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여행자들은 왜 '나치 독일' 눈치채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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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1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줄리아 보이드 지음
이종인 옮김 / 페이퍼로드
688쪽│3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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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은 1차 세계대전 종결부터 2차대전 발발까지의 전간기(戰間期) 독일을 둘러봤던 여행자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히틀러 시대의 ‘초상화’다. 당시 여행자의 일기와 편지, 언론 기사 등을 파헤친 이 책은 2017년 출간 이후 영미권 주요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높은 관심을 받았다.나치의 광기가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던 시기, 독일의 실체와 관광객이 받은 인상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여행객에겐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독일은 한적한 중세도시, 깨끗한 마을, 청결한 호텔, 인심 좋은 주민, 아름다운 바그너 음악, 시원한 맥주 거품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베를린의 대로는 독일 가정주부처럼 깨끗했고 청년은 생기가 넘쳤다. “청결함, 효율성, 유능함, 질서의식, 나는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는 미국 극작가 마틴 플레빈의 감상은 빈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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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진실을 외면한 것은 평범한 이들만이 아니었다. 히틀러가 격찬한 오버라머가우의 ‘수난극’을 관람한 5만 명의 미국인 중에는 반유대주의자였던 헨리 포드도 있었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 램지 맥도널드 전 영국 총리도 공연에 감명받았다. 에즈라 파운드와 윈덤 루이스, 크누트 함순, T S 엘리엇, W B 예이츠 등 파시즘에 매혹된 저명한 문인도 나치 구호에 공감을 나타냈다.
나치 역시 해외에서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는 선전 도구로 관광을 유용하게 활용했다. 다하우의 강제 노동수용소조차 영미 관광객에게는 관광 명소가 됐다. 나치도, 독일을 방문하는 여행객도 모두 독일인이 정치 분야만 빼놓고 보면 아주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길 원했다.이후 역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아는 후대인의 시선에선 이처럼 당시의 여행자가 남긴 기록은 황당하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다. 그들은 머릿속에 있는 ‘진짜 독일’을 찾아 나섰지만, 정작 그들이 만난 것은 가식적인 ‘허상’에 불과했다. 그나마 그 일면의 기억조차 곧 잊혔다.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책이지만 역자가 독일어와 독일사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고유명사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것은 흠이다. ‘퀴르퓌스텐담’(쿠르퓌르스텐담, 괄호 안이 정확한 표기), ‘크레디탄슈탈트 은행’(그레디트안슈탈트 은행), ‘프리드리히샤펜’(프리드리히스하펜), ‘바르타임 백화점’(베르트하임 백화점), ‘스포트팔라스트·스포츠팔라스트’(슈포르트팔라스트), ‘페스트스 필하우스’(페스트슈필하우스)처럼 원의(原意)를 모르거나 배경 지식이 없어 잘못 옮겨진 단어들은 열거하기도 힘들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