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보여주기식 기업 때리기로 변질된 국감

중복 호출에 같은 질문 '비효율'
"누구 위한 국감인가" 비판 커져

김주완 IT과학부 기자
“회사가 크면 김범수 의장처럼 나도 곤욕을 치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을 지켜본 스타트업 대표 A씨의 지적이다. 이번 국감에는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김범준 대표, 배보찬 야놀자 대표 등 국내 플랫폼업계를 대표하는 기업 대표들이 줄소환됐다. 이름 깨나 있는 기업은 죄다 호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림짐작으로만 20개사를 헤아린다. A 대표는 “이렇게 많은 경우는 처음 본다”고 했다.

기업인 호출은 국감의 단골 메뉴다. 그러나 올해처럼 특정 업종과 기업이 타깃이 된 경우는 찾기 어렵다. 네이버, 카카오, NHN, 쿠팡, 야놀자 등 국회 상임위 상당수가 인터넷업계의 대표들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했다. 카카오는 무려 7개 상임위가 호출했다. 전체 상임위의 절반이다. 김 의장은 지난 5일 정무위원회에 이어 7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출석했다.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대표는 3개 상임위에 출석해야 한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5년 연속 국감에 나와 ‘기업인 연속 국감 출석’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상임위마다 출석 이유가 다른 것도 아니다. 정무위와 산자중기위는 카카오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 질의를 반복했다. 김 의장은 “논란을 일으켜 죄송하다”는 말을 똑같이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류 대표도 마찬가지다. 택시 서비스 수수료 인하 질의에 똑같은 답변을 반복했다.

왜 불렀는지를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지난 5일 행정안전위원회는 보이스피싱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이유로 여민수 카카오 공동 대표를 호출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동물용 의약품 온라인 불법 거래를 따져 묻겠다며 네이버와 카카오 관계자를 증인으로 불러 세울 예정이다.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최근 현안이 없는데도 일단 네이버와 카카오를 찍어 놓고 출석 요구 명분을 나중에 찾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꼬집었다. 정작 정보기술(IT) 기업과 가장 관련성이 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이들을 호출하지 않자 ‘호출하지 않은 책임을 묻겠다’는 말이 뒤늦게 나오는 ‘웃픈’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김범수 의장을 과방위에서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은 건 과방위 본분을 망각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감은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답변을 생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새로운 팩트도, 신선한 발상도, 가성비도 없는 ‘뺑뺑이 국감’을 국민은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