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고 짓는 도시에 익숙해져 공간의 기억 남겨두고 싶었다"

초소책방 설계자 이충기 서울시립대 교수
“모든 장소엔 사람의 기억이 공존해요. 장소를 없애는 것은 그 공간에서의 기억을 서서히 없애는 것과 같죠. 뼈대는 남긴 채 최소한의 덧댐만으로 옛날 장소에 대한 기억과 흔적들을 살려두고 싶었어요.”

인왕산 ‘초소책방’의 설계를 총괄한 이충기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사진)는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보와 기둥 등 옛 건물의 골조를 의도적으로 남긴 채 리모델링을 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그는 “우리가 헐고 새로 짓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골목길, 담벼락 같은 오래된 흔적들을 너무 쉽게 없애고 있다”며 “이 때문에 피맛골 같은 도시의 작은 역사들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초소책방은 지은 지 50년이 넘은 건축물이다. 2018년 1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구조안전진단을 포함한 리모델링 설계 과정을 거쳐 2019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공사를 했다.

이 교수의 건축 설계 철학 중 하나는 ‘낡음과 새로움의 공존’이다. 기존의 형태를 보존한 채 위험한 부분은 제거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 넣는다. 초소책방 역시 콘크리트를 긁어내 철제 기둥을 드러냈고 외부 조망을 위해 유리벽과 2층 전망대를 지었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 봤을 때 초소책방의 외형은 과거 모습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그는 “물론 새로 지을 수도 있었지만 옛 건물과 공간에 남아 있는 이야기들은 우리 기억을 풍성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모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초소책방에 여전히 김신조 이야기가 남아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최근 책방 1층에 카페가 문을 열면서 방문객들은 전보다 더 많아졌다. 건물 앞은 의도치 않게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북 콘서트 등 책을 매개로 한 공공문화공간으로 활용하도록 설계했지만 지금은 의외의 장소가 돼버렸네요. 이름대로 쓰이지 않고 있어 아쉽습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