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석칼럼] 예능 정치로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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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화두(話頭)는 인간이 자각할 때부터 품었고 끝없이 고민하며 만지작거렸다. 이 질문에 내로라하는 성현(聖賢)들이 직, 간접적으로 말씀을 하셨으나 필자가 보기에 명쾌한 답은 없고 끄덕여지면서도 아리송한 가르침은 참으로 많다.
생각 없이 보면 예능, 생각하며 감상하면 예술, 정치도 그렇다.
정치인은 딱 유권자 눈높이에 맞추어서 현란한 호소를 할 뿐이다.
하나의 꿈에 수백가지 해몽이 있는 것과 같다. 대부분 말씀의 공통점은 인간은 물론이고 자연까지도 서로 사랑하고, 이롭게 하며 착하게 살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세속에 인간의 삶에서 현실적으로 추구하는 목적(目的)은 행복(幸福)이라는 것이 다수설이다. 행복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자유다. 자유는 한 인간이 자기 수준에서 생리적 욕구에서 자아실현 욕구까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음대로 하는 생각과 행동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생각과 행동을 남이 시키는 대로 사는 노예적 삶이 아니라 자신이 언행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주인으로서의 삶이다.
자기 삶의 주인은 눈, 귀, 코, 몸 등으로 만져지고 보이는 현상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른바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오근(五根)과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인 오경(五境)을 통한 쾌락은 일시적 행복감을 줄지언정 잠시 지나고 나면 허망하다. 감각적 쾌락일 뿐이다.
▲ 생각하지 말고 봐야 하는 예능과 생각하며 봐야 하는 예술
예능을 볼 때는 보이고 들려지는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시간 죽이는 데는 최고다. 예능을 보고 나서 큰 감동과 교훈, 지식, 지혜, 깨달음을 얻자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능 자체가 오락이 목적인 프로그램으로 생각 없이 보면 된다.그래서 예능 방송이 조금만 지성적으로 흘러가도 바로 다큐(documentary, 사실 기록)냐고 꺼버린다. 그래서 아이들 보고 예능프로그램 보라고 권장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그러나 그림, 음악, 조각, 시 등 예술품을 감상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을까? 한 작가가 현실 세계를 보고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창의적으로 고도화하여 응축시켜서 표현한 작품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
물론 일단 눈과 귀로 받아들이면서 차차 생각, 사유를 할 것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자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와 다른 생각, 다른 결론을 내렸더라도 관계없다. 예술의 핵심은 감상자가 주인으로 생각하고 본다는데 있다. 그래서 학교나 부모들은 아이들을 박물관, 오페라극장, 전시회장으로 보낸다.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감각의 세계를 우리는 현상계라 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사유의 세계를 우리는 추상 세계라 부른다. 인류문명을 발전시킨 일, 창의, 용기, 정의, 자유, 독립은 모두 추상세계에서 얻어진 산물이다. 추상세계는 바로 철학 수준의 세계다.
▲ 기능, 기술과 과학 그리고 피아니스트, 뮤지션과 아티스트의 단계
칼은 만들 때 달궈진 쇠를 잘 두들겨 잘 벼려서 잘 드는 칼을 만드는 사람을 우리는 기능인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칼 만드는 기능인으로서 생각까지 더하여 축적된 데이터 등을 이용해서 쇠를 녹이는 최적의 온도, 두께 등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면 우리는 이를 기술이라 한다.그런데 쇠를 녹이는 기술, 칼을 만드는 재료 등을 가지고 하나의 정형화, 범용성 있는 원칙을 만들어 배, 비행기. 자동차 등에 이 기술을 응용 하면 우리는 이를 과학이라 한다.
중국 등 동양은 기능과 기술은 어느 정도 있었지만 과학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활을 잘 만들었지만 활의 목적인 무기가 날아가서 목표물을 타격하는 근본적이 기술, 과학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16세기 이후 동양은 서양에 완패하고 몰락했다.
피아노를 잘 치면 피아니스트(pianist)라고 한다. 피아니스트는 피아노가 가진 기능을 잘 구현하는 사람인데, 완숙의 경지에 이르면 더 높은 음악의 세계로 상승한다. 기타, 바이올린, 색소폰 등 다른 악기도 마찬가지이다. 이 수준에 이른 사람을 피아니스트가 아닌 음악가, 뮤지션 (musician)이라고 부른다.
이 경지에서도 더 넓고 높은 세계로 상승하면 음악 활동을 통해 인간을 표현하게 되는데, 이때 비로소 우리는 그들이라는 복수(複數)가 아닌 단수로 예술가인 아티스트 (artist)라고 부른다.
그러나 아티스트는 수십만명의 피아니스트 중에서 한 단계 올라간 수만 명의 뮤지션 인재 중에 한 명이 나올까 말까 하는 신의 경지이다. 뮤지션까지는 지도자나 선각자들이 만들어 놓은 경험들을 피를 깎는 연습과 노력을 통해 따라갈 수가 있다. 그러나 아티스트는 없는 길을 만들어서 가야 한다.
그 누구도 가지 않고 생각하지도 못한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만들고, 펼치고 나가야 한다. 새로운 인간의 무늬(인문, 人文)를 그려야 하는 일이다. 말이 쉽지 배울 곳도 없고 상상도 안 되는 멋진 길을 만들어야 하는데 보통 인간의 힘으로 거의 불가능의 영역이다.
있는 길을 가는 것과 없는 길을 여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없는 길을 만들어 가는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한다. 그때 작동하는 것이 상상력이나 창의성이다. 철학과 과학, 예술 수준이 높은 나라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다.
당연히 이들이 만든 일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연결되어 경제대국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이제 더 이상 모방하고 베낄 물건, 나라가 없다. 우리가 창조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평화상을 제외한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 및 의학, 문학, 경제학 등이다. 일본국적 수상자는 30명이지만 한국은 단 1명도 없다. 노벨상은 잘 베낀 사람을 절대 뽑지 않기 때문이다.
▲ 막강한 권한을 가지는 대통령을 예능으로 뽑을 것인가?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인간이 생존하고 지속적 생존유지에 필요한 것들의 양과 질을 늘리는 행위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무리를 만들었고, 뭉쳐 다니며 하나의 언어, 공통된 생활양식을 하면서 민족으로 분류되었다.그리고 하나 또는 여러 민족이 모여 규칙(헌법)을 만들어 국가를 만들었다. 그 국가의 국민(시민)은 가장 합리적인 질서유지를 위하여 권력을 모아주기로 하였고 우리는 그 제도로 자유 민주주의를 채택하였다.
그 국민으로 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권력자인 국회의원, 대통령 등을 뽑기 위하여 선거를 한다. 그래서 선거는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며 한 점의 의혹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일수록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손 투표, 수개표를 원칙으로 한다.
이러한 엄정한 선거를 통하여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자는 한정된 나라의 돈, 인력 등 자원을 분배할 권한, 각종 인허가권을 행사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내년 3월에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을 뽑는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이자 국군통수권자로서, 대법원장 및 일부 대법관, 헌법재판소장과 일부 헌법 재판관의 임명권을 지닌다. 공무원 임면권, 사면 감형 및 복권의 권한은 물론이고 행정부를 구성하는 권한과 행정입법권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이 나라가 비상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신속한 대처를 할 수 있는 긴급명령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계엄령을 발동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은 3년 동안 9만여 명이 증가한 약 110만 명에 이르고 군인은 약 60만 명이고, 339개 공기업 직원은 약 41만 명으로서 대통령은 직접 인구의 4%에 달하는 약 2백만 명 이상의 조직원을 통할하는 중차대한 자리이다.
한국의 1년 예산은 604조 원이고 국가채무 956조 원이며 공기업의 연간 총수입(국가지원예산 77조 원 포함) 673조에 달한다. 대통령은 한국의 가계, 기업, 정부의 부채 총합 4,900조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금액에 중대한 영향력이 있다.
또 대통령은 한국의 명목 GDP 약 1조 6천억 달러 이상의 돈, 국민순자산 1경 8천조 원을 직·간접적으로 주무를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 한 개인에게 이렇게 막강한 권력을 위임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그래서 입법과 사법권 이른바 삼권을 분립하여 견제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이 견제 장치도 입법과 정부가 하나의 정당으로 쏠리면 사법의 독립성도 유지하기 힘들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스티브 잡스의 위대성은 시장을 따라가지 않고, 고객이 해체도 못하는 '맥북'으로 자신만의 시장을 만든데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제, 정치, 문화 활동은 그렇지 않다. 예능 PD는 시청자 연령, 수준을 고려하여 프로그램을 만들 듯이 기업은 시장에 고객 기호 수준을 따라 재품을 만들고 마케팅 활동을 한다.
정치인도 자신의 이상적인 정치 철학을 구현하는 것보다 유권자 수준에 맞추어 인기영합적(포퓰리즘)인 정치를 한다.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의 정치 수준,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 수준은 유권자 수준대로 결정된다.
예능은 보고 나서 시간이 소요됐을 뿐 뒤탈은 없다. 그러나 예능 보듯이 정치를 보고 그 수준의 정치인, 대통령을 뽑으면 그 후유증은 아주 크다. 5년 동안은 흉몽 속에 살아야 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는 예능인을 선출하는 일도 아니다. 아티스트 수준의 '정치가'를 뽑지 못해도 화려한 언변으로 치장한 저질 '정치꾼'을 뽑아서는 안된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각자 위치에서 예능을 보는 수준의 진영에 갇히지 말고 예술을 감상하는 수준의 자유인으로 생각해야 할 일이다. 진정 스스로가 자유인이라면...<한경닷컴 The Lifeist> 박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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