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단체소송 남발" 경제계 반대에도 소비자기본법 개정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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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예상되는 경우도 소송정부는 앞으로 소비자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에도 기업을 상대로 단체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또 사전에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한 단체소송 절차도 간소화하기로 했다. 경제계가 소비자단체의 ‘무더기 소송’을 우려해 신중을 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 사전 허가절차 없어져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가 손쉽게 단체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소비자기본법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19일 밝혔다. 공정위는 개정안이 국회에서 이른 시일 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이번 개정안은 단체소송 제도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산업계의 우려는 크다. 지난 5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소송 남발과 악용 우려가 있다”며 보완장치 마련을 요구했다.
단체소송은 현재 법률에 의해 지정된 단체만 제기할 수 있다. 티머니카드 미사용 잔액 환불 거부, 한국전력의 가정용 전력 누진요금 부과, 호텔스닷컴 청약철회 거부 약관 등이 대표적인 단체소송 대상이었다. 소비자 피해 예방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후 금전 배상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소송과 차이가 있다.
이 제도는 2008년부터 시행됐다. 공정위는 하지만 엄격한 소송 요건과 절차 때문에 사문화됐다고 봤다. 법 시행 이후 소송 제기도 8건에 그쳤다. 이에 공정위는 이번 법 개정안을 통해 단체소송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는 설명이다.우선 소비자의 생명·신체·재산에 대한 권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한 경우뿐만 아니라 ‘소비자 권익 침해가 명백히 예상되는 경우’에도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한 장치로 도입했던 소송허가 절차 제도도 폐지했다. 허가 기간이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씩 걸려 소송을 지연하고 제도 활성화를 저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소비자 단체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단체로 ‘소비자단체의 협의체(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를 추가 지정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걱정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집단소송제 등 기업 상대 소송을 확대하는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소비자의 피해가 당장 현실화하지 않았더라도 단체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있도록 한 ‘예방적 금지청구권’ 도입을 우려하고 있다. 소비자 단체들이 앞다퉈 단체소송에 나서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경총 관계자는 “사전적 금지청구 소송의 경우 1~2개 주력 제품에 집중하는 중소기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