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수의 희귀질환 이야기] 희귀질환의 최전방 방어선, 신생아 선별검사

글 조인수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 의학부 이사
신생아 선별검사는 특정 질환의 유무를 확인해 조기에 치료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모든 희귀질환에 대해 신생아 선별검사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2016년 이탈리아에서 발표된 사례보고 논문에서 희귀질환 환자의 조기진단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남매의 사진(아래)이 발표됐다.

뮤코다당증 Ⅰ형(mucopolysaccharidosis I) 이라는 질환은 리소좀 내 뮤코다당체(GAG)를 분해하는 효소의 선천적인 결핍으로 인해 체내 글리코사미노글리칸이라는 다당류가 축적돼 발생하는 희귀유전질환이다.
5세에 치료를 시작한 14세의 뮤코다당증 Ⅰ형 환자(왼쪽)와 생후 5개월부터 치료를 시작한 10세 뮤코다당증 Ⅰ형 환자(오른쪽)의 모습이다.
사진 속 남매 중 누나는 5세에 진단을 받아 정상 효소를 투여해주는 치료를 시작했고, 남동생은 누나의 확진을 통해 선제적으로 효소 및 유전자 검사를 수행했다. 가족력을 확인한 후 생후 5개월부터 같은 치료를 시작했다.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 두 환아가 각각 14.5세(누나), 10세(동생)가 되었을 때, 뮤코다당증 Ⅰ형의 전형적인 예후는 극적으로 개선됐다. 특히 조기에 치료를 시작한 남동생의 경우는 거의 정상인과 같은 임상소견을 보여준 것이다.

실제 5세부터 치료를 시작한 누나는 다발성 뼈발생 이상 소견이 나타난 것에 반해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해 질환을 조기진단하고, 생후 5개월부터 치료를 시작한 동생은 외모와 성장률에서 정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다발성 뼈 발생에 있어 이상 소견을 보이지 않았다.희귀질환 치료제의 등장, 진단 생태계 구성이 더 중요한 이유

많은 희귀질환이 강한 유전적 소인의 특성으로 인해, 진단의 시기가 곧 치료의 예후를 결정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따라서 희귀질환 분야에서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의 역할은 단순히 임상데이터를 통한 치료제의 임상적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들에게 숙명처럼 따라오는 것은 바로 희귀한 질환자들을 어떻게 찾아낼 것이냐다. 어떤 방법으로 진단해내는 것이 환자들의 진단 방랑을 줄이고, 보다 조기에 치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또 이런 과정은 결국 건강보험재정의 비용을 수반하게 된다. 특히 고가의 의약품이 많은 희귀질환 분야에서는 더욱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환자지원정책을 찾아낼 수 있는 정책적 기반과 근거들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들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다수의 희귀질환이 비특이적인 임상증상을 보이므로, 의사의 의심이나 임상소견만으로는 환자의 질환명을 특정하기는 불가능하다.

또 질환이 이미 발현하는 순간부터 조직의 비가역적인 손상이 진행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진단의 알고리즘은 의사나 환자가 먼저 의심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이들 환자를 극초기에 걸러낼 수 있는 의료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가장 직관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논의가 바로 신생아 선별검사(NBS·NewBorn Screening)이다.
신생아 선별검사, 희귀질환 극복을 위한 최전방 방어선신생아 선별검사란 태어나는 모든 (증상이 없는) 신생아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진단검사다. 조기에 치료함으로써 더욱 좋은 임상 결과를 가질 수 있는 질환들에 대해 수행되는 검사를 의미한다.

신생아 선별검사법 중 대표적인 DBS(Dried Blood Spot) 검사는 혈액 몇 방울을 종이에 떨어뜨려 특정 효소의 활성유무를 확인한다. 소량의 혈액만을 사용해 특정 질환의 원인이 되는 효소 활성도와 DNA 분석, 바이오마커 등의 수치를 확인하여 질환의 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

신생아 선별검사의 대상이 되는 유전성 대사 질환은 희귀질환이지만, 질환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 전체 질환을 대상으로 놓고 보면, 2000여 명당 1명꼴로 환자가 발생한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높은 유병률이 있는 신생아 선별검사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중보건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희귀질환에 대해서 신생아 선별검사 항목에 포함돼 있거나, 이들에게 건강보험 급여 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1만 명당 1명꼴로 환자가 발생하는 질환이 있다면, 국내에 이 질환의 환아는 산술적으로 27명이 될 것이다(2020년 국내 보고된 신생아 출생수는 약 27만 명 기준).

이들 27명을 찾아내기 위해 한 해 태어나는 27만 명의 신생아 모두를 대상으로 해당 질환에 대한 신생아 선별검사를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생아 선별검사의 대상질환 선정과 중요한 질문들

신생아 선별검사에 대한 개념은 1968년 체계적으로 정리됐다. 생각보다 오래된 숙제이기도 하다. 중요하지 않은 환자는 없지만, 어떤 질환들을 대상으로 신생아 선별검사를 논의하는 것이 이러한 딜레마들을 그나마 효율적으로 우회하고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이들에 의하면, 아래의 10가지 기준을 통해 대상 질환군을 선정하도록 제안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1985년 신생아 선별검사가 처음 도입됐으며, 1991년 정부의 모자보건사업에 의해 일부 신생아를 대상으로 6개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페닐케톤뇨증, 선천성 갑상선기 능저하증, 단풍당뇨증, 갈락토스혈증, 선천성 부신기능항진증, 호모시스틴뇨증)에 대한 신생아 선별검사의 비용 일부가 지원되기 시작했다.

** 신생아 선별검사 대상질환 선정의 10가지 기준
➊ 치료하지 않을 때, 질환 상태가 중대한 문제일 것(삶의 질, 생존)
➋ 치료제가 있어서 치료를 통해 환자의 증상이 호전(임상근거)될 것
➌ 진단장소와 시설, 치료시설이 있을 것
➍ 무증상이거나 질병 초기 기간이 있을 것
➎ 적합한 진단 기술·방법이 있을 것
➏ 전 인구에게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할 것
➐ 질병의 생리나 발달과정이 충분히 연구되었을 것
➑ 치료받는 사람이 동의할 수 있을 것
➒ 질환의 발견 빈도가 경제적으로 효율적일 것
➓ 환자를 찾는 활동들이 지속 가능할 것

위의 10가지에 더해 최근에는 진단기술의 수용할 만한 위양성과 위음성, 그리고 선별검사인 만큼 단순한 절차, 적은 검체로 신속한 검사가 가능할 것 등이 추가되고 있다. 여기에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질문의 답변을 할 수 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신생아 선별검사를 고려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새롭게 추가되는 기준들
➊ 환아와 정상의 모든 신생아를 둔 모든 부모에게는 어떠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Parent’s perspective)
➋ 희귀질환에 있어서 신생아 선별검사의 임상적 유효성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Healthcare provider’s perspective)
➌ 비용경제성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Payer’s perspective)
➍ 진보하고 있는 기술이 이런 질문,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인가? 또 어떻게? (Tech·pharma firms perspective)

1997년에는 페닐케톤뇨증과 선천성 갑상선기능저하증에 대한 검사비용 전액이 정부 지원됐으며, 2006년에는 나머지 4개 질환에 대해 전액 정부 지원이 실현됐다. 이 6개 질환은 부모가 인지하든 인지하지 않든, 자동적으로 수행되는 소위 정부 6종 검사라고 불린다. 2018년에는 50여 종의 질환에 대한 신생아 선별검사의 정부 지원이 도입돼 보다 넓은 지원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척수성근위축증(SMA), 폼페병 뮤코다당증, 부신백질이형성증 등 치료시기가 매우 중요한 희귀질환들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이를 포함해야 한다는 논의도 나오고 있다. 이들 질환은 증상발현이 확인된 이후 치료를 시작하더라도 예후가 매우 나빠지는 질환들이기 때문에 사실상 신생아 선별 진단검사가 아니라면 치료의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실제 미국, 대만과 같이 비교적 적극적인 신생아 선별진단검사체계를 잘 구축한 나라의 경우, 이들 질환에 대해서도 신생아 선별검사의 무료 지원체계가 적극 도입돼 있다. 대만에서는 신경근육계 희귀질환 조기진단의 중요성을 인식해 2014∼2016년에만 12만여 명의 신생아를 대상으로 척수성근위축증에 대한 신생아 선별검사를 지원했고, 8명의 척수성근위축증 환아를 발견해 선제적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또 2018년 보고에 따르면 영유아사망률이 높은 조기발병형 폼페병에서 4년 동안 약 67만 명의 신생아 선별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14명의 환아를 찾아내 조기치료를 했고 사망률 0%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대만은 거점 병원 3곳이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합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체계를 구비해 해마다 태어나는 99.8%의 신생아들이 신생아 선별검사를 받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19년 ‘RUSP(Recommended Uniform Screening Panel)’라는 최소한의 선별검사 대상 질환군을 선정했다. 총 35개의 주요 질환군과 26개의 권고질환으로 구성된 희귀질환들에 대해 각 주에서 자체적으로 신생아 선별검사체계에 반영하고, 수행하도록 하는 의무규정이 구축돼 있기도 하다.

신생아 선별검사, 과학과 근거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

신생아 선별검사의 임상적 유효성이 극대화되는 부분은 조기치료의 이점이 극대화할 수 있는 질환에 있다. 어떤 질환은 하루만 치료가 늦어져도 예후에 급격한 차이가 난다.

물론 희귀질환자를 대상으로 신생아 선별검사에 대한 전향적이고 잘 통제된 임상시험을 엄밀하게 수행해 질환별로 체계적인 근거를 확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신생아 선별검사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대와 우려의 공존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 윤리적인 분야를 함께 고민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최근 희귀질환 분야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 정책을 배경으로 기술력을 가진 많은 회사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첨단 기술을 통한 바이오의약품과 기초연구들이 임상의 영역에서 그 가치를 입증하며 환자들을 위한 미래를 약속해가고 있다.

하지만 희귀질환 치료제의 개발 및 시판 승인은 끝이 아닌 진정한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희귀질환 분야에서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것은 신생아 선별검사를 포함해 다양한 진단 알고리즘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새로운 진단기술의 개발을 견인해야 하며, 다양한 정책적 기반을 고려한 정책 제정과 윤리적인 고민을 함께 전개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희귀질환의 수만큼 많은 회사가 다양한 기술력을 검증해가며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들이 목표로 하는 대상 질환군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정부와 의학계, 산업계가 협업해 신생아 선별검사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연대노력은 공통의 숙제가 될 것이다. 희귀질환에 있어서 치료제 개발의 의미는 조기, 적시에 희귀질환자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책임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저자 소개>

조인수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 스페셜티케어 사업부에서 희귀질환 메디컬팀을 맡고 있다. 베링거인겔하임, 바이엘 임상의학부팀에서 한국 및 아시아 국가의 혁신신약 도입을 위한 임상연구와 의과학자문으로 근무했다. KOTRA-Grants4Apps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 및 제약사 지원 연계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