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나쁜 공약 감별법

자유·창의 침해하는 규제
증세, 큰 정부는 시대착오
대중영합적 공약 남발 안돼

도약의 기회 넘치는 미래 위해
재정건전성 유지하면서
기업과 개인의 도전 지원해야

김태윤 < 한양대 정책과학대학 교수 >
김태윤
대통령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구태의연하고 대중영합적인 저질공약 남발은 막아야 한다. 우선 나라의 환경과 상황을 살펴보자. 의외로 기회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첫째,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상이 급부상했다. 패권국가들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아졌다는 여러 증거가 보인다. 미사일 사정거리 제한 조치가 42년 만에 해제되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이 공개된 것 등이 그런 증거라고 판단한다. 한국의 국방력이 일취월장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우리 민족 역사상 최초로 한반도가 주변 강대국에 군사적으로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될 수 있다. 이런 안보 상황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시야가 필요하다.둘째, 전 세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하는 가운데 우리가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 있다. 정보기술(IT) 기반이 강하고 반도체 등 소재 생산에 강점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호기심 많고 활달한 국민 정서에 맞는 분야다. 특별한 자원도 필요없고 그저 인재들의 집중력과 모티베이션이 있으면 성취할 수 있는 상황이다. 경제 내지는 산업적으로 한국이 두 단계 훌쩍 점프할 수 있는, 하늘이 준 기회다.

셋째, 성장 잠재력이 감퇴하고 고령화로 사회의 활기가 떨어지는 데 비해 경제의 주도 세력인 기업들은 아직 젊고 도전 의욕이 넘친다. 따라서 사회의 안정성과 역동성이 조화를 이뤄 발전과 균형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사회문화적 상황에 진입했다. 불안전한 확산인 오버슈팅이나 장기침체의 위험 없이 성취를 달성할 수 있는 성숙한 단계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대부분의 공약은 통찰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위기, 쇠퇴, 피해, 편협한 열등의식 등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듯하다.첫째, 무슨 무슨 금지, 불법화, 의무화, 처벌 강화 등은 나쁜 공약이다. 자유는 목적이면서 또 수단이다. 자유가 있어야 창발(創發)이 가능하다. 눈앞의 것만 손본다고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여러 요소가 갑작스러운 충격에 위축되거나 소멸되거나 왜곡된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모빌리티도 금지했고, 역사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도 금지했으며, 이런저런 다양한 표현도 막았고, 수술하는 의사의 뒷모습도 촬영해서 감시하기로 했다. 사회가 이런 실패를 더 이상 감당하기는 어렵다.

둘째, 증세 공약은 나쁘다. 현명한 소비자와 투자자들이 두둑한 지갑으로 상품과 기업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정부는 제대로 돈을 쓰지 못한다. 특별고용촉진장려금,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은 예산을 절반도 쓰지 못했고, 고(故) 이건희 회장의 감염병 대응 기부금은 4개월 넘게 전액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변화가 심한 상황에서 어떻게 돈을 써야 할지 정부는 알지 못한다. 무지해서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나눠 먹는 방안을 아직 못 정했기 때문이다.

셋째, 재정건전성을 침해하는 공약은 나쁘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한국 경제의 차별적 강점은 높은 재정건전성이다. 깊이 따지면 꼭 그렇지도 않지만, 여전히 긍정적인 편이다. 재정을 ‘곳간’에 비유하는 것은 조선시대 이전의 세계관이다. 정부 부문 이외 공공·준공공 부문의 엄청난 부채 및 적자와 공공금융 부문의 높은 불확실성은 곳간의 세계관에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5년 전의 재정건전성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면 외부 충격이 왔을 때 과연 견뎌낼 수 있을지 우려되는 것이다.넷째, 국유화, 공공화, 환수 등도 나쁜 공약이다. 툭하면 국민에게 돌려준다고 하는데, 크게 보면 원래 다 국민의 것이다. 기존 민자유치 계약을 어겨가면서 어느 교각의 소유권을 변동시키려는 시도가 있다. 민간자본이 제대로 된 경영을 해서 몇 년간의 적자를 버텨내고 지난 수년간 흑자를 달성한 사업이었다. 집중된 소수의 이익을 챙겨주고, 넓게 흩어져 있는 다수에게 부담시키는 전형적인 ‘고객 정치’의 모습이다. 정치학 원론 교과서에도 가장 저질의 정책으로 소개하는 유형이다.

다섯째, 지역 인프라 건설은 나쁜 공약이다. 한국은 대부분의 인프라가 매우 젊고 촘촘하며 충분하다.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혼잡이나 미비는 IT로 얼마든지 완화할 수 있다. 지역 숙원사업이라 하면서 공항, 도로, 철도, 센터 등을 새로 짓는 것은 안타까운 자원의 낭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