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직전에서 인텔 최대 경쟁자로 떠오른 'AMD'

글로벌 CPU 시장 2위...점유율 상승세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등 투자도 강화
반도체 전문가 리사 수 CEO 영입 효과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가 자사의 CPU 제품 라이젠을 선보이고 있다./사진=AMD 홈페이지
3058%. 미국 반도체 설계회사(팹리스) AMD(종목코드 AMD)가 지난 7년간 거둔 주가 상승률이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취임한 2011년부터 애플이 10년간 기록한 주가 상승률(1200%)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AMD의 시가총액은 1283억달러에 달한다. 최근 7년간 65배 가까이 늘었다. 2014년 무렵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던 AMD는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 인텔을 위협하는 강력한 2위로 부활했다.

AMD가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건 리사 수 CEO의 공으로 평가된다. 시장에선 “수 CEO가 지휘봉을 잡고 있는 한 AMD는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굳게 자리 잡고 있다. AMD는 주력 분야인 PC와 게임용 콘솔 반도체를 넘어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성장세를 이어나간다는 전략이다.

CPU·GPU 시장 2위


AMD는 반도체 생산 시설이 없는 팹리스 기업이다. AMD가 설계한 반도체는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가 생산한다. TSMC와의 끈끈한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인텔보다 한발 앞서 7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에서 CPU 제품을 출시했다.

AMD 매출의 60%는 컴퓨팅 및 그래픽 부문에서 나온다. 데스크톱PC와 노트북에 들어가는 CPU, GPU(그래픽처리장치), APU(CPU와 GPU의 통합 프로세서)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나머지 매출은 임베디드 및 세미커스텀 부문이 차지한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5,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엑스박스 시리즈 X·S 등 게임콘솔용 프로세서 등이 해당한다.

AMD는 CPU와 GPU 시장에서 점유율 기준 각각 세계 2위다. ‘만년 2위’라는 평가도 있지만 최근 CPU 시장에서 인텔의 독주를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1년 3분기 x86 CPU 시장에서 AMD의 점유율은 39.6%로 2014년 3분기보다 16%포인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인텔의 시장점유율은 76.3%에서 60.3%로 감소했다. AMD는 GPU 시장에선 2020년 2분기 이후 점유율이 20% 아래로 입지가 다소 줄었다. 1위 업체인 엔비디아가 80% 초반대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AMD 로고/사진=AMD 홈페이지

벼랑 끝에 선 AMD


AMD는 1969년 페어차일드반도체에서 근무하던 제리 샌더스가 동료 7명과 함께 설립한 회사다. 페어차일드반도체의 다른 동료였던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인텔을 세운 이듬해 창업했다. 나스닥시장엔 1972년 상장했다. 창업 초반 AMD는 인텔의 제품을 복제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업체에 불과했다. 2000년대 들어선 상황이 달라졌다. 2003년 AMD가 기존 32비트 명령어에도 호환되는 최초의 64비트 CPU ‘애슬론64’를 출시하면서다. AMD가 단기간에 인텔을 제치고 혁신적인 성과를 이뤘다는 평가가 나왔다.

AMD는 인텔과 함께 CPU 시장을 지배하는 업체로 떠올랐다. 2006년 ATI를 인수하며 GPU 시장에도 진출했다. 그러나 성장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대 후반 이후 AMD는 인텔과의 시장 점유율 싸움에서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AMD가 후속 제품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인텔은 신제품을 출시하며 승승장구했다. 2006년 1분기 48%를 넘어섰던 AMD의 CPU 시장 점유율은 2년 뒤 28%대로 고꾸라졌다. AMD는 2006년부터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AMD는 인력 감축까지 단행해야 했고 파산설도 나돌았다.

반도체 전문가, 수 CEO


분위기를 반전시킬 무기가 필요했다. AMD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등장한 구원투수가 바로 수 CEO다. 2012년 그는 글로벌 비즈니스 총괄 부사장으로 AMD에 합류했다. 2014년 10월엔 AMD 역사상 최초의 여성 CEO로 임명됐다.

수 CEO는 대만계 미국인이다. 두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통계학자인 아버지와 회계사인 어머니의 높은 교육열 아래에서 자랐다. 피아노 연주를 10년간 배우기도 했다.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공학도의 기질을 보였다.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심이 많았다. 10세 때부터 오빠의 원격 조종 자동차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걸 즐겼다.

1986년 수 CEO는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 입학했다. 전공으로 전자공학을 선택한 수 CEO는 대학 1학년 때 실리콘 웨이퍼 제조 실험에 참여하며 반도체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발견했다. 수 CEO는 모교에 남아 반도체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문적 연구보다 실용성을 추구했던 그는 이후 반도체 업계에 발을 내디뎠다. 반도체 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 입사한 뒤 IBM으로 옮겨 12년간 반도체 연구개발(R&D)에 매진했다.1998년 수 CEO는 반도체 배선 방식의 패러다임을 뒤집는 업적을 세웠다. 기존엔 반도체 금속 배선에 알루미늄을 사용했지만 알루미늄보다 저항도가 낮은 구리로 대체한 것이다. 반도체 데이터 처리 속도가 한층 빨라지면서 구리 배선은 현재까지도 반도체업계의 표준으로 남았다. 수 CEO는 IBM에 몸담고 있는 동안 40개 이상의 반도체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그가 한 회사의 CEO이기에 앞서 학계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꼽히는 이유다.

고성능 컴퓨팅 시장 공략


수 CEO는 AMD의 성장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반도체 신제품 개발 주기가 3~5년으로 길기 때문에 여러 사업을 벌이지 않고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AMD는 경쟁 우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익성이 높은 고성능 컴퓨팅 부문에 집중하기로 했다. AMD는 MS와 소니에 게임 콘솔용 APU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2017년엔 AMD의 대표 CPU 제품 ‘라이젠(RYZEN)’을 출시했다. 인텔 CPU의 절반 가격밖에 되지 않는 뛰어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시장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수 CEO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2017년부터 AMD는 적자의 늪에서 벗어났다. 그가 취임한 지 3년째 되는 해였다. 2017년 영업이익은 1억2700만달러였다. 2020년엔 영업이익이 13억6900만달러로 늘어났다. 2020년 2분기부터 2021년 2분기까지 5개 분기 연속 영업이익이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 코로나19 여파로 재택근무, 온라인 교육 등이 증가하면서 PC, 노트북, 게임기 등의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2021년에도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2분기 AMD의 매출은 38억5000만달러로 2020년 같은 기간보다 99% 증가했다. 영업이익(8억3100만달러)은 전년 동기보다 무려 380% 늘었다. 2021년 실적 예상치도 높여 잡았다. AMD는 2021년 매출이 2020년보다 60% 늘어난 156억1600만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가이던스인 매출 증가율 50%보다 상향 조정한 것이다.

수 CEO는 “사람들이 반도체가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는 매우 독특한 시기”라며 반도체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을 확신했다. 팁랭크에 따르면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 15명 가운데 11명이 매수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 15명의 12개월 목표주가 평균은 116.21달러다.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사진=AMD 홈페이지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강화 나서


AMD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도 협력하고 있다. 테슬라 모델 S와 X 차량에서 고성능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인포테인먼트(정보+오락) 시스템에 AMD의 GPU가 활용된다. AMD는 테슬라와 맺은 계약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테슬라는 지난해 6만 대가량의 모델 S, X 차량을 생산했다. 삼성전자와는 스마트폰의 두뇌로 불리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부문에서 최근 손을 잡았다. 삼성전자의 신작 AP ‘엑시노스 2200’은 2021년 안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이 AP는 기존 제품보다 GPU 성능이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1위 기업 자일링스(Xilinx)를 인수한 효과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앞서 AMD는 2020년 10월 자일링스를 350억달러에 인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FPGA는 회로 변경이 불가능한 일반 반도체와 달리 용도에 따라 재설계가 가능하다. 빅데이터 시대가 도래하며 급부상하고 있는 데이터센터에 활용된다. 인공지능(AI)과 5세대(5G) 이동통신에도 사용된다. 자일링스 인수 절차는 2021년 말 최종 마무리될 것으로 관측된다.

AMD가 자일링스를 품에 안으면 50년 넘게 이어진 인텔과의 경쟁은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부문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인텔은 2015년 FPGA 2위 업체 알테라(Altera)를 인수하며 시장 공략에 나섰다.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시장에서 인텔의 점유율은 90% 이상으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AMD의 시장 점유율이 2017년 1% 수준에서 2년 만에 8%로 확대되며 인텔을 추격하고 있다. 2021년 1분기 인텔의 데이터센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가량 줄어들기도 했다. 수 CEO는 “2021년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매출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치열해진 GPU 경쟁


AMD는 CPU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GPU 분야에서도 가성비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독보적 1위 엔비디아를 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 2021년 1분기 AMD의 GPU 시장점유율은 직전 분기(19%)보다 하락한 17%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경쟁자도 늘어날 전망이다. 2021년 8월 인텔이 게이밍 그래픽카드 브랜드 아크를 출시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인텔은 2022년 초 아크를 시장에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펫 겔싱어 인텔 CEO는 “엔비디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슈퍼 컴퓨터용 GPU를 내놓겠다”고 선전포고를 날렸다. 인텔은 GPU 생산 물량을 대만 반도체 기업 TSMC에 맡긴다는 계획이다. 미국 IT 전문매체 아르스테크니카는 “인텔은 엔비디아와 AMD에 맞서 고성능 그래픽카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수년간 노력해왔다”며 “만일 GPU 부족 현상이 2022년까지 연장된다면 인텔에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가 가속화한 반도체 공급난은 업계의 최대 걸림돌이다. 반도체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데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이는 곧 AMD에 호재이기도 하다. PC, 노트북, 게임용 콘솔 등에 필요한 반도체를 찾는 수요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어서다. 수 CEO는 2021년 3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수요가 아주 강하다”며 “반도체 공급난은 AMD에 호재”라고 말했다. 반도체 수급 불균형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는 “반도체 공급난은 재앙이 아니며 수요 불균형에 따른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며 “AMD의 반도체 공급 상황은 TSMC의 도움으로 개선돼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