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은 임금일까"...삼성·SK·LG 휩쓴 퇴직금 소송

근로자들 "경영성과급은 임금, 퇴직금에 포함해 달라"

성과급 높은 기업들, 퇴직금 급증 우려
국내 내로라하는 법인 모두 휩쓸려
삼성전자 패소하면서 경영계 충격
경영성과급을 두고 벌어진 '퇴직금 소송'에 내로라하는 주요 대기업들이 잇따라 휘말리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현대화재해상 등이 소송을 진행 중이며 길게는 앞으로 수년간 기업 인사노무 분야 가장 큰 화두가 되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기업에서 시작, 민간 대기업까지 번져

퇴직금 소송의 포커스는 "성과급이나 PI·PS를 임금으로 볼 수 있느냐"에 맞춰져 있다. 퇴직금은 퇴직 시점 전 3개월을 기준으로 계산한 '평균임금'으로 구한다. 성과급을 임금으로 볼 수 있다면 성과급 지급 시점으로부터 3개월 안에 퇴직하는 경우 퇴직금이 크게 증가한다. 성과급 비중이 높은 기업에는 큰 부담이다. 삼성전자 성과급은 800%에 달하며 LG디스플레이도 최대 440% 수준이다.이 때문에 성과급 비중이 높은 반도체·전자기업 위주로 퇴직금 소송이 제기됐다. 한국노총 금속노련 삼성그룹노조연대도 소송인단을 모집해 소송을 준비 중이다. 최근엔 업종이나 기업 규모와 상관 없이 한국유리, 발레오전장 등 중견 제조업체에도 확산됐다.

퇴직금 소송의 시작은 공공기관이다. 2018년 말 대법원에서 공공기관 '경영평가성과급'을 퇴직금에 반영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서초동의 한 로펌이 각 대기업 퇴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공격적인 소송단 모집을 시작했다. 여기에 대기업들도 대형로펌을 동원하면서 전선(戰線)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됐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걸쳐 SK하이닉스 2심, 엘지디스플레이 2심, 삼성전자 1차 소송 2심까지 기업이 연이어 승소하며 퇴직금 소송은 '찻잔 속의 돌풍'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4월 현대화재해상 소송에서 기업이 첫패배를 하면서 '역전'의 조짐이 나타났다. 이후 지난 6월 17일 삼성전자에서 나온 판결이 경영계에 충격을 던졌다. 공교롭게도 이 날 삼성전자 1차 소송 2심과 2차 소송 1심이 각각 다른 법원에서 선고됐다. 오전에 수원고법서 선고된 2심 판결이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준 불과 몇시간 후, 서울중앙지법 1심 판결은 근로자측 손을 들어주면서 경영계는 충격에 빠졌다. 같은 사업장에서 동일한 사실관계를 두고 판결이 엇갈리며 기업 경영의 '사법 리크스'로 번진 것이다.

성과급은 근로자 노력의 대가인가...근본적 질문 던져

퇴직금 소송은 "경영성과는 근로자들이 제공한 근로의 결과물인가"라는 본질 논란으로까지 확산됐다.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준 법원은 △직원들은 성과급을 포함한 임금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경영성과는 근로자들의 근로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이 모인 결과물이므로 성과급도 근로의 대가인 임금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임금이 아니라고 보는 판결은 △성과는 직원의 근로보다 경영 판단의 결과물이며 △경영진이 지급 여부를 두고 재량권을 가졌고 △성과급 지급 시점에 퇴직하는 근로자만 퇴직금이 커지는 점은 이상하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지난 8월 20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선고된 LG디스플레이 2심 판결은 한발 더 나아가 "경영성과는 원래 주주의 몫이므로 근로자에게 권리가 없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퇴직금 소송은 근로자와 기업의 단순 대립 구도가 아니라는 점도 특징이다. 회사를 떠난 근로자들이 주로 제기한다. 실제로 삼성전자 소송은 프린트 사업부가 HP에 매각되면서 회사를 떠난 직원들이 제기했다. 이 때문에 재직자와 퇴직자 간 갈등도 관측된다. 재작지들은 소송으로 기업이 성과급 삭감이나 임금체계 개편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다. 반면 기업이 쉽사리 성과급에 손대지 못할 것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성과급을 낮추면 인재 유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외에 변수도 있다. 최근에는 MZ세대로 이뤄진 신생 노조들이 '공정 평가'를 이유로 성과급 기준 공개를 요구하면서 기업이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 하급심 판결에 비춰보면 성과급 지급 근거가 명확하고 비율·지급 주기가 일정할 수록 기업에게 불리하다.

결국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업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2013년 대기업 임금체계를 뿌리째 흔들었던 '대법원 전원합의체 통상임금 판결'을 연상케 한다"며 "기업들이 각별히 신경써야 할 법률 이슈"라고 설명했다.조상욱 변호사는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이광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와 함께 오는 7일 '한경 좋은일터연구소 경영노동포럼 웨비나'에서 이 주제를 대상으로 강연에 나선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