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쌈짓돈'이 말하는 과학기술계의 도덕성

비위에 연구비 유용까지 드러나
국감 의원 "자정능력 상실" 개탄

이해성 IT과학부 기자
18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소관기관 53곳 국정감사.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5년간 출연연구소 25곳의 징계 건수 2649건(본지 10월 5일자 A4면 참조)을 언급하며 외유성 출장, 향응 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에게 물었다. 김 이사장은 “우리 조직이 2만 명인데…”라며 대수롭잖게 웃어넘겼다. 2만 명이 5년 동안 몇천 건의 비위를 저지르는 게 무슨 문제냐는 해괴한 논리다. 주 의원이 “그런 사고방식이 문제”라고 추궁하자 김 이사장은 그제야 “근절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NST는 연 예산 5조원을 집행하며 인력 2만3500여 명을 관할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그러나 이사장 공석이 반복되면서 과학계에서 ‘없어도 그만’인 자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올초 임명된 임혜숙 이사장이 3개월도 지나지 않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옮겨간 게 결정타가 됐다. 이후 새 이사장 공모가 진행됐으나, 김 이사장 내정설이 파다했고 실제로 그가 지명됐다.주 의원은 “NST가 낙하산에 점령당했고, PBS(개인수탁과제) 등 출연연 내부 문제를 전혀 해결 못하고 있어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는 의견까지 나온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이 질의에도 “실질적으로 좋아지고 있다”고 엉뚱한 답을 내놨다.

과학계의 불감증, 무너진 윤리의식을 보여주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이날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의 ‘잔고계정’ 규모는 40억5000만원에 달했다. 잔고계정은 남은 연구비를 교수 개인 통장에 넣어뒀다가 기간 제한 없이 사용하는 정체불명의 제도다. 작년부터 지난달까지 세 곳의 잔고계정 집행 내역 7311건 중 60%인 4325건이 출장비, 회의비로 쓰였다. 가장 많은 잔고계정을 운영하는 GIST는 160개 계정에 26억1500만원을 넣어두고 빼 쓰고 있었다.

GIST는 올 들어 김기선 총장의 수억원대 연구수당 편법 수령 의혹 등으로 아수라장이 된 곳이다. 김 총장은 지난 3월 사의를 밝혔다가 번복 후 업무에 복귀했으나 이후 이사회가 해임하자 불복해 소송을 걸어 승소한 뒤 최근 다시 복귀했다. 총장이 연구수당을 수령하는 것은 전례가 없지만 김 총장이 이 불문율을 깼다. GIST는 내부 직원 여러 명이 기술이전 등 거래당사자 기업으로부터 스톡옵션을 불법적으로 취득하고 이를 적극 은폐한 사실이 이날 국감에서 새로 드러나기도 했다. 정필모 민주당 의원은 “GIST는 자정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꼬집었다. 이런 곳이 GIST 한 곳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