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임용 법조경력 '10→5년' 부결에…로펌들 안도한 까닭 [최진석의 Law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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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한 숨 돌렸습니다.”
국내 한 중견 로펌 대표 변호사가 한 말입니다. 지난달 말 국회 본회의에서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부결된 것을 두고서 한 말입니다. 이 개정안의 핵심은 판사 임용에 필요한 최소 법조경력기간을 현행 10년 이상에서 5년 이상으로 완화하는 것입니다. A 대표 변호사는 “판사 임용 경력기간이 5년으로 완화될 경우 능력 있는 변호사들이 판사 지원에 나서면서 인력 유출 문제가 심각해진다”며 “이번 개정안 부결 덕분에 이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게 됐다”고 안도했습니다. 이어 “다른 로펌들도 다들 비슷한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올해 판사 임용자격의 경우 사법연수원 또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수료 또는 졸업한 뒤 판사, 검사, 변호사 등으로 5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합니다. 내년부터는 경력 기준이 7년으로 늘어납니다. 2026년부터는 10년으로 상향됩니다. 갈수록 더 많은 법조경력을 요구하는 구조입니다. 이는 2011년 법원조직법 개정에 따라 최소 법조 경력을 보유해야 판사로 임용하는 ‘법조 일원화 제도’가 시행된 데 따른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법원 안팎에서 “앞으로 좋은 법관을 뽑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경력 기준을 높였을 때 실력 있는 이른바 ‘에이스 변호사’들이 판사 임용에 지원하겠느냐는 지적이죠. 경력 7~10년이면 로펌에서 한창 활약할 시기인데 이 때 실력 있는 변호사들 중 높은 연봉을 뒤로한 채 판사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국책 연구기관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견을 내놨습니다. 사법정책연구원이 최근 ‘판사 임용을 위한 적정 법조 재직 연수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판사 임용을 위한 10년 이상 법조 경력 기준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법조 일원화 제도 시행 이후 판사 임용 규모가 줄고 있다”며 “그 원인 중 하나가 과도한 법조 경력 기준”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2006~2012년 매년 149~175명의 판사가 임용됐지만 2013년 이후에는 매년 39~111명 수준으로 임용 규모가 줄어들었습니다. 이번에 국회에 제출된 법원조직법 개정안도 이 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국회에 제출된 것이었죠. 하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국회에서 부결된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개정안 의결 반대 토론자로 나선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장 중 몇 가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대형 로펌 출신들의 독식입니다. 개정안 통과 시 대형 로펌 출신자들과 법원 내부 승진자들의 독식현상이 심해지고 전관예우, 후관예우도 더 강해질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올해 판사임용 절차를 진행한 결과 신규 임용 판사 157명 중 상위 7개 로펌 출신이 50명, 법원 로클럭 출신이 6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국 신규 판사의 8분의 1이 김앤장 출신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이 의원은 “판사 임용 경력을 5년으로 퇴보시킨다면 법원은 변호사 시험성적 좋은 사람들을 로클럭으로 입도선매하고, 대형 로펌들은 3년 뒤 판사로 점지된 이들을 모셔가기 위해 경쟁하게 된다”며 “이것이 바로 후관예우”라고 비판했습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1심 판사를 5년 하고 나서 2심 판사로 승진심사를 받게 되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이 의원은 “5년차 승진판사, 6년차 승진 판사 등 판사들이 서열화되고 승진 탈락하는 판사들은 옷을 벗고 전관 개업하면서 전관예우 논란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법대로라면 법관 부족으로 인한 재판 지연 문제가 더욱 심각해 질 수밖에 없다”고 법안통과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10년 간 민사사건의 1‧2심 처리일수가 증가한 수치를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2010년 138.3일에서 2020년 171.9일로 30일 이상, 형사사건도 2010년 104.7일에서 161.3일로 56일 이상 증가했다는 것이 홍 의원의 분석이었습니다. 법관 임용 경력 확대로 인해 법관 부족 현상이 심해질 경우 재판 지연 문제도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부결됐습니다. 이에 대해 대법원도 반박에 나섰습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임용절차가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특정 대형로펌 출신 변호사에게 유리한 구조가 아니라는 점, 법조경력을 10년 이상으로 높일 때 오히려 후관예우 위험성이 더 크다는 점, 5년 이상과 10년 이상을 구분 운영한다고 해서 승진제도를 부활시키는 건 아니라는 점 등입니다.
대법원이 이런 자료를 낸 것을 두고 머지 않아 국회에서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재상정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개정안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 등 변호사 단체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찬성을 해왔습니다. 반면,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은 반대하고 있습니다. 법학계 전체가 주목하고 있는 이 사안을 두고 향후 재상정과 재의결이 이뤄질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번 개정안 부결로 가슴을 쓸어내린 로펌들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겠죠. 로스쿨 도입 후 이전보다 변호사의 수는 늘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좋은 변호사’는 부족하기 때문이죠.
법관 임용 경력을 둘러싼 논란이 일반인들에겐 남의 얘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관들이 재판을 통해 판결을 내리는 만큼 법관의 질과 양은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법관 임용 경력은 내년에 7년으로 확대됩니다. 과연 연내에 개정안이 국회에 재등판에 본회의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당초 계획대로 경력 10년을 향해 달려가게 될까요. 관심 갖고 지켜봐야 할 사안입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국내 한 중견 로펌 대표 변호사가 한 말입니다. 지난달 말 국회 본회의에서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부결된 것을 두고서 한 말입니다. 이 개정안의 핵심은 판사 임용에 필요한 최소 법조경력기간을 현행 10년 이상에서 5년 이상으로 완화하는 것입니다. A 대표 변호사는 “판사 임용 경력기간이 5년으로 완화될 경우 능력 있는 변호사들이 판사 지원에 나서면서 인력 유출 문제가 심각해진다”며 “이번 개정안 부결 덕분에 이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게 됐다”고 안도했습니다. 이어 “다른 로펌들도 다들 비슷한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올해 판사 임용자격의 경우 사법연수원 또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수료 또는 졸업한 뒤 판사, 검사, 변호사 등으로 5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합니다. 내년부터는 경력 기준이 7년으로 늘어납니다. 2026년부터는 10년으로 상향됩니다. 갈수록 더 많은 법조경력을 요구하는 구조입니다. 이는 2011년 법원조직법 개정에 따라 최소 법조 경력을 보유해야 판사로 임용하는 ‘법조 일원화 제도’가 시행된 데 따른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법원 안팎에서 “앞으로 좋은 법관을 뽑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경력 기준을 높였을 때 실력 있는 이른바 ‘에이스 변호사’들이 판사 임용에 지원하겠느냐는 지적이죠. 경력 7~10년이면 로펌에서 한창 활약할 시기인데 이 때 실력 있는 변호사들 중 높은 연봉을 뒤로한 채 판사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국책 연구기관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견을 내놨습니다. 사법정책연구원이 최근 ‘판사 임용을 위한 적정 법조 재직 연수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판사 임용을 위한 10년 이상 법조 경력 기준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법조 일원화 제도 시행 이후 판사 임용 규모가 줄고 있다”며 “그 원인 중 하나가 과도한 법조 경력 기준”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2006~2012년 매년 149~175명의 판사가 임용됐지만 2013년 이후에는 매년 39~111명 수준으로 임용 규모가 줄어들었습니다. 이번에 국회에 제출된 법원조직법 개정안도 이 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국회에 제출된 것이었죠. 하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국회에서 부결된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개정안 의결 반대 토론자로 나선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장 중 몇 가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대형 로펌 출신들의 독식입니다. 개정안 통과 시 대형 로펌 출신자들과 법원 내부 승진자들의 독식현상이 심해지고 전관예우, 후관예우도 더 강해질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올해 판사임용 절차를 진행한 결과 신규 임용 판사 157명 중 상위 7개 로펌 출신이 50명, 법원 로클럭 출신이 6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국 신규 판사의 8분의 1이 김앤장 출신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이 의원은 “판사 임용 경력을 5년으로 퇴보시킨다면 법원은 변호사 시험성적 좋은 사람들을 로클럭으로 입도선매하고, 대형 로펌들은 3년 뒤 판사로 점지된 이들을 모셔가기 위해 경쟁하게 된다”며 “이것이 바로 후관예우”라고 비판했습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1심 판사를 5년 하고 나서 2심 판사로 승진심사를 받게 되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이 의원은 “5년차 승진판사, 6년차 승진 판사 등 판사들이 서열화되고 승진 탈락하는 판사들은 옷을 벗고 전관 개업하면서 전관예우 논란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법대로라면 법관 부족으로 인한 재판 지연 문제가 더욱 심각해 질 수밖에 없다”고 법안통과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10년 간 민사사건의 1‧2심 처리일수가 증가한 수치를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2010년 138.3일에서 2020년 171.9일로 30일 이상, 형사사건도 2010년 104.7일에서 161.3일로 56일 이상 증가했다는 것이 홍 의원의 분석이었습니다. 법관 임용 경력 확대로 인해 법관 부족 현상이 심해질 경우 재판 지연 문제도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부결됐습니다. 이에 대해 대법원도 반박에 나섰습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임용절차가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특정 대형로펌 출신 변호사에게 유리한 구조가 아니라는 점, 법조경력을 10년 이상으로 높일 때 오히려 후관예우 위험성이 더 크다는 점, 5년 이상과 10년 이상을 구분 운영한다고 해서 승진제도를 부활시키는 건 아니라는 점 등입니다.
대법원이 이런 자료를 낸 것을 두고 머지 않아 국회에서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재상정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개정안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 등 변호사 단체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찬성을 해왔습니다. 반면,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은 반대하고 있습니다. 법학계 전체가 주목하고 있는 이 사안을 두고 향후 재상정과 재의결이 이뤄질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번 개정안 부결로 가슴을 쓸어내린 로펌들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겠죠. 로스쿨 도입 후 이전보다 변호사의 수는 늘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좋은 변호사’는 부족하기 때문이죠.
법관 임용 경력을 둘러싼 논란이 일반인들에겐 남의 얘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관들이 재판을 통해 판결을 내리는 만큼 법관의 질과 양은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법관 임용 경력은 내년에 7년으로 확대됩니다. 과연 연내에 개정안이 국회에 재등판에 본회의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당초 계획대로 경력 10년을 향해 달려가게 될까요. 관심 갖고 지켜봐야 할 사안입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