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 가는 문재인 대통령…'부담'된 언론규제법

현장에서

유엔인권사무소 "국제규약 위배"
訪美 중 '답변' 요구받을 가능성

임도원 정치부 기자
“언론중재법 관련 서한 내용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16일 “휴먼라이트워치(HRW)가 보냈다는 서한 내용을 이 단체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며 이같이 말을 아꼈다. “언론중재법이 현재 국회에서 협의체를 통해 추가적인 검토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이유로 내걸었다.국제 인권단체인 HRW는 당일 한국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수정을 촉구하는 서한을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에 보냈다며 그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차 19일 미국으로 출국하기 사흘 전에 나온 ‘글로벌 뉴스’였다.

이른바 ‘언론재갈법’으로 불리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국내외에서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 8월 개정안의 일부 내용이 국제인권규약 중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 정부에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정부는 OHCHR에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앞으로도 그 목적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문 대통령도 명확하게 의견을 밝히지 않고 있다. 야당은 “문 대통령이 퇴임 후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직이 아닌 퇴직 공무원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따라 자신에 대한 언론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런 논란 속에서도 줄곧 침묵을 지켜오다 지난달 여야가 협의체를 꾸려 개정안을 논의하기로 합의하자 “숙성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언급했다.정부와 청와대, 문 대통령의 불분명했던 입장 표명은 문 대통령의 미국 방문 길에 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엔총회 일정 중 국제사회로부터 언론중재법에 대한 견해를 직간접으로 요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 방문 기간 부가 일정으로 잡힌 미국 ABC방송과의 현지 인터뷰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전날 방송에서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을 삭제하겠다”고 하는 등 법안의 문제점을 인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기존과 같은 답변으로 일관한다면 국제사회의 시선은 더 차가워질 전망이다. 후일 역사에서 언론중재법 개악 과정에 ‘고의·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