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월가 대형 사모펀드 CEO에 한국계 '조셉 배'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의 한국계 미국인 조셉 배(한국명 배용범)가 공동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2018년 칼라일그룹의 공동 CEO 자리에 오른 이규성 대표에 이은 두 번째 사례로, 미국 월가에서 한국인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KKR은 "공동창업자인 헨리 크래비스와 조지 로버츠 공동 CEO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공동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조셉 배와 스콧 너클을 새로운 공동 CEO로 임명한다"고 밝혔다.1973년생인 조셉 배는 한국 나이로 49세다. 3살 때 화학 연구원 아버지와 선교사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이민 2세대다. 미국 뉴저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하버드대에 진학했다. 우등상인 '마그나 쿰 라우데'를 수상하며 졸업했다.

그의 첫 직장은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다. 자기자본(PI) 투자 부문에서 근무하다 1996년 KKR에 합류했다. 원래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조셉 배가 처음부터 진로를 사모펀드 업계로 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골드만삭스를 떠나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었지만, KKR에서 애널리스트를 뽑는다는 헤드헌터의 말에 사모펀드 운용사에 합류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KKR에서 두각을 나타낸 건 창업자 크래비스가 홍콩과 다른 아시아 국가로 진출하기로 결정한 2005년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당시 크래비스 회장은 이미 칼라일 TPG 월버그 핀커스 등이 선점하고 있던 아시아 시장을 장악하는 데 이 한국계 미국인이 도움이 될 것이란 데에 도박을 건 셈이었다"면서 "덕분에 조셉 배는 엄청난 기회를 얻었다"고 설명했다.조셉 배는 2005년 홍콩으로 이주해 아시아 투자사업부를 이끌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3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아시아 투자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특히 금융위기 여파로 미국 인수합병(M&A) 시장이 부진하던 때에 아시아 시장을 KKR의 새로운 수익처로 만들어주면서 크래비스 회장 등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국내 M&A 시장에서는 2009년 5월 오비맥주를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그는 19억달러(약 2조2788억원)에 인수한 오비맥주를 2014년 58억달러에 AB인베브에 되팔았다. 5년만에 3배 이상의 수익을 올린 '대박 거래'를 주도한 것이다. 파나소닉헬스케어와 히타치공기 등 일본 대기업들의 비핵심 계열사 인수 거래도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조셉 배의 개인 순자산은 11억달러에 달한다. 하버드대 재학 시절 만난 한국계 작가 재니스 리와 1996년 결혼해 슬하에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이날 퇴임을 공식화한 크래비스와 로버츠는 올해로 각각 78세와 79세다. 기업을 인수해 가치를 높인 뒤 매각하는 바이아웃(경영권 거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들은 소액의 자기자본과 인수하려는 기업의 자산, 차입금 등을 지렛대로 삼아 회사를 매수하는 차입매수(LBO) 방식을 대중화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KKR이 현재 운용 중인 자산 규모는 4290억달러에 이른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