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감독 "보이스피싱 현실 고증에 노력…악성 앱도 체험"

"삶 곳곳에 침투한 보이스피싱…자책하는 피해자에게 위안 주고 싶어"

1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범죄 액션 영화 '보이스'는 누구나 한 번쯤 받아봤을 법한 보이스피싱 전화를 낱낱이 파헤친다.
취업준비생, 아파트 분양 신청자 등 전화를 받는 피해자의 감정을 자극하도록 짜인 대본부터 한국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인출책, 한 번도 실체가 드러난 적 없는 중국에 있는 본거지인 콜센터까지. 보이스피싱의 해부도를 펼쳐놓는다.

김선 감독은 28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현실성을 꼽으며 경찰, 금융감독원, 화이트해커 등을 통해 보이스피싱 범죄를 공들여 조사했던 과정을 전했다.

함께 연출을 맡은 쌍둥이 김곡 감독은 개인 사정으로 인터뷰에 참여하지 못했다. 김 감독은 "보이스피싱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은 오래전 일이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에피소드의 한 소재로 쓰이는 수준이었다"며 "적진 안으로 들어가 그 안의 사악한 기운을 주인공을 통해 관객들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은 점조직화돼 있고, 굉장히 넓고 얇게 삶의 군데군데에 침투해 있어요.

이를 한 단계, 한 단계 보여주기는 무리였지만, 최대한 영화에 많이 담으려고 했죠. 콜센터가 메인 공간이지만, 인출책, 환치기, 변작소 등도 배치하고 최대한 현실 고증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
영화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덫에 걸린 전직 경찰 서준(변요한)이 자신과 공사장 동료들의 빼앗긴 돈을 되찾기 위해 중국에 있는 본거지인 콜센터에 잠입하는 이야기다.
리얼 범죄 액션을 표방한 만큼 디테일에도 현실성을 더하려고 공을 들였다.

전화를 거는 아르바이트생은 대부분 한국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한국인, 콜센터를 관리하는 중간책은 조선족으로 배역을 설정한 사전 조사에서 얻은 정보를 녹인 것이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돈을 인출한 뒤에 피해자에게 다시 전화를 거는 가해자의 조롱도 실제 존재하는 일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더해 피해자 핸드폰에 깔려 모든 발신 전화를 가로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악성 애플리케이션인 '가로채기'도 화이트해커의 도움으로 실제 경험해 봤다고 했다.

김 감독은 "어떤 과정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니 정말 황당했다"고 말했다.

"막상 당해본 사람들은 '안 속을 수가 없다'고 일관되게 말해요.

전화를 받는 순간 공포가 파고들어 전화를 못 끊는다고요.

그러면서도 피해자들은 '내가 너무 바보 같았어'라고 자책해요.

영화에서 '여러분들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를 정말 해주고 싶었어요.

그놈들이 악랄하기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는 거지, 피해자가 잘 못 한 것이 아니라고요.

"
영화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돈에 대한 욕망에 취해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악마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김 감독은 보이스피싱의 가장 잔혹한 점은 비대면 범죄로 가해자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보이스피싱은 스마트폰 같은 정보 매체와 함께 진화하는 범죄여서 완전히 근절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더 쫓아야 하는 범죄"라며 "영화가 사회에 경각심을 일으키는 보탬이 되고, 범죄를 당한 분들에게는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개봉한 영화는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전날까지 누적 관객 수는 96만여 명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