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혁 감독 "살벌한 서바이벌, 현실 된 세상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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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 인터뷰지난 17일 공개된 직후부터 K콘텐츠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오징어 게임’. 미국을 포함해 영국, 프랑스 등 66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며 세계 넷플릭스의 선두 자리를 꿰찼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27일(미국시간) 한 콘퍼런스에서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가 현재까지 선보인 모든 작품 중 가장 큰 흥행작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역대급’ 인기의 비결이 뭘까. ‘오징어 게임’을 제작한 황동혁 감독(사진)을 28일 온라인 인터뷰로 만났다.
줄다리기·달고나 만들기 등
한국적 놀이로 글로벌 흥행
"현실·판타지 모두 담으려 노력
K콘텐츠 성장 동력은 경쟁"
“좋다가 얼떨떨하다가 놀라기도 합니다. 심플함이 인기 비결인 것 같아요. 놀이가 모두 간단하면서도 다른 게임 장르와 달리 서사가 자세하죠. 인물들에게 감정 이입을 해서 몰입하게 되는 점이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황 감독은 ‘남한산성’ ‘수상한 그녀’ ‘도가니’ 등 장르를 불문하고 흥행작을 탄생시켜왔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지면서 시작된다. 채무에 허덕이던 456명이 거액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게임에 참여한다. 게임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만들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등 지극히 한국적이다.
“영화를 만들자고 생각했을 때 해외 마켓을 염두에 두기는 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게 세계적이라는 말은 늘 나왔잖아요. 방탄소년단, 싸이, 봉준호 감독이 그걸 증명했죠. 그런데 ‘오징어 게임’이 이 정도로 잘 될 줄은 몰랐어요. 달고나 장사를 미리 선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우리끼리 하곤 했죠. 하하.”그가 작품을 기획한 건 2008년부터다. 하지만 당시엔 굉장히 낯설고 기괴하다는 평이 많아서 영화로 만들 수가 없었다고 했다. 황 감독은 “10년이 지나 이런 살벌한 서바이벌 이야기가 어울리는 세상이 됐고, 현실감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슬프게도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다”고 씁쓸해했다.
작품을 연출할 때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현실과의 밀접성이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소수의 마니아만 즐길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적인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며 “판타지적인 요소와 리얼한 요소를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함께 부여하는 게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456억원이라는 설정도 치열한 고민 끝에 나왔다.
“10여 년 전에는 상금을 100억원으로 설정하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시간이 지나니 작은 돈이 됐어요. 국내에서 가장 많은 로또 당첨금을 찾아보니 400억원대였어요. 그래서 한 명당 1억원 정도의 몸값에 기억하기 좋은 중간의 숫자로 456억원을 정했죠.”기훈(이정재 분)의 빨간 머리 염색에도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다. 황 감독은 “제가 기훈이라면 평소엔 절대 하지 않았을 짓을 할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떠올린 가장 미친 짓이 빨간 머리였다”며 “거기엔 기훈의 분노도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K콘텐츠의 저력은 어디서 나올까.
“한국은 참 다이내믹한 나라입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점도 그렇고, 전쟁과 분단을 딛고 짧은 시간에 고도성장을 한 점도 그렇죠. 경쟁도 굉장히 심한데, 그 경쟁이 어느 나라보다 앞서갈 동력을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작은 나라에서 문화적으로도 가장 앞서가는 것들이 생산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시즌1을 하면서 이가 6개나 빠졌다는 황 감독은 시즌2 계획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그는 “시즌2를 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데 너무 많은 분이 좋아해줘서 안 한다고 하면 난리가 날 것 같다”며 “앞으로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