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생존 수형인 사실상 국가배상 못 받는다(종합)

법원, 위자료 1억원 중 형사보상금 공제한 나머지만 인정
"전국 끌려다니다 폭도 낙인까지 힘든 삶 법원이 묵살" 반발

법원이 사실상 제주 4·3 생존 수형인에 대한 국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제주지법 민사2부(류호중 부장판사)는 7일 양근방(89) 씨 등 4·3 수형인과 유족 등 39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4·3 희생자 본인에게 1억원, 배우자에게 5천만원, 자녀에게 1천만원을 각각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다만 이미 받은 형사보상금은 공제한다고 판시하면서 이번 재판에 참여한 4·3 수형인 18명 중 박순석(94) 씨만 2천만원 가량의 위자료를 받게 됐다.

앞서 제주지법은 2019년 8월 불법 군사재판 재심을 통해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4·3 생존 수형인 18명에게 구금 일수에 따라 1인당 최저 약 8천만원에서 최고 약 14억7천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형사보상 결정을 내렸다. 형사보상은 구속 재판을 받다 무죄가 확정된 경우 구금 일수만큼 보상해주는 제도다.

당시 박씨를 제외한 4·3 수형인들은 모두 1억원 이상의 형사보상금을 받았다.

사실상 이번 판결로 국가배상은 받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이번 재판 결과에 따라 국가는 원고 39명 중 14명에게 1인당 최저 168만원에서 최고 5천만원 등 모두 1억6천만원을 지급하게 된다.

재판부는 "이 사건 희생자들은 사전 또는 사후 영장 없이 체포돼 불법 재판을 받고 구금까지 당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고문을 당한 희생자도 있었다"며 "이를 국가가 책임져야 함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다만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가혹 행위 등으로 후유장애, 70년 동안의 폭도 낙인으로 정신적 고통과 명예훼손 등을 입었더라도 이를 별개의 불법행위라고 볼 수 없다"며 "또 일부 원고의 주택방화, 불법적 사찰 등은 주장만으로는 증거가 부족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해자 간 구금 기간 차이가 8개월에서 11년까지 적지 않지만, 4·3 수형인별 구금 기간에 따른 형사보상이 지급돼 형평성이 해소됐다고 볼 수 있다"며 일률적으로 위자료를 책정한 근거에 관해 설명했다.
당초 원고들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액은 1인당 적게는 3억원에서 많게는 15억원으로 모두 103억원이다.

재판에 참여한 4·3 수형인과 유족 측은 이번 판결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양일화(92) 씨는 "4·3 당시 전국 여기저기로 끌려다니며 살다가 제주로 겨우 돌아와서도 폭도 낙인이 찍혀 계속해서 힘든 삶을 살아왔다"며 "그 힘들었던 세월을 법원이 다 묵살했다.

왜 오늘 법원에 왔나 싶다"고 고개를 숙였다.

피해자 측 소송대리인 임재성 변호사는 선고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예상하지 못한 판결"이라며 "금액을 떠나 희생자의 개별적인 피해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모든 피해를 뭉뚱그려 법적 판단을 내린 이번 판결은 희생자의 오랜 고통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임 변호사는 "재판부가 4·3의 역사적 의미와 피해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추후 구체적인 판결문을 확인한 뒤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제주 4·3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양민이 희생된 사건이다.

이 기간 적게는 1만4천 명, 많게는 3만 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도 4·3 수형인은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영문도 모른 채 서대문형무소와 대구·전주·인천 형무소 등 전국 각지로 끌려가 수감된 이들을 말한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