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빌라'라도…아파트값 폭등에 옮겨간 '2030 패닉바잉'

강남권 빌라 1년새 4.6억원 뛰어
빌라 매매가 월간 통계 12년만에 최대치
"아파트값 폭등하자 매매수요 빌라로 튀어"
서울 용산구 연립·다세대 밀집 지역. /연합뉴스
"젊은층은 대출을 받아도 감당 못할 정도로 아파트값이 뛰었습니다. 그나마 내 집 마련을 하려면 빌라밖에 안 남았어요."
서울의 중저가 구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2030 세대가 주도했던 '패닉바잉(공황구매)'이 빌라로 번지고 있다. 실수요는 물론 갭투자를 노리는 투자자까지 빌라를 찾고 있다. 서울 주요 지역에서 다주택이나 빌라 거래량이 늘고 매매가가 오르는 게 이를 방증한다. 서울 지역 빌라 매매가 상승률이 1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통계도 나왔다.

"이러다 내집 마련 못할라…빌라라도 사자"

24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개포동 '현대빌라' 전용 84㎡는 지난 6월 12억8000만원에 매매됐다. 1년 전인 지난해 8월 매매가가 8억2000만원이었던 것에 비해 4억6000만원이나 올랐다. 강북에서도 빌라 거래가는 가파르게 치솟았다. 7월 도봉구에서는 창동 '현대그린빌' 전용 57㎡이 2억2000만원에 팔렸다. 작년 7월 거래가인 1억7700만원보다 5000만원 가까이 상승했다.빌라 선호현상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서울에서 빌라가 아파트보다 많이 팔리는 기현상이 9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9월 등록된 서울의 다세대·연립주택 매매(계약일 기준)는 현재까지 1189건으로, 아파트 매매(412건)의 약 3배에 달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파트 매매가 빌라 매매보다 월간 2∼3배까지도 많은 게 일반적이었다. 국내에서 주택 시장 수요자들은 절대적으로 아파트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상황이 바뀌었다. 1월부터 9개월 연속 매매량 역전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매매가도 오름세다. KB국민은행 월간 주택가격 동향 시계열 자료를 분석해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전국 연립주택 매매가격 누적 상승률은 4.66%로, 지난해 같은 기간 상승률(2.61%)을 크게 웃돌았다. 작년 한 해 전국 빌라 매매가 상승률도 6.47%로 2008년(7.87%) 이후 12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월간 오름폭이 줄던 빌라 매매가는 지난 6월 0.22%에서 7월 0.59%로 상승폭을 키운 데 이어 지난달에는 0.82% 올라 올해 최고 상승률을 경신했다.

빌라로 몰리는 갭투자자들

빌라 매입의 장점은 '싼 가격'이다. 아파트를 매입하려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이 필요할 정도로 자금이 있어야 한다. 그나마도 대출 규제가 더해지면서 아파트 매수는 한층 어려워졌다. 그러나 빌라는 전세금에 조금만 보태면 매입할 수 있다.

중개업소에 따르면 빌라 시세는 인접한 유사 규모 구축 아파트에 비해 60% 미만에 불과하다. 서울 시내에서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60%에 달하는 곳들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아파트 전세금에 좀 더 돈을 보태면 인접지에서 빌라를 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 은평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유리창에 빌라 매매정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아파트 전세살이를 하다가 인근 지역에서 빌라를 매입해 이사한 직장인 김모 씨(35)는 "아파트 전세금을 빼니 빌라 매매가와 딱 맞았다"고 했다. 구축이라도 아파트를 사고 싶었지만 자금 마련이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은행권 대출마저 막히면서 남은 선택지는 빌라밖에 없었다. 그는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살 집도 없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상상 이상으로 컸다"며 "주변에서 나중에 팔기 어려울 수 있다며 말리기도 했지만 빌라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고 푸념했다.김씨 같은 실수요자는 물론 투자자들까지 빌라 시장에 뛰어들었다. 거래량이 늘고 가격이 오르면서다.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서울의 재개발 규제 완화 정책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빌라 수요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풀이된다. 강서구 화곡동 소재 공인중개사 대표는 "빌라 매매가가 많이 뛰었지만 전세 가격도 동반 상승한 탓에 인근에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500만원 가량 되는 빌라들이 아직 남아 있다. 여전히 갭투자 용도의 수요자도 많다"고 귀띔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