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시행됐다면 '권순일 화천대유行' 기사 못 나왔다 [조미현의 국회 삐뚤게 보기]

사진=연합뉴스
동아일보는 지난 16일 경기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된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에 권순일 전 대법관이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습니다. 화천대유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 시절인 2015년부터 대장동 일대 개발 사업에 참여한 업체인데요. 개인이 5000만원씩 투자해 수천억원의 배당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화천대유 고문을 맡은 권 전 대법관이 지난해 7월 이 지사의 선거법 위반이 무죄로 뒤집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이 지사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화천대유와의 관련성을 강하게 부인했는데요. 이 지사를 사실상 대권후보까지 오를 수 있게 길을 열어준 지난해 판결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권 전 대법관이 화천대유 고문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은 언론이 아니면 밝히기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시행됐다면, 이런 보도는 나오기 어려웠을 겁니다.

민주당 개정안 제30조의2에 따르면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 정무직 공무원과 후보자 등과 공익침해행위와 관련한 언론보도 등은 적용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을 보면 화천대유는 민간기업입니다. 또 권 전 대법관은 현직이 아닌 전직입니다. 언론 입장에서는 이런 사실만으로도 이 지사 판결과 관련 공익을 침해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할 수 있지만, 언론중재법이 통과되면 법적으로 이런 언론의 보도가 보호받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언론중재법은 또 열람차단청구권도 보장하고 있습니다. 해당 인물이 언론사에 기사의 열람차단을 청구한다면 언론사가 이를 거부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 등은 전날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서한을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에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HRW는 "현재 제안된 내용으로 볼 때 개정안은 표현의 자유, 정보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언론의 비판적 보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개정안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정의가 모호해 남용의 여지가 있다"며 "언론사가 소송을 유발할 수 있는 보도를 피하려고 자기검열을 하면 비판적 보도와 인기 없거나 소수 의견에 대한 보도 등 다양한 표현을 제한할 잠재성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진실하지 않은 내용'과 관련 열람차단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대해서는 "단순히 허위라는 이유로 표현을 제한하거나 처벌할 수 없다고 규정한 국제인권원칙에 위배된다"고 꼬집었습니다. 최대 5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경우 "무거운 벌금형과 같은 과도한 제재는 표현의 자유를 얼어붙게 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민주당은 한국 언론에 대한 신뢰가 낮은 점을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언론이 자성할 부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권 전 대법관이 화천대유의 고문으로 있다는 보도를 보면서 언론 본연의 기능이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법으로 언론을 압박하는 시도가 계속된다면, 권력을 의심하고 견제하는 언론의 칼날이 무뎌질 것입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