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패키지' 싹 갈아엎는다…하나투어의 새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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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창업 나서는 하나투어하나투어가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전환에 나선 것은 제2의 창업에 준하는 사업 재편을 하겠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이후 지난 1년9개월은 하나투어에 유례 없는 암흑기였다. 절박함 속에 지난해 3월 사령탑에 오른 송미선 공동대표는 임직원들의 ‘기업 간 거래(B2B) 마인드’를 소비자·온라인 중심으로 재편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다음달 1일 전 직원 출근 체제 전환은 절박한 상황에서 준비해온 체질 전환 프로그램의 시발점이다. 송 대표는 29일 “시장이 열리길 기다리지 않고 먼저 움직이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전면 출근 이어 상품 리뉴얼도
"우리도 안가는 패키지 누가 가냐"
쇼핑·한식당·변두리 숙소 없는
'3無 해외 패키지2.0' 개발
40대 여성 CEO의 ‘혁신 드라이브’
1993년 박상환 회장이 설립한 하나투어는 여행업계에선 혁신의 대명사였다. 해외 패키지 여행이라는 전에 없던 상품을 선보이면서 당시 모두투어를 제치고 업계 1위에 올랐다. 2010년엔 업계 최초로 실시간 항공 예약 서비스를 내놨다. 이듬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면서 하나투어는 질주하듯 성장했다. 2015년엔 패키지 상품이 만드는 족족 팔려나가는 등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갈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2019년을 기점으로 상황이 급반전됐다. 소비자가 틀에 박힌 패키지 상품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2010년 출범한 익스피디아닷컴을 비롯해 에어비앤비, 호텔스닷컴 등 글로벌 온라인 여행·숙박 플랫폼이 소비자의 해외여행 수요를 잠식했다. 야놀자가 소트프뱅크비전펀드로부터 2조원을 투자받는 등 국내에서도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코로나19는 위태롭던 하나투어에 결정타를 날렸다.
보스턴컨설팅그룹 출신으로 IMM PE가 하나투어 지분(16.67%)을 인수할 때 기업 실사를 총괄한 인연으로 하나투어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된 송 대표는 조직 문화를 통째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하나투어는 전국의 대리점망을 통해 영업하던 오랜 관행 탓에 조직 전체에 ‘B2B 마인드’가 뿌리 깊었다. 송 대표는 “상품 기획, 마케팅, 영업 등 모든 부문에서 C(consumer·소비자)가 빠져 있었다”며 “조직 전체에 ‘C’라는 DNA를 심기 위한 작업부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생존자가 시장을 지배”
송 대표는 조직 개편부터 단행했다. 지역·제품·고객별로 세분화돼 있던 조직을 기획, 운영, 공급 등 세 축으로 단순화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예전엔 동남아시아, 유럽 등 지역별로 상품을 개발하고 고객을 지원하는 등의 부서가 모두 딸려 있었다”며 “중복으로 인한 비효율이 크다는 판단에 따라 전문적 기능으로 조직을 개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소비자 관점과 ‘디지털 퍼스트’를 위해 마케팅본부는 고객경험본부로 바꾸고, 온라인사업본부를 대폭 확대했다. 송 대표는 “온라인본부는 쿠팡, G마켓, 위메프, 11번가 등 외부 출신 전문가를 고용해 거의 새 회사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조직했다”고 말했다. 전체 인력에서 정보기술(IT) 전문가 비중이 40%까지 늘었다. 조직 문화를 바꾸는 과정에서 송 대표가 임직원들에게 끊임없이 던진 질문이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보세요. 여러분도 알고 있었죠? 패키지 설계자가 정작 본인은 자유여행 가고 있잖아요.”
1년 반, 변화의 결과물이 3무(無)로 대표되는 신개념 여행 상품 ‘패키지 2.0’이다. 송 대표는 “기존 여행업은 현지 랜드사와 가이드, 호텔, 쇼핑업체, 심지어 한식당 주인까지 함께하는 이해 연합체나 다름없었다”며 “패키지 2.0은 39만원짜리 상품이 실제 비용은 100만원으로 불어나게 만드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던 기존 여행업의 관행을 180도 바꾼 기획”이라고 소개했다. ‘쇼핑 강요’ ‘한식당 필수’ ‘변두리 숙소’ 등 해외여행의 고질적 폐해 세 가지를 없앴다는 의미다.이를 위해 하나투어는 전용 앱을 전면 개편 중이다. 올 11월엔 새로운 기업 CI도 선보일 예정이다. 송 대표는 “10월 1일 정상 출근일이 하나투어엔 제2의 창업이나 마찬가지”라며 “그날 아침 출근길 직원들에게 ‘새로워질 하나투어의 여정, 오늘 시작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엽서를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