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와 머스크가 택한 '기회의 땅' [실리콘밸리 나우]
입력
수정
텍사스 오스틴으로 본사 이전일론 머스크 테슬라 대표(CEO)가 지난 7일 "본사를 실리콘밸리에서 텍사스 오스틴으로 옮기겠다"고 주주들 앞에서 전격 선언했습니다. 머스크는 "베이 에어리어(Bay Area·샌프란시스코, 산호세, 오클랜드로 이어지는 대도시 권역)는 높은 주택 가격 때문에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이 길어진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낮은 세율, 저렴한 주거비 영향
기업들 기업하기 좋은 환경 찾아
캘리포니아 탈출 러시
터줏대감 HP와 오라클도 이전
캘리포니아는 연방 법인세에
8.8% 주(州) 법인세까지 부과
기업들 "캘리포니아 높은 세율 부담"
테슬라의 본사 이전은 사실 예정돼있었습니다. 지난해 5월 캘리포니아주(州) 정부가 코로나19 때문에 테슬라의 프리몬트 공장에 대한 생산 중단 명령을 내리자 머스크가 노발대발하며 "텍사스로 본사를 옮기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엔 머스크 본인이 먼저 텍사스로 이사가기도 했습니다.최근 현지에선 머스크가 '본사 이전'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민주당 소속 로레나 곤잘레스 캘리포니아주(州) 하원의원의 인신공격 때문'이란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런 내용을 담은 기사에 머스크는 '맞다'(Exactly)고 답글을 달았습니다. 당시 곤잘레스 의원은 지역 보건 당국과 마찰을 빚던 머스크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담은 글을 게재했습니다. 또 "캘리포니아는 테슬라에 많은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테슬라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복지를 무시했고 공무원들도 괴롭히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머스크의 본사 이전 결정에 텍사스주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그렉 애봇 텍사스 주지사는 트위터를 통해 "론스타 스테이트는 기회와 혁신의 땅"이라며고 알렸습니다.
살인적인 집 값...연봉의 절반 떼가는 세금
머스크가 캘리포니아주의 '높은 주택 가격'과 관련해 불만을 쏟아낸 건 '과장'이 아닙니다. 베이에어리어 집값은 미국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합니다. 금융 중심지 뉴욕 맨해튼과 비슷한 수준입니다.중산층 가족이 많이 사는 실리콘밸리의 팔로알토의 방 4개, 차고 2개짜리 2층 목조주택은 300만달러(약 36억원) 넘는 가격에 매물이 올라와있습니다. 건축 시기와 학군 등에 따라 같은 크기의 집도 가격 차가 발생하긴 합니다.월세도 상당히 비쌉니다. 저는 엔비디아, 인텔, AMD 등의 본사가 모여 있는 산타클라라의 원베드룸(방 하나, 화장실 하나, 부엌) 신축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지난 6월 계약 때 월세가 3100~3200달러(371만~383만원) 수준이었습니다. 이것도 코로나19 여파로 실리콘밸리 월세 상승세가 주춤해져서 가능한 가격이었습니다. 최근엔 가격이 다시 뛰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이런 이유로 많은 실리콘밸리 빅테크 직원들은 샌프란시스코나 산호세 등 중심부가 아닌 '교외'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마침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 탈 실리콘밸리 움직임은 가시화됐습니다. 제가 만난 주요 테크기업의 팀장급 직원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다가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본사에서 60km 떨어진 도시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이 직원은 "집값이 계속 오르면서 '아예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외로 옮겼다"며 "내 집이 생겨서 좋지만 펜데믹 이후 회사에서 본사(샌프란시스코)로 출근하라고하면 다닐 자신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직장인들이 내야하는 세금도 많습니다. 미국 연방정부의 소득세율은 소득과 가족 구성원 수에 따라 7개 구간으로 나뉘고 있는데, 10% 12% 22% 24% 32% 35% 37% 등입니다. 최고 세율인 37%는 독신일 경우 연 소득 52만3600만달러부터, 부부일 경우 62만8300만달러부터 적용됩니다. 그 아래 단계인 35% 세율은 독신 20만9425달러, 부부 41만8850달러부터입니다. 32%는 독신 16만4925달러, 부부 32만9850달러부터입니다. 이 세율에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 직장인들은 캘리포니아 주 소득세(최고 13.3%)를 더해 내야 하는 구조입니다. 연봉의 40% 정도가 세금으로 나간다는 얘기입니다.
기업유치에 사활...'무(無) 세금 정책' 텍사스
텍사스는 좀 다릅니다. 기업들의 '성지'로 뜨고 있습니다. 일관된 친(親)기업 정책 덕분이란 게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게다가 텍사스엔 기업 유치에 발벗고 나서는 전통이 있다고합니다. 법인세 등을 미국 50개 주 가운데 가장 낮게 책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텍사스는 주 차원의 법인세를 부과하지 않습니다. 최고 1%의 영업세(franchise tax)만 물립니다. 물론 모든 주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연방정부 법인세(21%)는 내야합니다. 세금을 적게 거두는 대신 기업을 더 유치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는 목표다.
개인소득세도 없습니다. 부유층의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스크가 텍사스로 거주지를 옮기기로 결정한 것도 캘리포니아주 정치인과 공무원들에 대한 반감에 더해 적은 소득세 등 현실적인 요인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텍사스의 무(無)세금 정책은 8.84%(주 법인세)~13.3%(소득세)로 미국 내 최고 수준의 주(州) 세금을 부과하는 캘리포니아와 대조적입니다.
오라클, HP 등 캘리포니아 떠나 텍사스로
이런 이유로 '탈(脫) 실리콘밸리'와 '텍사스 이전 러시'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래는 최근 텍사스로 본사를 옮긴 주요 기업입니다. KOTRA 댈라스 무역관의 보고서를 기초로 정리했습니다.△오라클세계 최대 데이터베이스 기업. 2020년 12월 본사를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시티에서 텍사스 오스틴으로 본사 이전 계획을 발표. 본사 이전을 통해 "근무하는 장소와 업무 방식에 더 많은 유연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고 근무에 대한 현대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직원들의 삶과 제품의 질이 더욱 향상될 것"이라고 발표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
2020년 12월 캘리포니아 샌호세에서 텍사스 휴스턴으로 본사 이전 계획을 발표. 현재 본사 건설이 진행 중. 약 1만3000평 대지에 본사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 중. 5층 건물 두 채가 2022년 3월에 문을 열 예정
△NRG 에너지
2021년 5월 포춘 500대 기업 중 333위인 에너지 기업.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텍사스 휴스턴으로 본사 이전 계획을 발표. 휴스턴은 NRG 에너지의 두 번째 본사였는데 운영을 단순화하기 위한 일원화하는 과정에서 휴스턴을 단일 본사로 지정. 휴스턴시의 기후 행동 계획에 대한 노력과 함께 휴스턴이 보유한 전문 인재의 다양성이 본사 이전의 주요 원인이라고 밝혀
△슈마허
배터리 충전기, 점프 스타터 및 휴대용 장치 등 자동차 전력 변환 제품 전문 글로벌 업체. 지난 8월 본사를 시카고 지역에서 포트워스로 이전하였다. 슈마허는 "텍사스는 기업 친화적이고 회사가 추구하는 단독 유통센터 모델에 아주 바람직한 위치"라고 설명
△파이어호크 에어로스페이스
로켓 엔진 스타트업.플로리다 멜버른에서 텍사스 댈러스로 본사 이전을 계획. 상업용 로켓 시장에서 텍사스가 성장하는 허브가 되면서 3D 프린팅 로켓 엔진 부문 확장하고 우주 경쟁에 동참하기 위한 일환의 방편
△랜치랜드 푸드
식품 유통 기업. 2021년 5월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텍사스 덴톤으로 본사 및 유통센터 이전 계획을 발표. 회사는 덴톤에 600만 달러를 투자하고 140개의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 편리한 교통과 뛰어난 접근성 측면에서 덴톤을 적합한 위치로 선정
△길라드앤길라드
신경 과학에 핵심역량을 갖춘 헬스 사이언스 기업. 2021년 3월 캘리포니아 LA에서 텍사스 조지타운(오스틴 지역)으로 본사 이전을 발표. 회사는 "신규 사업 연결성과 우수한 의료 센터와의 근접성 때문에 오스틴 지역으로 이전한다"고 설명
△DZS
한국 기업인 다산네트웍스가 미국 통신장비 기업인 존테크놀로지를 인수·합병하면서 출범된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 2020년 3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텍사스 플레이노로 본사 이전을 발표. "댈러스 지역은 첨단 통신 기술, 특히 차세대 무선 및 네트워크 추상화 및 가상화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엔지니어링 인재들이 풍부하다"고 평가
△본촌
한국식 치킨 전문 체인. 미국 내 100여 개 지점을 보유. 2021년 1월 뉴욕에서 텍사스 댈러스로 본사를 이전. 지리적으로 미국 중심부에 소재함에 따라 동부와 서부 지 내 모든 프랜차이즈 파트너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
테슬라 달래기 나선 캘리포니아
이는 경제지표로도 증명됩니다. 코로나 달라스 무역관에 따르면 코로나19 영향에도 불구하고 텍사스의 GDP는 2020년 3분기부터 큰 폭으로 회복되고 있습니다. 2021년 1분기 GDP는 이미 전년 동기 수준을 상회하였으며, 2021년 2분기 GDP는 1조 8200억 달러를 초과했습니다.텍사스 전입 인구는 7년 연속으로 연 50만 명이 넘었다습니다. 지난 10년간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로 이주한 인구는 약 70만 명에 달합니다. 텍사스로 유입되는 외국인 중 아시안이 증가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2000년 이전 유입 외국인 중 아시안의 비중은 19.1%에서 2010년 이후에는 30.5%로 확대됐습니다. "아시안 기업들의 텍사스 진출이 크게 증가한 것이 원인"이란 분석이 나옵니다.하지만 텍사스가 100% 만족스러운 곳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공화당 텃밭인 텍사스가 지나치게 보수적인 정책을 연이어 선보이며 젊은 유입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텍사스의 공공 분야가 취약한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됩니다. 텍사스는 건강보험이 없는 주민이 10명당 2명 수준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낙태 금지법 시행으로 텍사스의 일부 기업은 이탈 조짐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친환경' 딱지가 붙은 전기차 세계 1위 기업 테슬라가 석유재벌의 본거지 텍사스로 본사를 옮기는 게 정당하냐는 시각도 있습니다.캘리포니아는 테슬라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지난 9일(현지시간) 한 행사에서 "캘리포니아에 공장을 투자한 머스크에 감사하다"며 "머스크는 세계의 위대한 혁신가이자 기업가 중 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의 실리콘밸리·한국 신산업 관련 뉴스레터 한경 엣지(EDGE)를 만나보세요!
▶무료 구독하기 hankyung.com/newsletter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