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균·살충제 업체 절반 388곳 사업 접을 판

화평법·화관법 이어 화학제품안전법 규제까지 '3중고'

감사원 "858개사 중 45%가
살생물제 승인신청서 제출 안해"
유예기간 지나면 폐업 위기

업체들 "규제 내용 잘 몰라
관련 인력도 없다" 아우성

정부, 화평법개정안 14일 시행
허가물질 지정 전 의견수렴 강화
살균제·살충제 업체들이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화학제품안전법) 규제로 무더기 사업 중단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들은 기술적 어려움, 인력 부족 등을 호소하며 규제 기준을 맞추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에 이어 화학제품안전법까지 더해진 ‘화학 규제’ 삼중고로 기업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학제품안전법 감사에서 기업 ‘비명’

감사원은 12일 ‘생활화학제품 관리실태’ 감사 결과 환경부에 중소기업이 화학제품안전법 규제를 이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지원 대책을 보완할 것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 과정에서 살균제·살충제 등 살생물제를 제조·수입하는 858개 업체를 대상으로 준비 실태 등을 조사했다. 이들 업체는 작년 말까지 살생물제 승인 신청계획서를 제출해야 했지만 388개(45.2%) 업체가 신청계획서를 내지 않아 승인 유예기간 종료 후 사실상 사업을 중단할 처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신청계획서 미제출 기업을 대상으로 사유를 확인한 결과 응답업체 117개 중 40개(34.2%)가 신청계획서를 제출하고자 했으나 기술적 어려움, 전산상 오류, 기술인력 부족 등의 사유로 제출하지 못했다. 또 45개(38.5%) 업체는 해당 물질의 제조·수입을 포기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감사원은 “화학제품안전법 내용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규제 대응을 위한 비용 부담이 크고,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수입 지연으로 승인 신청 여부를 결정하기가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부분 중소기업이 화학제품안전법 규제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번 감사 결과와 관련해 “기업들을 상대로 화학제품안전법 승인 절차와 관련한 맞춤형 지원 대책을 확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화관법 등 기존 규제에 더해 부담 커져

화학제품안전법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화학제품 안전관리를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2019년 1월 도입됐다. 이 법에 따르면 살균제·살충제 등 살생물 제품은 환경이나 사람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등 기준을 맞춰 환경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 대상으로 고시된 물질을 제조·수입하는 업체는 고시일로부터 1년 이내에 물질승인 신청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다만 물질이나 제품 사용 유형별로 유해성 정도에 따라 2022~2029년까지 승인 유예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감사원은 기존 화관법에 화학제품안전법까지 더해지면서 기업 부담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감사원은 “화관법에 따른 화학물질 통계조사를 받는 일부 업체는 생활화학제품 제조·수입 보고 제도에 따라 살생물 물질의 명칭과 양 등을 환경부에 보고할 의무도 있다”며 “기업 부담이 가중되고, 정부도 불필요하게 행정력을 낭비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한편 14일부터 화평법에 따라 환경부가 허가물질을 지정할 때 산업계 등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절차가 강화된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화평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환경부는 앞으로 허가물질 지정에 앞서 이를 선정·공고하고 허가 대상 후보물질별 대체 가능성, 산업계 대응 여건, 시급성 등에 대해 의견을 사전에 수렴해야 한다.

연간 1000t 미만으로 제조·수입하는 고분자화합물을 등록·신청하는 경우는 위해성 관련 자료 제출을 생략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화학제품안전법에 따라 살생물 물질 승인을 위해 제출한 자료는 화평법 등록 신청 때 제출을 생략할 수 있다.

임도원/김소현/안대규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