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오르기前 '마감 세일'…알짜 기업 속전속결 거래 가능성

4분기 역대급 매물 대기 중

모던하우스 2兆·락앤락 1兆
연말~내년 상반기 매각 예상

PEF에 출자한 연기금 등도
"매물 팔고 펀드청산" 주문

IB들 막바지 호황 잡을 채비
'인수후보-PEF' 중개팀 꾸려
지난 8월 이뤄진 두산공작기계 인수전은 세아상역과 디티알오토모티브 간 2파전이었다. 두산공작기계의 전체 몸값 2조4000억원 가운데 2조원을 인수자가 직접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실탄이 풍부한 세아상역의 우세를 예상하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두산공작기계의 주인은 현금성 자산이 1900억원에 불과한 디티알오토모티브로 낙점됐다. 외부에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가능한 덕분이었다. 금융회사들은 1조원의 인수금융을 연 4%대 금리로 준다고 서로 나섰으며 디티알오토모티브도 회사채 발행 등 빚을 내기 쉬운 환경이었다.이런 모습은 이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하자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중견·중소기업들도 저금리와 넘치는 유동성에 기반한 ‘영끌 빚투(영혼까지 끌어모아 빚내서 투자)’에 나섰던 인수합병(M&A) 시장의 분위기가 급변한 것이다.

매각 저울질하는 PEF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은 새로 기업을 사들이는 포지션에서 보유한 매물을 내놓으려는 움직임으로 돌아서고 있다. 금리 인상 전 유동성을 활용해 높은 가격으로 보유 회사를 매각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저금리 수혜의 ‘막차’에 올라타려는 것이다. 국내 기준금리 인상에 이어 미국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까지 시작되면 돈줄이 마르는 현상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한 PEF 관계자는 4일 “PEF에 자금을 출자한 주요 연기금·공제회도 추후 금리 인상 등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매물을 팔고 펀드를 조기 청산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최근 들어 내고 있다”며 “투자한 지 4~5년이 지났으면서도 중견기업들이 관심을 보이는 보유 기업을 중심으로 매각 날짜를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PEF들이 다른 PEF의 매물을 인수하는 ‘세컨더리’ 시장도 금리 인상에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상반기에는 잡코리아, 마제스티골프, 해양에너지·서라벌도시가스 등 굵직한 딜이 PEF끼리 이뤄졌다. 센트로이드의 테일러메이드골프 인수처럼 신생 PEF들까지 과감히 조 단위 자금을 끌어모아 대형 딜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연말부터는 이 경로도 닫힐 가능성이 크다. 국내 PEF 관계자는 “이전 같으면 충분히 자금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프로젝트펀드 투자건이 공제회 심사에서 막혔다”며 “큰손들이 출자를 훨씬 더 깐깐하게 따지는 분위기”라고 했다.시장에선 기업 몸값을 둘러싼 매각 측과 인수후보 간 눈높이 차이가 벌어지면서 딜이 지연되는 상황도 곳곳에서 생기고 있다. 한온시스템은 매각 본입찰 일정이 예정보다 두 달가량 밀렸지만, 양측 모두 뚜렷한 일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막바지 호황 잡아라” IB도 분주

금리 인상기에도 M&A 시장은 반짝 호황을 맞는다. PEF들이 기업을 살 때처럼 팔 때도 거래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7~2018년 1년간 기준금리가 0.5%포인트 올랐던 시기에도 PEF들이 대거 투자금 회수(엑시트)에 나섰다. 예컨대 칼라일은 보안업체 ADT캡스를 SK텔레콤에 넘기면서 3조원을 현금화했고, MBK파트너스는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를 2조2989억원에 신한금융지주에 팔았다. 한앤컴퍼니 역시 웅진식품을 대만 퉁이그룹에 매각하면서 약 2600억원을 챙겼다.

거래 성사에 따른 수수료가 주요 수입원인 투자은행(IB)들은 막바지 호황을 잡을 채비를 하고 있다. PEF가 공개적으로 매물을 내놓아 공개 매각 절차에 접어들면, 매각 완료 시까지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1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렇게 되면 절차상 연내 매각 종결이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일부 IB는 PEF가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을 파악한 뒤, 먼저 인수 후보를 찾아 PEF에 연결해주기 위해 전략팀까지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IB업계 고위 관계자는 “올 상반기만 해도 화려하게 ‘뷔페(공개경쟁매각)’를 차려놓고 손님들에게 알아서 찾아오라고 해도 회사를 제값에 팔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손님을 특정해 얼마나 먹기 좋게 ‘정찬(수의계약)’을 차리느냐가 중요해진 시기”라고 했다.

차준호/김종우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