했다. 조용필은 ‘가왕(歌王)’으로 불릴 만큼 명실공히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가수다.
세계적으로 K팝의 인기와 영향력이 대단하다. 그 열풍을 보며 이젠 한국을 대표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이 나올 때가 됐다고 느낀다. 조용필의 음악이라면 한국적 정서를 담아낸 롱런 주크박스 뮤지컬이 충분히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주크박스 뮤지컬은 유행했던 대중음악을 활용해 제작한 뮤지컬이다. 기존 가수의 곡으로 새로운 스토리를 구성해 극을 입히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완성도와 인지도를 갖춘 음악이 강점이긴 하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구성해야 하므로 ‘드라마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중요한 포인트다.
이 장르의 가장 큰 성공 사례는 영국 뮤지컬 ‘맘마미아’다. 스웨덴 출신 혼성 팝그룹 아바의 음악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로 세계 50여 개국에서 공연됐다. 아빠를 모르는 소피(딸)가 엄마(도나) 몰래 아빠로 추정되는 세 남성을 결혼식에 초대해 벌어지는 이야기와 흥겨운 아바의 노래가 잘 엮여 유쾌하고 화사한 맘마미아만의 매력이 완성됐다.
국내에서도 주크박스 뮤지컬이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광화문 연가’는 고(故)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와 죽음을 1분 앞둔 ‘명우’가 ‘월하’와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는 스토리로 엮어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13년 초연한 ‘그날들’은 고 김광석의 명곡들과 청와대 경호실을 배경으로 20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한 편의 영화 같은 스토리를 선보이며 대표적인 국내 주크박스뮤지컬로 자리 잡았다. 기타리스트 신중현의 곡을 묶어 193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의 무성영화관 하륜관을 배경으로 시대에 저항하는 청춘들의 드라마를 담은 ‘미인’이라는 작품도 3년 만에 소극장으로 무대를 옮겨 새로 관객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이미 주류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다. 대한민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가왕 조용필. 끊임없는 실험과 도전으로 음악적 장르 개척에도 앞장서 온 그의 음악은 다양한 소재의 드라마와 만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그의 음악과 철학, 특유의 정서를 담아낸 주옥같은 명곡들로 이뤄진 주크박스 뮤지컬은 분명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가왕 조용필의 주크박스 뮤지컬을 보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