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진의 숫자로 보는 세상] 이젠 '팬덤 자본이 기업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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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 3000조원 애플, 자산은 372조 불과지난 5일은 스티브 잡스의 1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잡스는 슈퍼컴퓨터 대신 언젠가 모든 가정에서 PC를 가지게 되리라 생각했고, 결국 애플이라는 현실을 이뤄냈다. 잡스의 생각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손에 쥐고 다닐 수 있는 통신 컴퓨터, 아이폰을 통해 기술과 인간의 만남을 극대화했다.
'PER 400배' 테슬라, 두터운 팬덤층 보유
삼성전자 등 국내기업 팬덤 창조력 생각해야
정도진 <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
이런 잡스의 애플은 이제 시가총액이 3000조원에 육박해 미국의 거대 자본시장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애플의 올 6월 말 자산 규모는 약 372조원으로 시총의 13%에 불과하다. 그만큼 애플 자산의 이익 창출 능력에 대한 시장의 믿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애플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의외로 채권 등 시장성 유가증권으로 총자산의 절반에 달하는 180조원 규모다. 이는 마치 가입자의 신뢰를 기반으로 생존하는 보험회사와 같은 자산 구성이다. 반면에 기계장치와 같은 유형자산은 총자산의 10%를 약간 넘어서는 43조원에 불과하다. 즉, 애플의 핵심 자산은 기계장치 등 유형의 요소를 넘어서서 잡스의 비전과 혁신에 매혹된 팬덤인 것이다.5일 포브스 기사에 따르면, 잡스는 말년의 한 인터뷰에서 그가 원한 것은 고객이 그 제품 없이는 살 수 없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이것이 잡스가 애플의 팬덤을 창조할 수 있었던 신념이었을 것이다.
팬덤의 대표 기업이라고 하면 테슬라를 빼놓을 수 없다. 테슬라의 올 상반기 총자산은 약 62조원에 불과하지만, 시총은 무려 923조원에 달한다. 이런 테슬라의 최대 자산은 유형자산으로 17조원이다. 그런데 테슬라는 이외에 태양에너지시스템 6조원과 리스자동차 4조원의 대형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 사업의 포괄적 목적에 대해 ‘탄화수소의 경제로부터 태양광으로 발전하는 경제로 이행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보유자산의 숫자로도 나타나듯이 테슬라는 전기차만을 만드는 제조회사가 아니라 태양광 플랫폼이라는 거대 프레임 안에서 전기차를 생산·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애플의 주가수익비율(PER)이 27배인데, 테슬라의 PER은 무려 400배가 넘는다. PER이란 이익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평가로, 400배가 넘는다는 것은 테슬라의 미래에 대한 팬덤층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시사한다.
1983년 28세의 호기로운 잡스가 70대 고령의 이병철 회장을 처음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할 때만 해도 삼성폰의 탄생과 성장을 예견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올 6월 말 삼성전자의 자산 규모는 애플과 비슷한 약 384조원이다. 그중 최대 자산은 기계장치 중심의 유형자산으로 총자산의 38%에 해당하는 139조원이다. 채권 등 유가증권 중심의 애플 자산 구성과는 전혀 다르다. 즉, 삼성전자는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생산·판매해 높은 이익을 창출하고 이익의 상당 부분을 다시 설비자산 등에 투자하는 전형적인 제조회사다. 삼성전자는 총자산의 30%에 육박하는 108조원의 또 다른 최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현금성 자산이다. 삼성전자가 그동안 적기의 투자 결정을 하지 못한 것으로 비치는 수치다. 그로 인해 삼성전자가 팬덤을 놓치지 않았는지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가령 최근 파이퍼샌들러의 2021년 가을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10대의 아이폰 점유율이 80% 후반대이고 애플 워치도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현금이 10대를 포함한 소위 Z세대를 팬덤으로 지켜내고 창조할 수 있는 투자가 될지 주목되는 시점이다.한편, 한국의 플랫폼 사업을 보면 최근 카카오 등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카카오의 경우 종속기업을 포함하지 않은 총자산은 약 7조원인데 최대 자산이 2조원에 달하는 무형자산이다. 그리고 작년 말 기준으로 그 무형자산의 75%가 사업의 인수합병에서 발생한 영업권인 것이다. 카카오를 ‘진격의 카카오’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수치다. 다만, 이런 진격의 과정에 카카오가 팬덤을 창조한 것인지 오히려 팬덤을 잃은 것인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포스트 코로나 경제는 팬덤 경제라고 한다. 굴뚝 산업에서는 거대 자본이 경쟁력이었지만, 지금은 팬덤 자본이 기업의 경쟁력이다. 한국 기업의 팬덤 창조 능력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