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서재] '디파이'는 금융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캠벨 하비 外 3인 《디파이와 금융의 미래》

"脫중앙화 앱 봇물…기존 문제점 해결
유튜브처럼 '금융 빅뱅' 일으킬지 주목"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신종 전자화폐 정도로 알고 있다. 하지만 현행 금융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를 야기할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암호화폐가 지닌 파괴력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암호화폐 사업가이자 컨설턴트인 캠벨 하비, 애슈윈 라마찬드란, 조이 산토로 3인은 《디파이와 금융의 미래(DeFi and the Future of Finance)》에서, 정부 권력의 통제하에 있는 현행 중앙집중 금융제도와 비교해 암호화폐가 추구하는 탈중앙화 금융(DeFi: decentralized finance) 시스템이 지닌 장단점과 그 변화 가능성을 논의한다.중앙집중 금융 시스템이란 국가가 화폐 발행에 대한 독점권과 금융기관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보유한 제도를 말한다. 탈중앙화 금융 시스템이란 민간이 자율적으로 화폐를 발행하고 유통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사실 서구에서 근대 국민국가와 법정화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탈중앙화 금융이 원래 모습이었다.
캠벨 하비 外 3인 《디파이와 금융의 미래》
근대 중앙집중에 기반을 둔 금융제도는 자본주의의 산업화 진행 과정에서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제도가 진화하면서 몇 가지 문제점이 고착됐다. 첫째, 중앙은행의 독점적인 화폐 발행 통제에 기인한 인플레이션 고착, 그리고 감독당국의 금융기관 경영 통제로 인한 자율 경영 침해가 일어났다. 둘째, 정작 절실한 자금 수요자에게 금융기관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셋째, 금융소비자에게 부과하는 고율의 수수료나 부적절하게 높은 금리가 만연해 있다. 넷째, 상이한 기관과 국가에 화폐와 금융상품을 이동·추심·환전하는 데 과도한 시간과 비용이 발생한다. 다섯째, 금융소비자에게 거래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운영 구조는 장막에 가려져 있고 과연 자신이 적절한 금리를 적용받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2013년 비탈릭 부테린이 유연한 프로그래밍 구조를 도입한 스마트 계약 개념으로 이더리움을 제안한 이후, 이런 문제점들이 하나씩 해결될 가능성이 열렸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원조 암호화폐 비트코인에는 없던 특성이다. 이후 수많은 자율 설계형 탈중앙화 앱, 일명 디앱(dApp)이 금융 분야에서 봇물 터지듯 등장하기 시작했다. MakerDAO, 컴파운드, 에이브, 유니스왑, dYdX, 신세틱스 등 끝이 없다.DAO(탈중앙화 자율 조직)란 기존에 물리적 사무실, 인력, 자본 구조를 지닌 법인과 전혀 다른 알고리즘만으로 운영되는 디지털 조직이다. DAO 지분 참여자와 서비스 참여자는 각 개인의 컴퓨터로 DAO에 접속해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자산인 토큰의 채굴·보관·유통·교환·대출·지분 발행·신탁·자산유동화 등에 관련된 모든 행동 규약과 보상, 처벌은 철저히 알고리즘화돼 있다.

물론, 이제 첫발을 디딘 금융 디앱도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서 버그 및 해킹 위험, 악의적인 참여자의 집단행동에 따른 지배구조 위협, 블록체인 외부 데이터를 신뢰성 있게 시스템에 포함시키는 구조의 결함, 소수 참여자를 전제로 설계된 시간당 거래 규모의 제한(비자는 초당 6만여 건, 이더리움은 30여 건 거래 처리) 같은, 시스템 전력 소모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 주범인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막대한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고도 자기들끼리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중앙집중 시스템에 기생하는 엘리트들의 탐욕에 사람들은 환멸을 느꼈고, ‘월가를 점령하라’는 운동까지 일어났다.2005년 유튜브가 처음 등장했을 때, 훗날 대형 미디어에 이토록 위협이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과거 정부 인허가에 의존해 성장해온 레거시 미디어는 탈중앙화 소셜미디어의 위력 앞에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저비용으로 방송을 송출하고 공유하며, 전통 미디어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다채로운 콘텐츠가 폭발하고 있다. 무분별한 규제가 개입하지 않는 한, 앞으로 금융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이 있을까?

송경모 <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