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이 시공사를 해지하는 경우

브랜드 변경·금융지원 이견 탓
수백억대 소송전까지 갈 수도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시공자로 선정된 건설사가 다양한 이유로 해지·교체되는 경우가 생긴다. 시공자를 해지·교체하면 조합원에게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시공자를 교체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최근에는 아파트 브랜드명을 이유로 한 해지가 빈번해졌다. 대형 건설사들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하이엔드(최고급) 브랜드를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DL이앤씨(옛 대림산업)가 서울 한강변을 중심으로 ‘아크로’라는 고급 아파트 브랜드를 선보였다. 현대건설의 ‘디에이치’, 롯데건설의 ‘르엘’ 등 기존 아파트보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춘 브랜드가 있다. 조합이 시공자 선정 총회를 열고 계약을 체결할 당시 건설사의 제안 내용에는 이들 브랜드가 존재하지 않았다.하지만 눈높이가 높아진 조합원들이 다른 사업구역과 비교하며 하이엔드 브랜드로 변경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건설사는 공사비 등을 고려할 때 조합의 요구가 난감할 수밖에 없다. 시공자가 선정된 사업구역을 대상으로 일부 건설사가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을 앞세우면서 시공자 해지·교체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공사비와 조합원 금융지원 등의 이유로 시공사를 바꾸기도 한다. 몇 개 건설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시공자로 선정됐지만 단독 브랜드 선호로 인해 시공자가 교체되기도 한다. 이렇게 조합의 일방적인 해지로 시공자가 교체될 경우 조합원에게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

보통 건설사가 시공자 해지를 당하면 조합에 청구하는 소송이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시공자 지위 확인을 구하는 소송, 둘째 사업 수행을 위해 지출한 비용 및 시공자 지위에서 공사를 완료했다면 얻었을 이익 전부를 배상하라는 손해배상소송, 셋째 입찰보증금 원리금과 지연손해금 청구 소송 등이다.시공자를 해지하려면 조합원총회를 거쳐야 한다. 시공자 선정 때와 같은 방식, 즉 조합원 과반수의 직접 출석 요건을 충족해야 할 수도 있다. 과거 서울북부지방법원도 이와 비슷한 판결을 내렸다. 결국 시공자를 해지하는 경우에도 적지 않은 조합 자금 투입 및 조합원 참여 유도 등 현실적인 난관이 따를 수 있다.

조합원총회를 통해 시공자 해지를 결정했더라도 건설사는 조합을 상대로 객관적인 이유 없이 시공자 지위를 박탈했다며 시공자 지위의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할 수 있다. 또 건설사가 공사를 완료했다면 얻었을 이행이익 전부의 배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건설사가 주장하는 이행이익이란 것이 최대 수천억원에 이를 수 있다. 법원 판결에 따라 조합이 건설사에 배상해야 할 손해액이 수십억원이나 수백억원으로 감액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조합과 조합원에게 부담이 되는 액수다.

시공자였던 건설사는 조합에 수백억원의 입찰보증금을 납부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입찰보증금은 조합의 사업비로 전환된다. 그런데 시공자 해지가 진행되면 건설사는 이 사업비를 조합에 대여해 준 사업비로 봐야 한다며 정산을 시작할 수 있다. 이 경우 수백억원의 원금과 이자 등 지연손해금 상당을 청구하면서 전액 회수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시공자 해지를 한 이유가 건설사의 위법 행위로 인한 것이라면 조합은 입찰보증금 몰취를 주장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입찰보증금이 워낙 거액인 데다 최근 시공자 해지 추세가 건설사의 브랜드 선호에 따른 것임을 고려할 때 입찰보증금 전액 몰취라는 결론에 다다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조합원이 선정한 시공자에 큰 위법 사유가 있어 이를 시정하기 위한 시공자 교체는 필요하다. 하지만 선정된 시공자는 정비사업의 중요 파트너이고 시공자 교체에는 조합원 손해와 사업 지연이 발생할 수도 있다.

고형석 < 법률사무소 차율 대표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