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진단 트렌드로 떠오른 유전자가위…생활진단 시장 열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유행으로 주목 받은 분자진단 시장이 유전자가위 기술로 한 단계 더 도약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전자가위를 접목한 진단키트를 개발하는 기업이 나오고 있다.

바디텍메드는 이달 초 유전자가위 기술 개발사인 엔세이지와 진단 플랫폼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한 분자진단키트를 개발할 예정이다. 엔세이지는 툴젠, 지플러스생명과학에 이어 국내 세 번째로 유전자가위 기술을 보유한 업체다. 유전자를 편집하는 데 쓰이는 ‘크리스퍼-카스12a’ 단백질 50개에 대한 특허 출원을 마쳤다.유전자가위는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만 편집해 발병 원인 자체를 없앨 수 있는 치료 기술이다. 지난해 에마누엘 샤르팡티에 박사와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UC버클리 교수가 유전자가위의 일종인 ‘크리스퍼-카스9’의 연구개발 성과로 노벨화학상을 받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진단 분야는 유전자가위의 상용화 속도가 가장 빠른 분야로 꼽힌다. 지난해 5월 미국 신생 바이오벤처인 셜록바이오사이언스가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코로나19 진단키트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긴급사용승인을 받으면서 시장이 열렸다. 셜록바이오사이언스는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하버드대 등이 주축이 된 브로드연구소의 연구진들이 대거 참여한 기업이다. 미국 UC버클리의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하는 매머드바이오사이언스도 유전자가위 기반 코로나19 진단키트를 보유 중이다.

유전자가위는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리보핵산(RNA)을 잘라낼 수 있다. 이 RNA를 잘라내는 조건을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잘라낼 RNA에 형광물질을 달아 놓은 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인식했을 때 이 RNA를 자르도록 조건을 설정해두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있을 때만 형광물질이 떨어져 나가는 진단키트를 만들 수 있다. 매머드바이오사이언스는 형광물질 대신 금 입자를 이용한다.유전자가위 기반 진단키트는 코로나19 확진용으로 쓰이는 종합효소연쇄반응(RT-PCR) 방식 분자진단키트처럼 유전자 수를 불리는 증폭 과정이 필요 없다. 증폭 장비를 둘 필요가 없으니 현장진단용 제품을 만들기도 수월하다. 바디텍메드 관계자는 “유전자가위 진단키트의 민감도는 RT-PCR 방식(99%)보다는 낮지만 면역진단 방식(90% 내외)보다는 높은 편”이라며 “민감도를 더 높이면 현장진단 분야에서도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다른 국내 기업도 유전자가위 관련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바이오니아는 툴젠과 함께 유전자가위 ‘크리스퍼-카스9’ 제공 서비스인 ‘아큐툴’을 올 초 출시했다. 아직 유전자가위 기반 진단키트 개발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툴젠과 협력 관계를 구축한 만큼 향후 사업 확장 여지가 충분하다는 업계 관측이 나온다. 지플러스생명과학도 유전자가위 기술을 적용한 진단키트를 개발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진단 시장은 치료제 시장보다 제품 개발 속도가 빨라 유전자가위 개발사가 매출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며 “유전자가위 진단키트 개발이 진척되면 다양한 증상의 원인을 약국, 의원 등에서 확인하는 생활진단 시대도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