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없는 세상을 위한 다크나이트를 꿈꾸다, 팔란티어

2011년 5월 2일 새벽. 미군 특수부대가 스텔스 헬기를 타고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외곽 마을로 날아갔다. 아보타바드의 한 저택이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빈 라덴의 ‘연락책’을 수년간 추적한 끝에 얻은 단서였다. 당시 사람들은 빈 라덴이 동굴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동굴 대신 마을 안가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라는 CIA의 예측은 맞았고, 작전팀은 그를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지 10년 만의 일이다. 작전명은 ‘넵튠 스피어’였다.

빈 라덴을 추적하는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민간 기업이 있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팔란티어(PLTR)다. 군인과 스파이, 경찰 등이 수집한 정보를 모아 분석한 뒤 사람이 발견하기 어려운 숨어 있는 연결고리나 테러리스트들의 네트워크를 밝히는 역할을 한다. CIA뿐만 아니라 미 연방수사국(FBI), 미 국가안전보장국(NSA) 등 정보기관과 미 해병대 등 군대가 주요 고객사다. 고객사 특성상 이들의 성과는 대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다. 빈 라덴 사살 작전에 대해 다룬 책 The Finish에서 저자인 마크 보덴은 팔란티어에 대해 “‘킬러 앱’이라는 명성을 얻을 만하다”고 설명하며 팔란티어가 빈 라덴 추적에 기여했음을 설명했다.
◆빈 라덴 추적에 관여한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는 ‘페이팔 마피아(페이팔 창업자 출신 기업인들)’ 대표주자인 피터 틸이 2003년 공동 창업한 회사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의 천리안 수정구슬의 이름을 따왔다.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데이터를 분석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인지하고 통찰한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틸은 기업이 국가 안보에 공헌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9·11 테러는 창업의 계기가 됐다.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막기 위해 페이팔에서 구현한 사기 방지 프로그램을 응용해 관련 서비스를 시작했다. 팔란티어의 최초 외부 투자자는 CIA의 벤처캐피털 담당 조직인 인큐텔(In-Q-Tel)이었다.

팔란티어는 크게 두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첫 번째가 ‘팔란티어 고담’ 서비스다. 고담은 영화 다크나이트의 배경이 되는 범죄 도시 이름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민을 지키는 다크나이트처럼 빅데이터 분석으로 범죄와 테러를 감지하고 예방하는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고담은 폐쇄회로TV(CCTV) 영상, 위성 사진, 통신 기록, 은행 계좌, SNS 등 비정형화된 데이터들을 모아 유기적으로 연결해 분석한다. 빈 라덴의 은신처를 확인하는 작업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 해병대가 적의 공격을 사전에 감지할 때, 자국 요원을 살해한 멕시코 마약 조직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도 고담이 활용됐다.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분석 서비스도 있다. 이름은 ‘팔란티어 파운드리’다. 초기에는 금융 사기와 부실 대출 방지 등에 주로 사용됐다. 최근에는 제품 생산 및 공급망 관리, 제약회사의 임상시험 계획 수립, 타깃 광고 효과 증대, 결제 데이터 분석을 통한 구매자 유지 등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정부 사업에서 민간 사업으로 영토 확장
아직 수익성 확보는 과제로 남아 있다. 매출 규모는 빠르게 늘어나는 데 비해 영업 적자 폭은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팔란티어는 컨설팅 회사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 고담과 파운드리 두 서비스 모두 팔란티어와 고객 간 계약 기간에 한정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팔란티어 직원을 고객인 정부 기관이나 민간 기업에 일정 기간 파견해 소프트웨어 설치 및 활용을 지원한다. 고객사가 늘어날수록 인건비 부담도 커지는 구조다. 최근 팔란티어가 클라우드 기반의 소프트웨어 플랫폼인 ‘팔란티어 아폴로’를 출시한 배경이다. 아폴로는 고담과 파운드리를 지원하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다. 고객에게 보다 빠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더 적은 엔지니어 인력으로 소프트웨어를 구축·배포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폴로 출시 이후 앱 구축에 소요되는 시간은 기존 70일에서 14일로 단축됐고, ERP 통합 속도도 45일에서 4일로 줄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고객사가 느끼는 만족도도 높아졌다. 아폴로를 적용한 파운드리 서비스를 통해 은행, 광산, 에너지 고객사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크게 개선됐다. 1만여 개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 최대 은행 중 한 곳은 새로운 규제 요구를 충족하는 자금 세탁 방지 프로젝트를 이틀 만에 수행했다. 3년 전만 해도 같은 프로젝트에 3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2025년까지 연간 30% 이상 성장”
2020년 9월 상장한 팔란티어의 공모가는 10달러였다.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 최고경영자(CEO)가 찍은 혁신 기업으로 주목받으면서 2021년 1월 말 39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2021년 2분기 매출은 3억7600만달러로 전년 대비 49% 늘었다. 월스트리트의 예상치를 한참 뛰어넘는 수치다. 2분기 기준 총 계약 금액은 168% 늘어난 9억100만달러에 달한다. 1000만달러 이상의 대규모 계약이 21건이다. 미 원자력보안청, 연방항공청 등이 2분기에 팔란티어와 계약을 맺었다. 샤암 산카르 CEO는 “정부 사업에 불이 붙었다”고 표현했다. 코로나19 수혜 기업이기도 하다. 2021년 7월 미 보건복지부는 팔란티어와 계약을 갱신했다.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는 백신 생산·유통·관리를 추적하는 역할을 한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도 6월 코로나19 확산 및 앞으로의 발병 가능성을 모니터링하고 분석하기 위해 740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갱신했다.

주요 매출은 미국 정부 사업에서 나오지만, 민간 기업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90% 늘었다. 민간 기업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7월에는 구독형 데이터 수집 및 분석 서비스인 ‘파운드리 포 빌더스(Foundry for Builders)’를 출시했다.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이 대상이다. 고객군을 확장해 나가면서 2025년까지 연간 30% 이상의 매출 증가를 지속할 것이라고 팔란티어는 설명했다.

다만 팔란티어의 장기 성장성과 주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팁랭크에 따르면 이 회사 목표 주가는 24달러, 투자 의견은 ‘매도(moderate sell)’다. 지난 3개월간 6명의 애널리스트 중 3명은 매도, 2명은 보유, 1명은 매수를 추천했다. 고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