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느려도 너무 느린 법원 IT 인프라

판사들, 15년 된 시스템 두고 골치
'디지털' 대세 역행…피해는 국민이

오현아 지식사회부 기자
오현아
“판결문 하나 업로드하는 데만 하세월이에요.”

도입된 지 15년 이상 된 법원 전산 시스템을 놓고 끙끙대고 있는 판사들에게 ‘한국=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인식은 비현실적이다. 판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판결문작성관리시스템과 법관통합재판시스템을 살펴보면 왜 그런지 쉽게 알 수 있다.이 프로그램은 각각 2005년, 2006년에 법원이 자체 개발했다. 판사들은 결정문과 판결문을 작성한 뒤 모두 시스템에 등록하게 돼 있다. 이를 통해 다른 재판부의 판결문을 확인하기도 하고, 일반인에게 판결문이 공개되기도 한다.

문제는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재판이 늦어지는 가운데 ‘구닥다리 프로그램’마저 판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판결문의 용량이 커질수록 등록하는 시간이 한없이 늘어난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판사들 사이에 “이럴 거면 등록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터져 나올 정도로 활용이 어려운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다른 지방법원 판사는 “모든 파일을 pdf로 변환해 올리게 돼 있는데, 이러면 이미지 파일로 등록돼 텍스트 검색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기업 등의 기술력을 빌려 하루빨리 시스템 개선에 나서는 게 절실하다”고 덧붙였다.이처럼 판사들 불만이 극에 달해 있지만, 법원 측은 아직까지 시스템 개선 등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보안상 내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복지부동은 법원이나 판사들에게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2020년대 법원이 2000년대 중반 시스템에 갇힌 바람에 그 피해는 재판을 받는 국민에게까지 돌아가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21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신규 등록된 사건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처리된 사건은 이보다 더 많이 감소했다. 이른바 ‘재판 병목’ 현상이다. 삶이 재판에 묶인 당사자들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미증유의 팬데믹을 계기로 법원도 영상재판 도입 등 거스르기 힘든 물결에 직면한 처지다. 그런데도 법원은 ‘가장 보수적이어야 할 곳’이라는 자기최면에 빠져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판사들 사이에서마저도 “변화 의지가 없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