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다산상 수상자도 걱정하는데…성큼 다가온 기본소득제 [여기는 논설실]

휘도 임번스 미 스탠퍼드대 교수. 연합뉴스
논쟁 수준에 머물던 기본소득제 도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경기도는 내년부터 면단위 지역 한 곳을 선정해 농촌기본소득을 시범실시키로 했다. 소득·자산·노동 유무와 상관없이 전 주민에게 월 15만원(연 18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실험에 착수한 것이다. 시범마을은 26개 경기도내 면을 대상으로 공모해 내달 선정할 예정이다.

성공적이라고 판단되면 대상 지역을 확대한다는 게 경기도의 설명이지만, 현재로선 추가 확대는 예정된 수순으로 보인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세계최초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이미 못을 박았다. 이재명 후보는 2023년까지 전 국민에게 1인당 연 25만 원, 2024년 이후에는 1인당 연 100만 원의 기본소득 지급을 공약했다. 또 19~29세 청년(약 700만 명)에게는 연 100만 원씩의 청년기본소득을 추가 지급할 계획이다. 재원 마련 방안으로는 국토보유세·탄소세 신설, 비과세·감면제도 구조 조정 등을 제시하고 있다. 기본소득제 도입이 이슈가 되면서 학계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석학들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다산경제학상 수상자인 장용성 서울대교수는 기본소득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려다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 받는 복지예산을 없앨 수 있다“며 ”가난한 사람들의 살림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원을 마련하려면 세금을 더 걷거나 복지예산을 상당폭 깎아야 하는 만큼 자원배분이 왜곡되고 소득불평등은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공동수상자 휘도 임번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도 회의적이다. 수상 직후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기본소득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 그는 “근로 요건과 무관한 소득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일자리를 찾는 동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답했다. 2019년 최연소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에스테르 뒤플로 MIT대 교수도 비슷한 생각이다. 빈곤·격차 문제 연구로 유명한 그는 “한국처럼 경제 규모가 크고 발전한 나라들은 보편적 기본소득보다 선별적 복지를 선택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보편적 기본소득의 단점은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소득을 오래동안 주장하고 설계해온 이재명 지사와 캠프는 국내외 석학들의 이런 설명에 세세하고 성실하게 답해야 한다. 세계 최초의 실험을 하겠다면서 얼기설기 만든 구상을 ‘일단 작동시켜 보자’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지금은 기본소득제에 찬성하는 일부 해외학자나 운동가들의 이론을 앵무세처럼 되풀이하는 정도다. 그건 검증이 아니라 검증거부 일 뿐이다. 진지한 학자들의 물음에 걸맞는 정교한 설명을 내놓을 시간이다.

백광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