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발보다 화장발"…화장품社 독자성분 승부

ODM업체 의존 벗고 차별화

신세계인터·한섬·LG생건·아모레
고삼·인삼 등 천연원료 활용해
핵심 원천기술로 글로벌 경쟁
1만9769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집계한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화장품 판매업체 수다. 2019년(1만5707개)보다 26% 늘었다. 매일 수많은 화장품 신제품이 시장에 쏟아진다. 대부분 제품은 한국콜마, 코스맥스 등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가 생산한다. 같은 회사가 만든 화장품으로 마케팅 경쟁에만 몰두하는 현실을 두고 ‘화장품 회사가 아니라 마케팅 회사’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런 풍토 속에서 최근 품질 경쟁력에 승부를 거는 화장품 기업들의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기초화장품, 고가 화장품 성장세가 두드러지자 독자 성분 개발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삼·해양미생물…독자성분 확보 전쟁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운영하는 화장품 브랜드 연작은 지난 6월 기초화장품 ‘카밍앤컴포팅’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독자 개발한 성분인 고삼 추출물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카밍앤컴포팅 앰풀은 바르는 즉시 피부 온도가 4도 내려가 진정, 보습 효과가 탁월하다”고 설명했다.

고삼은 성질이 차가워 예로부터 열을 다스리는 데 뛰어난 효능이 있는 식물로 알려졌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1년간 연구한 끝에 독자 성분을 개발했다. 고삼 추출물의 효과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대한화장품학회지에도 게재했다.

8월 말 한섬이 처음 선보인 화장품 오에라도 독자 성분을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웠다. 스위스화장품연구소와 협업해 독자 성분 ‘크로노 엘릭서’를 적용했다. 스위스의 맑은 물과 최고급 원료로 전량 스위스에서 생산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한섬 관계자는 “화장품은 피부에 제일 먼저 닿는 제품이기 때문에 원료와 기술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지난해부터 인수합병(M&A), 글로벌 화장품 연구소와의 협업 등을 통해 품질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고 말했다.LG생활건강 연구팀은 해양 미생물을 연구했다. 해양 미생물 전문가와 협업해 수백 점의 해양 미생물을 수집, 10여 년간 연구한 끝에 피부 진정과 탄력에 효과가 있는 유산균 1종을 발굴해냈다. 이를 적용한 제품이 올해 2월 출시한 ‘숨37° 워터-풀 블루뮨’ 에센스다.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 한방과학 연구센터’를 통해 인삼은 물론 아시아 고서에서 찾은 3912가지 약용 식물 등 한방 원료를 연구하고 있다. 연구센터는 인삼의 힘을 피부로 전하는 독자 기술을 개발해 설화수 스테디셀러인 자음생크림 등에 적용하고 있다.

스테디셀러의 필수 조건

효능이 뛰어난 독자 성분을 확보하면 시장 확대는 물론 스테디셀러를 키우는 데도 유리하다. ‘기적의 크림’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수십 년간 인기를 끌고 있는 라메르의 ‘크렘 드 라 메르’가 대표적인 예다. 이 제품은 해초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기에만 손으로 채취해서 만든 ‘미라클 브로스’란 독자 성분을 적용했다.SK-Ⅱ의 베스트셀러인 피테라 에센스는 SK-Ⅱ의 성장을 이끈 간판 제품이다. 피테라는 수년간 350여 종의 효모를 연구해 개발한 성분으로 미네랄, 아미노산, 비타민 등 50여 가지 미세 영양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지난해 인수한 스위스 명품 화장품 브랜드인 스위스퍼펙션은 핵심 원료인 ‘셀룰라 액티브 아이리사’를 내세워 세계적인 고효능 화장품으로 자리잡았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화장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은 핵심 원천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라며 “경쟁이 치열해지는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도 품질 경쟁력은 필수 요건”이라고 말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