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즈쿠리만으론 성장 한계…新사업모델로 고객 선택 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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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창간 57th 미래를 말한다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세계 1위 무라타제작소, 세계 최대 모터 제조사 일본전산(NIDEC), 정밀 세라믹 부품으로 세계를 제패한 교세라 등은 일본 교토 기업이란 공통점이 있다. 나카지마 노리오 무라타제작소 사장(사진)은 7일 교토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교토에는 한 우물만 파는 기업이 많다”며 “규모가 크진 않지만 한 가지 기술에 천착한 결과 세계적으로 성공한 회사들”이라고 강조했다.
릴레이 인터뷰 (2) 나카지마 노리오 日 무라타제작소 사장
한국 언론과 첫 단독 인터뷰
"소규모 M&A로 조금씩 채워가는 '니지미다시 전략' 집중
단순 제조업 벗어나 고객이 원하는 '솔루션 사업모델' 갖춰야
무라타 경쟁력 비결은 수직통합·일관생산, 미래 내다본 설비투자
LG처럼 사업구조 전환하고 이기는 분야 집중하는 접근법 필요"
새로운 기업과 기술이 기존의 산업구도를 완전히 바꾸는 게임 체인저의 시대가 열리면서 교토 기업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수십 년간 키운 기술과 제품이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 제조업계가 세라믹 부품이란 한 우물만 판 무라타제작소의 대응 전략을 주목하는 이유다.나카지마 사장은 1985년 무라타제작소에 입사한 이후 줄곧 엔지니어의 길을 걸었다. 전자업계에서 나카지마 사장은 한때 ‘벽돌폰’으로 불릴 정도로 크기가 컸던 휴대폰을 손바닥만 하게 줄이는 데 기여한 인물로 유명하다. 35세이던 1996년 꼬치구이집 회식자리에서 휴대폰 소형화에 쓰이는 ‘스위치 플렉서’라는 부품 회로도를 개발했다. 나카지마 사장은 “로봇 사업도 주목하고 있다”며 “인간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체할 분야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라타제작소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요.
“먼저 고객의 정의를 바꿔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고객은 삼성전자 등 대형 제조사였습니다. 앞으로의 고객은 의사, 공장설비 설계자, 자율주행기술 연구자 등입니다. 기업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단순 제조업에서 벗어나 솔루션(문제해결형) 사업모델을 갖춰야 새 고객들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습니다.”▷일본 기업은 게임 체인저 시대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기업의 신진대사를 중시해 사업구조를 빠르게 전환하는 포트폴리오 경영이 매우 중요합니다. LG그룹은 1위가 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스마트폰 사업부를 접고, 남은 자원을 가전으로, 자동차로 돌리는 사업구조 전환에 능합니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사업 재편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무라타가 압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수직통합, 일관생산 사업모델입니다. 무라타는 재료와 생산설비 구축, 제조를 모두 스스로 합니다. 이 때문에 웬만해선 다른 기업이 모방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는 10~20년 뒤를 내다보고 설비투자를 하는 중장기적 시선입니다. 전기차의 경우 800V 고전압을 사용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하고 상당히 이른 시간부터 준비해왔습니다.”
▷수직통합, 일관생산은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변화가 있을 때마다 항상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익을 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평분업 체계에서는 새 기술을 상품화하려면 분업을 담당하는 기업에 제조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야 합니다. 여기서 초기 손실이 발생합니다. 수직통합형은 초기 손실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생산공정을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업계 조류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도 가능합니다.”▷무라타는 수익률이 업계 1위입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까.
“무라타는 성장의 기회가 대략 30년에 한 번꼴로 왔습니다. 마지막 기회는 스마트폰 시장이 열린 2010년이었습니다. 이 주기대로라면 다음 번 성장 기회는 2040년에 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장기적인 시선으로 미래사업을 준비하는 것이 수익률의 비결입니다.”
▷생산시설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공급망 재편이 세계적으로 과제입니다.
“무라타는 연구개발 거점과 생산 거점이 가깝기 때문에 국내에서 최첨단 제품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노동인구 감소로 해외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범용제품이어서 기술 유출 위험이 적습니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5세대(5G) 이동통신과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 전자산업에서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변화가 10년 사이 일어났습니다.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속도와 투명성을 중시하려는 결정으로 이해합니다. 엔지니어 출신 최고경영자(CEO)의 장점은 기술 이해도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소재 및 부품기업 육성이 과제로 지적됩니다.
“일본인과는 다른 한국인의 기질에 한국의 강점과 약점이 동시에 들어 있습니다. 한국 기업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새 기술을 제품화하고, 전체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과제를 완수해냅니다. ‘모노즈쿠리’(일본의 장인정신)가 중시되는 소재와 부품 분야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봅니다.”
▷한·일 관계 악화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까.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3개월에 두 번 정도 한국에 출장을 갔습니다. 삼성그룹과 LG그룹에 친구도 많습니다. 소주는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지만 회식도 자주 했습니다. 그런 덕분인지 한·일 관계 악화가 사업에 영향을 준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규제는 영향이 있지 않습니까.“결국 영향을 받은 건 일본의 소재 회사입니다. (수출규제 조치는)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정책이 됐습니다.”
교토=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