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정재 "'오징어게임' 속 제 모습, 진짜 오징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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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 기훈 역 이정재*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중년' 이정재, 무능력한 가장으로
잘생김 내려놓은 고군분투,
'오징어게임' 흥행 이끌어
배우 이정재가 '오징어게임'의 세계적인 인기에 활짝 웃었다. 이정재는 지난 17일 첫 선을 보인 후 세계적인 인기를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의 주인공 기훈 역을 맡아 극을 이끌었다. '오징어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을 두고 목숨을 건 게임을 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공개 직후 22개국에서 인기 순위 1위에 올랐고, 한국 콘텐츠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1위에 등극해 화제가 됐다.
이정재가 연기하는 기훈은 게임의 마지막 참여자인 456번으로 합류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심으로 게임에 임한다. 인간의 다양한 욕망이 등장하는 게임장에서 마지막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았던 기훈은 게임의 참여자이자 주인공으로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었다.
연예계 데뷔 때부터 돋보이는 외모로 '청춘스타'로 불렸던 이정재는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회사가 도산해 직장을 잃고, 돈이 없어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사랑하는 딸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면서 돈이 생기면 경마장을 찾는 '루저'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분했다. 이정재는 "진짜 오징어가 됐죠?"라며 특유의 눈웃음을 보이며 "쌍문동 반지하에 사는 남자로 보이길 바랐다"고 기훈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고민한 부분을 전했다. ▲ '오징어 게임'이 현재 83개국에서 '오늘의 TOP 10' 상위권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인기를 실감하나.
공식 SNS를 운영하고 있진 않지만, '눈팅'(눈으로 보기만 하는)으로 찾아보면서 실감은 하고 있다. 열심히 찍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얼떨떨하고 감사하다. 넷플릭스와 작업은 처음인데, 촬영할 땐 다른 부분을 못 느꼈다. 스태프도 영화를 찍던 스태프였고, 촬영 방식도 영화를 찍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공개를 하면서 세계적으로 반응이 오니까 '글로벌 OTT의 힘이 이렇구나' 싶었다. 굉장히 많은 국가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고 있고, 거기에서 시시각각 반응들이 올라오는 걸 보니 놀라운 부분이 있었다.
▲ 주변 반응은 어떤가.
축하 연락을 많이 받는다. '오징어게임'을 본 시청자분들이 패러디하면서 영상 올려준 것들을 보는 것도 재밌다. 요즘 촬영을 시작해서 자주는 못 보는데 쉬는 시간마다 찾아본다. ▲ '오징어 게임'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독특한 부분들이 많이 있다. 한국 콘텐츠를 떠나서 독특하면서 여러 측면에서 복합적으로 많이 어우러져 있는 시나리오였다.
▲ 연출자인 황동혁 감독님은 이정재라는 배우에게 다른 부분을 끄집어내고 싶어서 캐스팅했다고 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다른 부분이 나온 것 같나.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감독님이 생각한 부분과 제가 생각한 부분이 같았다. 나이를 먹으니 센 캐릭터의 악역만 제안이 들어오더라. 다른 연기를 보여드리려 노력하지만, 비슷한 캐릭터만 들어오다 보니 내가 뭔가 어떤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그때 감독님이 기훈이라는 캐릭터를 주셨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 역할이라 '오랜만에 하면 좋겠다' 싶었다.
▲ 이게 가능할까 싶진 않았나.
그런 건 없었다. 처음부터 콘셉트가 좋았다. 어른들이 게임을 하는데, 어릴 적에 하던 게임이라는 점에서 더 호감이 갔다. 장르는 서바이벌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게임 안에 있는 사람들의 고충들이 꼼꼼하게 설명이 다 됐다. 캐릭터의 서사도 그렇고. 그리고 각 게임에서 보여주는 규모감 등도 보기 좋았다. 촬영장 갈 때마다 '어떤 세트장, 어떤 구현이 돼 있을까' 설렘의 감정이 들었다. 치밀하게 오래 준비를 했다는 게 느껴졌다.
▲ 연기를 하면서 신경 쓴 부분이 있었나.
처음 기훈이를 봤을 때 '제가 저렇게 연기했나' 싶어서 모니터를 하며 많이 웃었다. 많은 것들을 벗어던진 느낌이었다. 평소에 쓰지 않는 표정, 호흡에 의한 동작들이 많이 나왔다. 오래전엔 그런 연기를 한 게 기억나지만, 근래엔 그러지 않아 많이 웃었다.
사실 생활 연기가 가장 힘들다. 이전에 연기한 캐릭터는 초반에 잘 잡고 가면 그 후엔 수월한 것들이 있었는데, 생활 연기는 일상과 맞닿은 지점이 있어서 더 힘들다. 그러면서도 다큐멘터리 같은 작품은 아니다 보니 극한 상황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갈등이 혼재돼 있어서 처음엔 연습하는데 자연스럽지 않더라. 그래도 시간을 갖고 연습을 하다 보니 그런 지점들은 해소가 됐다.
▲ 어려움은 없었나?
매 게임마다 캐릭터 안에서 표현의 수위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달고나 게임에서 핥는 장면이 있는데 찍을 땐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었다. 감독님은 더 핧으라고 하고.(웃음) 그런데 어떻게 보면 목숨 걸고 하는 거니까, '그럴 수 있겠다' 싶더라. 각 게임마다 다른 캐릭터를 만나면서 겪는 에피소드가 벌어지는데, 일상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감정이 이어져야 했다. 극한의 것들과 일상의 것이 왔다갔다했다.
▲ 직접 아이디어를 내거나 애드리브를 한 장면이 있을까.
9회 분량이다보니 워낙 많이 촬영하고, 작년에 촬영해서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이가 이렇게 되다보니.(웃음) 이번 작품 역시 감독님 의견을 100% 다 받아들이고, 잘 해보려 노력했던 거 같다. 자신 없는 장면도 있었지만 감독님과 상의하고, 항상 얘기했던 대로 했다.
▲ 극 중 기훈은 유독 일남(오영수)에게 관심을 드러냈다.
기훈이 약자니까, 스스로 그렇게 느껴서 본인이 보기에 약자라 느끼는 사람을 쉽게 지나치지 못했을 거다. 자기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자기보다 더 약자를 챙기고 싶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측은지심으로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심리가 컸던 거 같다.
▲ 마지막 빨간 머리는 원래 있던 설정이었나?
시나리오상 있었다. 저도 깜짝 놀랐다. 제 또래 남자들 중에 일반적으로,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일탈 행동을 보여주기 위해 설정한 게 아닐까 싶다.
▲ '이정재가 잘생김을 내려놓았다'는 반응들도 있었다.
확실히 오징어가 됐다.(웃음) 보신 분들이 다들 모자가 너무 안 어울린다고, 왜 저런 모자를 썼냐고, 좀 깔끔하게 쓰지 저렇게 대충 쓰냐고 말이 많았다. 저랑 '신세계' 때부터 같이 스타일링을 해주신 분이 이번에도 스타일을 잡아주셨다. 그분은 '이정재를 어떻게 입혀서 쌍문동 반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신거 같더라. 처음 의상 피팅을 할 때부터 사이즈도 안 맞고, '왜 저렇게 이상하게 옷을 입고 다니나' 싶은 옷들로 가져왔다. '망가졌다'고도 하시는데, 연기를 하는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연기자니까 이런 역할도 하고, 저런 역할도 하는 거다. 그냥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 힘을 빼고 연기했다는 점에서 초창기 출연작인 '태양은 없다'의 홍기를 연상케 한다는 평이다.
제가 연기한 캐릭터를 크게 홍기나 '오브라더스' 상우 같은 캐릭터로 묶고, '다만악'이나 '암살' 염석진, '관상' 수양대군 같은 걸로 묶으시려고 하는거 같은데(웃음), 제가 고민해서 조각조각내서 만든 거라 전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보시는 분들도 다 다르게 봐 주셨으면 한다.
▲ 촬영장에서 직접 게임을 해 본 소감도 궁금하다.
촬영을 할 때 소품 스케일이 굉장했다. 줄다리기나 유리 징검다리 건너기나 모두 놀랍고, 재밌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무서웠던 게임은 유리 징검다리 건너기였다. 2m 정도 되는 공간을 띄우고, 강화유리를 깔았는데 '안전하니까 뛰어라'라고 하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웃음) 발에 땀이 나서 자꾸 미끄러지고. 많이 어려웠다.
▲ 상우 역의 박해수, 일남 역의 오영수 배우와 호흡은 어땠나.
오영수 선배님은 예전부터 공연을 보러 가면 볼 수 있던 대선배님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 번도 함께 작품을 한 적이 없어서 어려웠다. 그런데 선배님이 생각이 굉장히 젊은 분이셨다. 호흡도 처음부터 잘 맞았다. 첫 촬영부터 일남으로 나타나 만나다 보니 저랑 잘 맞았다.
해수 씨는 덩치와 다르게 귀엽다. 현장에서도 유머러스하다. 분위기메이커였다. 저와 가장 마지막까지 간 친구라 호흡이 중요했는데, 워낙 성격이 좋았다.
▲기훈이 '쌍용차 해고자'로 묘사됐고, 실제 쌍용차 해고자께서 반가움을 표하긴 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인물을 연기하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나.
기훈의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한 시점이 그 부분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상황에 몰린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게임'이라고 홍보 카피에도 쓰였는데, 기훈에겐 그런 과거가 있고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머니와 살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캐릭터로 나오지 않나. 그래서 마음이 무거웠고, 그게 게임을 하면서 트라우마로 작용됐다. 마음이 좋진 않았다. 슬펐다.
▲ 극중 마지막까지 상금을 쫓는 상우와 그와는 다른 길을 가려는 기훈을 선택을 놓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만약 이정재 본인이라면 상우와 같은 선택을 했을까, 기훈처럼 선한 마음을 지켰을까?
어떻게보면 기훈은 영화적인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미를 잃지 않으니까, 극화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상우같은 캐릭터가 현실적이지 않나 싶다. 상우도 마지막에는 인간적인 면을 보여준다. 제가 같은 상황이라면, 모르겠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다.
▲ 극중에서 처럼 상금 456억원을 받는다면 어디에 사용할까.
기훈에게 생긴다면 다른 결정을 하지만, 이정재에게 456억 원이 생기면 당연히 기부할 거 같다. 그렇게 갑자기 생기는 돈이라면.
▲ 2000년 이후에 태어난 관객, 시청자들 사이에서 이정재의 배우 데뷔 초 사진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저도 봤다. 저런 시기가 있었지, 세월이 빠르네 싶다.(웃음) 다양하게 많이 했네 싶더라. 나름 안쉬고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열심히 살았네 싶었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서 다양한 캐릭터를 했는데, 지금 과거의 사진들을 넘겨보니 재밌는 거 같다.
▲ 나영석 PD가 이정재, 정우성과 함께 '삼시세끼', '시골갈이' 같은 프로그램을 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예능 생각은 없나?
나영석 PD님, 꿈을 이루시고 싶다면 저희 회사로 와 달라.
▲ 특별출연한 이병헌 배우와 함께 붙는 장면은 거의 없었다.
말로만 '언제 같이 하자'고 하던 게 지금까지 왔다. (이)병헌이 형과는 데뷔를 막 했을 때부터 친했다. 한 때 같은 소속사에서도 있었고. 그런데 같이 할 기회가 없었다. '오징어게임'에서 황동혁 감독님 연으로 특별출연을 해주셨는데, 저와는 딱 한 장면이 겹쳤다. 시즌2가 나온다면 당연히 이병헌 형과 같이 해보고 싶다. 그런데 제가 2편에 제가 안 나오진 않겠죠?(웃음)
▲ 기훈이 다시 게임에 참가하는 걸 암시하며 시즌1이 마무리 된다. 게임 주최 측 실체를 밝히고 복수를 하러 가는 모양새가 될 것 같은데, 시즌2에서 기훈이 그런 캐릭터로 변화할지. 능력치도 뛰어나지 않은 성기훈이 '잘못된거잖아, 그러면 안되잖아'라면서 다시 무서운 세계로 뛰어들어가는 모습에서 정의와 용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저도 모른다. (시즌2에서) 어떻게 될지.(웃음)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