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재의 자본시장 OVERVIEW] 창업은 누구나 하지만, 사업은 그렇지 않다

글 홍순재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재무자문본부 상무
창업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사업은 그렇지 않다. 바이오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좋은 기술을 보유한 과학자, 의사 등이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사례가 늘면서 바이오 산업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살아남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사업에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잘 몰라서 ‘사업화’가 안 돼 실패하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 창업이라는 어려운 선택을 했지만 낯선 환경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짚어보자.
“나만 죽도록 일하고 직원들은 논다”화학소재 원료를 생산하는 A사는 2001년 대기업 출신 K씨가 창업한 중소기업이다. K대표는 S대 화학 관련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글로벌 케미컬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잘나가는’ 소재 전문가였다. 그는 본인이 터득한 기술과 다국적기업에서 배운 영업 노하우를 활용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 32세에 이른 창업을 결심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30대 창업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K대표가 화학소재 분야에서 촉망받는 인재였던 덕분에 어렵지 않게 벤처캐피털의 투자도 받을 수 있었다.

창업 3년 차였던 2003년, 직원 수는 12명으로 불었다. 연구개발(R&D) 인력 6명에 기술영업 3명, 관리 3명이 식구가 됐다. 소재산업은 매출이 나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른 산업보다 훨씬 길다. 많은 돈을 들여 물질을 개발한 뒤에도 현장에서 사용하기까지 열적 강도, 가공성 등 물질특성에 대한 검증작업을 오랜 시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업계에선 새로운 화학소재를 개발하는 것에 대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고 한다. 이런 소재산업과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 산업이 있다. 바로 바이오산업이다.

K대표는 예상보다 매출 발생 시점이 늦어지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직원 급여는 계속 나가고 R&D 비용도 들다 보니 대출을 더 받아야 했다. 그만큼 부채비율도 높아졌다. K대표는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컸다. 언젠가부터 “내가 미친듯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동안 직원들은 컴퓨터 앞에서 놀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A사는 지난해 헐값에 팔렸다. 그나마 정부과제 등을 꾸준히 수주한 데 힘입어 이 험난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20년이나 버틴 걸 위안 삼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쓸쓸한 결말이다.대표의 독주… 토론과 아이디어 사라져

또 다른 사례 하나. 견과류 가공 식품회사인 B사는 창업주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2세 경영자인 L 씨가 운영하고 있다. 자체 브랜드 광고를 내보내고 2공장을 신설한 데 힘입어 최근 수년간 매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매출이 감소세로 돌아선 건 지난해부터였다. 특히 중국 수출은 언제 다시 회복될지 모를 정도로 악화됐다. 상황이 나빠지자 그동안 안으로 곪았던 문제들이 하나둘 터지기 시작했다. 모든 어려움을 코로나19 탓으로 돌리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B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대표 혼자서 모든 의사결정과 경영판단을 내린다는 데 있다. 제품 포장 디자인을 결정하거나 사무용품을 구매할 때도 대표 결제를 받아야 한다. 대표가 시시콜콜 간섭하면서 직원 피로도가 높아지고 자유로운 토론도 사라졌다. 그렇다 보니 참신한 기획 아이디어도 자취를 감췄다. 회사 내부에는 “대표가 알아서 하겠지”, “말해봐야 소용없으니 기다려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기술력 하나로 회사가 돌아갈 수 없어

두 사례의 공통점은 경영자와 직원 간 소통 결여가 경영 실패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불통은 하나의 결과일 뿐, 근본적인 원인은 경영자가 기술과 실적에만 집착한 데 있다. 이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바이오 창업 기업도 자주 봤다. 연구실에서 열심히 연구하는 게 전부였던 연구원 생활과 달리 회사를 설립하면 챙겨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아무리 핵심 기술이 중요하다지만, 회사가 굴러가려면 재무관리, 인사관리, 투자유치, 홍보, 행정업무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창업자 본인은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고군분투하는데 직원들은 오후 6시만 되면 ‘칼퇴근’하는 게 못내 섭섭해도 어쩔 수 없다.

미국의 저명한 경영 컨설턴트인 마이클 거버는 <사업의 철학>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위대한 기술자가 되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기업을 일구기에 불충분하다. 기업가 열병에 사로잡힌 기술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사업의 기술적인 부분에만 함몰되다 보면 결국 종착점은 하나다. 혼란스럽기 짝이 없고 좌절감만 주는….(중략)” 그는 “사업이 전적으로 창업자에게 달려 있다면 그건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거버는 창업자를 기업가형, 관리자형, 기술자형 등 3개 유형으로 분류했다. 기업가형은 공상가이자 몽상가이고, 인간활동의 원동력이자 미래라는 불꽃을 당기는 상상력의 소유자이며, 과거와 현재가 아닌 미래를 살아간다고 정의했다. 관리자형은 실용적인 사람이다. 기업가형이 변화를 즐긴다면 관리자형은 현재의 상황에 강박적으로 매달린다고 분류했다. 기술자형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확고한 개인주의자다. 실행하는 사람, 제대로 하고 싶다면 직접 하라고 말하는 유형이다.

창업자의 부족한 부분은 외부조달로 채워야

사람들의 내면에는 기업가, 관리자, 기술자가 모두 들어 있으며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유능한 사람’으로 불린다. 기술 창업자가 기업가형과 관리자형의 덕성을 모두 갖추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부족한 부분은 외부에서 조달하면 된다. 재무관리 능력이 있는 믿을 만한 관리자를 선발하는 식이다. 소비자를 상대하는 업종이라면 브랜드 전문가를 필수적으로 영입해야 한다. 기술 위주의 창업자가 잘 모르는 영역까지 다 챙기려 하기보다는 분야별 적임자를 선임하고 그들에게 권한을 주고, 성과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책임 경영은 신뢰를 밑바탕으로 한다. 서로 믿지 못하면 제아무리 최첨단 경영 시스템을 도입해도 무용지물이 된다. 신뢰는 맹신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앎에서 나온다. 알려면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해하려면 현재의 상황이 어떤지부터 알아야 한다. 직원들이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사업의 핵심이다. 리더십이라고 표현되는, 그 어떤 책에도 구체적인 방법론이 나와 있지 않은 오묘한 이 부분이 결국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다.

리더십의 사전적 정의는 ‘단체의 지도자로서 그 단체가 힘을 마음껏 발휘하고 구성원의 화합과 단결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지도자의 자질’이다. 과연 이 말로 리더십을 정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만큼 리더십은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으며 계량화하거나 수치화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분명한 것은 창업자 본인의 성향을 파악해 부족한 요소는 외부 인력을 채용해 보충하고 구성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도록 스킨십을 자주 갖는 일, 목표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 합리적인 성과보상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역사, 철학 등 인문학 공부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홍순재
싱가포르국립대 경영대학원(MBA)을 나와 KDB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에서 이슬람채권 발행 업무와 투자은행(IB)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재무자문본부에서 상무로 재직 중이다. 기업 M&A와 투자유치자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