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료 신기술 테스트베드 '판' 깔아주자…혁신기업 252곳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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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스케일업 콘퍼런스 2021섬유산업의 구조조정 기회였던 밀라노프로젝트(1999~2003)가 사실상 실패한 뒤 공업도시 대구는 좀처럼 반전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지역에서는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였다. 그랬던 대구에 신산업 혁신도시로의 변화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
대구는 '아이디어 실험장'
공업도시 탈피…'5대 신산업' 육성
물·미래차·에너지 테스트베드 이어
3000억 규모 로봇필드도 유치
'스타기업' 총매출 3조5000억
월드클래스기업은 30곳 달해
높은 성과에 정부도 벤치마킹
권영진 대구시장이 취임한 2014년 이후 섬유·기계 중심의 산업구조를 ‘5대 신산업’인 물·의료·로봇·미래차·에너지·정보통신기술(ICT)을 포함한 10대 산업으로 다변화하는 산업혁신을 본격화한 결과다. 대구시와 한국경제신문 주최로 29일 대구경북디자인센터에서 열린 ‘대구스케일업 콘퍼런스 2021’은 그 결과물을 확인하고, 성공 비결을 공유하는 소통의 장(場)이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인 와중에도 관람객 5만5000여 명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해 2년 만에 열린 행사에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현장 달군 혁신기업들
이날 행사장에서는 세계 혁신산업 및 대구 혁신기업들의 현황을 조망할 수 있는 각종 세션과 더불어 대구에서 성장 기틀을 마련한 기업들의 4차 산업혁명 기술 융합 제품 시연이 마련됐다. 대구의 ‘프리(pre)스타 기업’ 릴리커버가 ‘스타기업’이자 ‘월드클래스300기업’인 대성하이텍과 함께 만든 세계 최초 화장품로봇 ‘애니마’를 선보였다.커피 자판기처럼 생긴 커다란 박스형 로봇 앞에서 ‘로션 제작하기’ ‘에센스 제작하기’ 중 하나를 선택하면 피부를 진단해 2분30초 만에 원재료를 용기에 담아 ‘나만의 화장품’을 만들어냈다. 시연을 맡은 안선희 릴리커버 대표는 “대구는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이 창업하고 스케일업(고성장)하는 데 수도권에 전혀 밀리지 않는 장점을 지닌 지역”이라며 “정밀기계, 로봇 등 제조 기반이 탄탄하고 창업기업 지원 프로그램도 다양하다”고 설명했다.안 대표는 LG전자 출신으로 2016년 대구에서 창업했다. 릴리커버는 최근 47억원의 시리즈 A투자를 유치한 데 이어 존슨앤드존슨, 니베아, 지멘스 등 세계적 기업으로부터 각종 기술제휴를 받는 등 ‘디지털뷰티’ 강소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구의 ‘테스트베드 전략’
권 시장 취임 후 대구시는 산업혁신을 위해 크게 두 가지 전략을 구사했다. 혁신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테스트베드 집적전략과 스케일업 정책인 스타기업 육성이다. 릴리커버의 성공도 이런 전략들의 결과물이다.권 시장은 2015년 “대구 전역을 신산업의 테스트베드로 내놓겠다”고 선언하고 신기술 실험인프라인 테스트베드를 전략적으로 유치·확대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 준공한 대구국가물산업클러스터(64만㎡)다.이곳에서는 128개 물기업이 10만㎡ 규모의 테스트베드 시설에서 다양한 실험을 하며 최첨단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그 결과 매출 100억원을 돌파한 기업이 2014년 3곳에서 지난해 10곳으로 늘어났다. 지역에서는 “코로나19 경제위기 속에서도 테스트베드가 갖는 효과를 톡톡히 입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4년 지능형자동차 주행시험장으로 시작한 미래차분야 테스트베드는 권 시장 취임 이후 22.7㎞의 자율주행도로로 확장됐다. 지금은 이를 총 108㎞(국가산단, 수성알파시티 등 4곳)로 확대하고 있다. 수성알파시티 등에는 스마트시티 테스트베드도 늘려가고 있다.
올 들어서는 3000억원 규모의 국가로봇테스트필드도 유치했다. 권 시장은 “5대 신산업 테스트베드에서 160개 기업이 신기술을 마음껏 실험하고 있다”며 “대구가 명실상부한 ‘테스트베드 도시’로 입지를 굳힌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받아들인 스타기업 정책
2007년 시작된 대구의 스타기업 육성정책은 권 시장 취임 이후 확대·강화됐다. 이 정책은 지역기업을 스타벤처→프리스타→스타→지역스타→글로벌강소기업→월드클래스300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가 벤치마킹해 정부의 정책사업으로 받아들여졌다.2014년까지만 하더라도 39개사, 총매출 9900억원 수준이던 대구의 스타기업 규모는 스타벤처와 프리스타로 확대되면서 지난해 252개사, 총매출 3조5000억원대로 불어났다. 대구의 스타기업 중에서 46개의 글로벌강소기업과 30개의 월드클래스300 기업이 탄생했다.
월드클래스300 기업 수 30개는 비수도권 최다다. 이 밖에 산업통상자원부의 디자인혁신기업 36곳,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소프트웨어(SW)고성장클럽 13곳, 산업부 지역대표중견기업 3곳 등 여러 분야에서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로는 독보적인 성적을 냈다.대구스케일업 콘퍼런스 2021 주제발표자로 나선 배선학 대구테크노파크 기업지원단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대구의 중소기업이 최근 글로벌강소기업과 월드클래스300 등으로 활발하게 스케일업한 데에는 2015년 이후 스타기업 지원정책을 크게 강화해 25개 지원기관이 각 기업을 실시간·패키지로 지원한 것에 비결이 있다”고 소개했다. 권 시장은 “테스트베드를 통해 신기술 기업을 불러모으고, 유치한 기업은 스타기업 정책으로 스케일업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오경묵/정지은/민경진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