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투잡' 근로자와 계약해지는 정당"…법원 판결에 갑론을박

근로시간 단축, 코로나19로 야간 투잡 급격하게 확산
기업 "피로 누적돼 업무상 재해 발생시 '중대재해처벌' 받을라" 우려

근로자 "사생활까지 침해 안돼"
법원 "주업에 영향 줄 수 있는
야간 겸직은 해고사유" 판결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등으로 '투잡' 직장인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회사가 이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이다. 사업주들은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고 업무상 재해 발생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우려하는 반면 근로자들은 어려운 경기에 소득이 필요한 데다 퇴근 이후 생활까지 사업주가 개입할 권리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계약직 근로자가 업무 시간 이후 야간 부업을 하면서 회사의 겸직 중단 요청을 거부한 것은 계약해지 사유가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 법원 "회사 지시 무시한 근로자와 계약해지는 정당"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유환우)는 지난달 20일 한 카드회사 계약직 직원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청구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노동위원회와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1993년부터 회사를 다니다 희망퇴직을 하게 됐다. 이후 2018년 10월 회사 재취업 프로그램에 따라 시간제 관리지원 계약직으로 재입사했다. 일을 다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A씨는 한 지자체와 근로계약을 맺고 야간 교대제 경비원으로 '겸직'을 시작했다. 겸직 후 열흘이 지나서야 회사에 겸직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회사는 "건강 악화, 사고 발생 위험성이 증가한다"며 불허했다. 그럼에도 A씨가 면담 자리에서 강행 의지를 보이자 회사도 강경대응에 나섰다. 회사 측은 "사규에 따라 겸직업무를 중단해야 한다"며 "겸직 중단을 증명하는 객관적인 서류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A씨가 이를 거부하자 회사는 결국 "고용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A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지만 지방노동위원회와 중노위가 신청을 기각하자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A씨는 소송서에서 "근무시간 중이 아닌 일을 끝내고 하는 부업은 승인·허가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근무시간 외의 겸직도 업무에 부당한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 금지된다"며 "A가 업무를 마치고 곧바로 야간 경비근무를 하거나 반대로 야간 경비근무를 하고 회사에 출근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데, 무리한 근로로 건강이 악화되거나 업무를 수행하면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A씨는 "다른 직원은 겸직을 하고 있다"며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해당 직원의 겸직은 주간근로이며, 근무일에 겸직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승인됐다"며 일축했다.

◆ 부업이 주업에 부정적 영향 어느정도 끼치느냐가 관건


지난 9일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통계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부업을 하는 근로자가 7월 기준으로 56만6000명을 기록해 전년보다 19.1% 급증했다.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규모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 플랫폼 업체의 증가,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인한 소득 감소 등이 이런 현상의 배경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인사관리 부서장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사업장에서 업무상 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를 형사처벌까지하는 상황에서 부업을 뛰는 직원들이 피로가 누적돼 사고가 나면 기업에도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유튜브를 겸업하는 한 디자인업체 근로자는 "투잡은 단순한 소득 보전 수단만이 아니라 자기 계발과 미래를 도모하는 것"이라며 "사생활까지 침해할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 정책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나타내는 의견도 나온다. 한 노무사는 "주52시간제는 근로자들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를 근로자들이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별도로 힘을 들여 다른 일을 찾게 만드는 것이 옳은 정책 방향인지는 의문"이라며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일률적인 근로시간 제한이 아니라 근로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겸직 및 투잡 근로자는 일률적으로 징계대상이 될까. 기업마다 취업규칙에서 '겸직금지' 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규칙이 있다는 것만으로 처벌 대상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원칙적으로 퇴근 이후 개인적인 시간 활용은 근로자의 자유라는 게 법원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하급심 판결 중엔 제조업체 근로자가 다방 영업을 함께 하다 징계를 받은 사안에서 “기업질서나 노무제공에 지장이 없는 겸직까지 전면적·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또 “겸직 때문에 지각과 조퇴가 많고 근태관리에 비협조적이었다면 징계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본업에 얼마만큼 영향을 주느냐가 징계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특히 해고 징계는 사회 통념상 더 이상 근로계약관계를 유지하지 못할 수준으로 근로자가 성실의무 등을 위반한 경우여야 한다. 판례를 분석해 보면 △기자가 신생 경쟁매체를 설립하는 데 적극 가담한 경우 △가게를 운영하면서 회사 직무나 직위를 부당하게 이용한 경우엔 당연히 해고 사유가 됐다. 반면 △직원이 외부 대학에 출강을 나갔지만 미리 승인 받은 경우 △근로자가 다른 외부 활동을 했지만 회사에 특별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해고할 수 없다고 본 판결도 있다. 결국 △부업이 주업에 영향을 끼쳤는지 △징계를 할 정도의 사유가 되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다.

최홍기 한국고용노동교육원 교수는 "투잡 직원을 무조건 징계하기 보다는 사전 허가 제도를 도입하고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 등에 복무 및 충실의무와 관련한 근로자의 준수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해서 근태관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