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곰(Bear)은 돌아서고, 황소는 바나나에 휩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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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중국에서 전해진 3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4.9%에 그쳐 이미 낮아진 시장 예상(5.0%)을 밑돌았습니다. 전력난과 공급망 혼란, 부동산 불안, 당국의 기업 규제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또 함께 발표된 중국의 9월 산업생산은 작년 동기보다 3.1%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9월 소매판매는 4.4% 늘었지만 '세계의 공장' 중국은 산업생산이 소비보다 훨씬 중요한 나라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중국의 GDP 증가율은 S&P500 기업들의 실적에 점점 더 중요하다. 지난 20년간 세계 GDP 성장의 30%가량이 중국에서 비롯됐다. 미국의 21% 기여에 앞선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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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급난으로 자동차와 부품 생산이 7.2% 감소한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에 따라 제조업 생산이 0.7% 줄었습니다. 또 허리케인 아이다 여파로 광업 생산도 2.3% 감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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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에 공급이 부족할 가능성이 유가를 자극하고 있지만, 누적된 투자 감소로 인해 원유 부족 사태가 장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자꾸 나오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ESG 등의 영향으로 2014년부터 에너지 투자가 지속해서 감소해왔다"라며 "이는 원유 공급 측면에서 위험신호"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집값이 계속 강세를 보일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주택 가격(임대료)은 미국 소비자물가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합니다. 인플레이션이 지속할 것이란 뜻입니다.하버드대의 제임스 퍼먼 교수는 이날 미 중앙은행(Fed) 위원들이 인플레이션을 얕잡아 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9월 경제전망에서 예상한 2021년 연간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4.2%, 3.7%(근원)가 달성되려면 앞으로 남은 기간 물가가 2% 밑으로 떨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불가능하다는 뜻이죠. 래리 서머스처럼 Fed에 대해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Fed도 내년에 최소 1번, 연말까지 2번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주장이 많습니다. 기준금리를 반영하는 미 국채 2년물 금리는 이날도 3.6bp(1bp=0.01%포인트)나 올라 0.431%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아직 이런 전망은 주식 시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뭔가 부정적 일이 터진다면 주식 투자자들은 Fed와 바뀐 통화정책을 탓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이날 파월 의장의 주식거래 내역이 미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그는 지난해 10월 뉴욕 증시가 조정을 받을 때 수백만 달러 규모의 주식 펀드를 정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통상 Fed 의장 연임 소식이 10월에 나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중요한 시기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소식이 나온 겁니다.
인플레이션 위험은 있지만 어쨌든 증시 분위기는 지난 두 달보다는 개선된 게 사실입니다. 스태그플레이션 주장도 덜 들립니다. 사모펀드 칼라일의 창업자인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은 전날 밀컨콘퍼런스에서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작다”라고 밝혔습니다. "물가가 그렇게 높게 올라가지 않을 것이며 공급망도 곧 회복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또 같은 콘퍼런스에 참석한 핌코의 에마누엘 로만 CEO도 이날 "스태그플레이션은 정말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Extremely unlikely)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두 마리의 곰이 시각을 바꿨습니다. 지난주 전해드린 CNBC의 마이크 산톨리 주식평론가의 '미스터리 브로커'에 이어 곰들이 속속 부정적 시각을 포기하고 전향하고 있습니다.
먼저 모건스탠리의 마이크 윌슨 최고투자책임자(CIO)입니다. 그는 이날 고객 메모에서 "미국의 개인 투자자들이 계속 저가매수에 나서는 바람에 뉴욕 증시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라면서 "개인 투자자 그룹이 약세로 돌아서기 전까지 전반적인 시장은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거시경제적 문제들이 명백하지만, 개미들 덕분에 주가가 큰 폭의 조정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윌슨과 모건스탠리는 작년 말부터 뉴욕 증시가 10~20% 조정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해왔습니다. 하지만 S&P500 지수는 최근 한 차례 5% 하락을 겪은 뒤 급반등한 상태입니다.
윌슨 CIO는 "최근 공급망 혼란, 비용 압박, 기업실적 전망의 하향 수정 등으로 인해 펀더멘털이 악화하면서 주요 지수의 하락은 보장된 일이었다. 하지만 아마추어 투자자들은 계속해서 주식을 사고 위험을 무시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기업실적 전망은 악화하고 있지만, 아직 더 넓은 지수에서 더 큰 하락을 일으킬 만큼 빠르지는 않다"라면서 "결론적으로 이러한 실적 흐름이 뒤집히거나 꺾이기 전까지는 펀더멘털 상황이 악화하더라도 지수는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하나의 곰은 구겐하임파트너스의 스콧 마이너드 CIO입니다. 그는 지난 8월 “델타 변이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로 주가가 10~20% 조정받을 수 있다”라고 밝혔었습니다.
마이너드가 주식이 상승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금리가 2% 이상 크게 오르기 어려울 것이라는 겁니다.
마이너드는 ”시스템에 있는 레버리지(부채)의 양을 보면 Fed가 기준금리를 인상해도 다시 경기가 침체되기 전까지 금리는 연 2%를 크게 넘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연 2%가 10년물 금리의 거의 상한선 역할을 할 것으로 봤습니다. 그러면서 10년물 금리의 (장기) 무게중심은 지금 수준인 1.6%보다 낮다고 덧붙였습니다.또 인플레이션은 단지 '공포'로 판명될 것이며 과거 주요 전쟁에 뒤이은 일시적 물가 상승과 비교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6년이 걸리지도, 6개월이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공급망 차질을 해결해야 하지만, 이미 접객과 항공 분야에서는 디플레이션 압력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